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불타는지성인 Mar 19. 2024

글의 세계


할아버지는 99년의 나이로 돌아가셨다. 다른 사람들에겐 충분히 살다 간 나이겠지만, 유현에겐 낯 선 문자였다. 회사는 유현에게 4일의 시간을 주며, 잘 보내 드리라는 위로를 건넸다. 한 번도 따뜻함을 느끼지 못했던 곳에서 유일하게 따뜻한 시간을 느낄 수 있었다. 내려가는 버스는 평일이라 그런지 명절 때의 차 막힘은 없었다. 유현 스스로도 실감이 나지 않아 생경하다는 생각을 했다.

장례식에 도착하니 유세조라는 세 글자의 이름이 있었고, 그 밑에는 유수영이라는 세 글자의 이름과 밑에는 유 현이라는 두 글자가 있었다. 유현은 그제서야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정숙인 언제 온대?

모르지. 일 마치고 온다는데.

혼자만 일해? 다들 와서 일 하는데 유독 이럴 때만 티 내더라.

라는 친척들이 모이면 나오는 말들에 유현은 생각보다 시끌벅적한 분위기가 익숙하지 않았다. 숙연하기만 할 것 같은 분위기가 아니라 큰 소리로 손님을 대하고 마주했다. 그러면서도 슬픔은 유지하는 듯 했다.


유현이 자리를 잡고 밥을 먹는데 유현을 부르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유현아 요즘도 글 쓰지?

아 삼촌 안녕하세요.

유민석은 3번의 장편소설과 4번의 단편소설을 낸 중견작가였다. 할아버지가 쓴 소설에 영향을 받아 소설가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어린 시절, 유현은 유민석의 소설을 보고 자랐다. 할아버지의 작품을 봤지만 할아버지의 작품보다는 유민석의 소설을 더 좋아했다. 유현은 유민석의 소설에서 자신을 발견했고, 글을 쓸 때면 그 순간이 영원하길 바랬다.

자주 써야 해. 할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글을 썼다. 비록 아버지 뜻에 따라 발표는 안 했지만.

쓸 시간이 안 나네요. 최근에 계속 야근을 했어요.

이 글 볼래. 네 할아버지가 유일하게 발표 안 한 작품이야.

유현은 인쇄된 종이를 건네 받았다. 

너 주려고 일부러 이렇게 가져왔다. 장례식 끝나고 돌아가는 길에 꼭 보거라. 


장례식에 사람들이 계속 와서 유현을 불렀다. 유현은 그때마다 인사를 했다. 유현은 기억하지 못 했지만, 유현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았다. 잊고 있던 시간의 공간에서 유현은 왠지 모를 따뜻함을 느꼈다. 유현은 할아버지가 살다 간 인생이 성공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현은 장례지도사가 가족들에게 마음의 준비를 한 순간 마음이 덜컥했다. 지금까지는 바빴고, 정신이 없는 터라 슬픔을 느낄 겨를이 없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이제부터는 할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슬픔을 준비해야 하는 시간이 된 것이다. 유현은 고모의 울음으로부터, 처음 보는 아버지의 눈물로부터, 그리고 그 순간 그 곳에서 존재하는 모든 이의 슬픔의 무게를 느껴야 했다. 죽음은 죽음이라서 슬프구나라고. 

장례식이 끝나고 마지막 절차인 운구를 이동하는 절차에서 유현은 피곤함을 느꼈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슬픔에 지친 고모는 탈진을 하였다. 마지막까지 잘 보내 드려야 한다는 장례지도사는 능숙하게 우리들을 유도하며, 절차를 밟아 나갔다. 옮기는 중에도, 마지막까지 흙을 덮어주는 것까지도.

유수영은 자신의 아버지를 보내며, 명복을 빌었고 유현 역시 할아버지의 명복을 빌며 모든 절차가 끝이 났다. 유수영이 유현에게 말을 걸었던 건 유현이 이제 막 서울로 가기 전이었다. 

민석이한테 받은 거 잘 읽어둬라.

유수영은 유현이 글을 쓰는 것을 반대했다. 처음 문예창작과를 희망 했을 때 유수영은 끝 내 문예창작과를 반대했고, 유현은 그의 바램대로 경제학과에 갈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결국 군 제대 후 복학한 뒤 문예창작과로 가면서 연락이 끊어졌다.

돌아가는 길 버스에서 유현은 유일하게 발표를 하지 않은 할아버지의 글을 봤다. 

매거진의 이전글 너무 소란한 마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