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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타는지성인 Apr 14. 2024

1년 뒤 네가 죽는 거야


그녀는 봄을 알리는 꽃들의 모습을 하고서 유혹의 목소리로 내게 속삭였다. 죽는 거야는 마치 사랑해. 사랑해요. 사랑이야.로 들려서 나도 사랑해. 나도 사랑해요. 나도 사랑이야.라는 답변처럼 그래 내가 1년 뒤 죽을게. 응 1년 뒤 죽으면 되지?라고 답변할 뻔했다.  

왜.

정말 죽는 걸 약속할까 봐 정신을 차리고 물었더니 그녀는 내게 아까보다 더 확신하는 표정이 되었다. 아무튼 죽는 거지. 죽음이 어떤 건지에 따라 다를 거야. 먼저 노화와 병으로 인한 죽음이지. 또 한 경우는 자살이야. 노화나 병으로 인한 죽음이냐, 아니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것이냐는 달라.

그리고 사고가 났을 수도 있어. 사고에도 크게는 두 가지로 나뉘어. 자연재해, 그리고 흔히 인재라고 하지. 인재에도 고의성을 발견해야 하거나, 실수였거나, 아니면 위험을 방치했을 수도 있어. 가스폭발사고 같은 건 고의성이 없어도 위험을 방치하며, 실수를 했을 수도 있을 거야. 사실 방치했으니까 따지고 보면 고의성이 있다는 말이지. 그리고 살해야. 살인을 당했다는 것은 누군가에 의해 죽었다는 것을 의미해. 대체 누가? 나를 죽일까라고 생각해 봐. 너는 내가 봤을 때 사람들을 약 올리지도, 괴롭히지도 않는 그냥 무관심한 사람 중 하나잖아.

그렇지. 무관심하지.

그러면 너는 1년 뒤에 죽는다고 해도 살해당하진 않을 거야. 사람들에게 피해 주면서 살아왔던 건 아니니까.

좋은 소식이네.

그래서 생각해 봤는데 자살도 아닌 것 같긴 해. 

그 이유는 뭐야?

자살하는 사람들은 보통 나 죽는다, 죽을 거야 말 안 한다더라. 전 날에도 아무렇지 않은 듯 행동하고 웃고, 더 밝게 행동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더라고. 그러면 너의 경우는 생각해 봤지. 일단 죽고 싶다 죽고 싶다를 외치는데 진짜 죽을 것 같지만 한 번씩 요리를 해 먹더라고. 요리가 생각보다 귀찮은 작업인데 하고 나면 뿌듯해. 결과물이 만들어진다는 게 생각보다 큰 동기가 되거든. 거기다 생각보다 맛있으면 다음엔 뭘 만들게 될지, 기대를 하게 돼.

잘 아는구나. 요리가 내게 가능성을 만들어. 누구도 만족할 필요 없이 나만 만족하면 되는 결과와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과정들을 발견하면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 지도 알게 되는 것들이 좋아져. 그리고 네가 생각보다 맛있게 먹더라고. 




아쉽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1년 뒤 죽어야 해. 아 참 오늘 저녁 메뉴는 뭐야?

그녀에게 죽음은 사랑과 같은 동의어도 아닌 듯했다. 죽는다는 말과 오늘 저녁 메뉴를 묻는 건 말이 되지 않는데, 왜 말이 되는 걸까. 1년 뒤 죽음이 찾아온다 해도 오늘 저녁은 먹어야 한다. 그래야 살아갈 수 있으니까.  

그러면 나는 1년 동안 요리를 하다가 죽게 되는 건가?

어떻게 죽고 싶어? 선택권을 줄게.

1년 동안 요리를 해야 하니까 자살은 아닐 것 같고, 아직 노화로 죽을 나이는 아냐. 1년 만에 죽는 병이 걸린다면 억울하겠지만, 나는 살기 위해서 병원을 전전하겠지. 병에 걸리면 좋지 않은 건 약 때문에 음식을 제대로 못 먹는다는 거야. 작년까지 역류성식도염 때문에 위염, 장염에 고생하면서 죽도 제대로 못 먹었을 때가 생각난다. 그때는 이렇게 죽이랑 이온음료만 먹으면서 기쁨도 없이 그저 이 아픔이 지나갔으면이라는 생각만 들었지.

그럼 넌 아파서 죽는 걸로 할까?

너무하네. 무슨 저주가 그래. 설마 내가 생각한 최악의 경우대로 되는 거야?

그건 아닌데. 서서히 불행한 일이 겹치며, 생의 의지를 잃어가는 걸 보고 싶어.

꼭 그런 거만 아니라도, 내 삶은 충분히 고통스러워. 그만 놔줘.

알았어. 그러면 1년 뒤 어떻게 죽을지 선택해 볼래?

너랑 있을게. 1년 동안. 그리고 364일 동안 한 가지 요리만 할 거야. 우린 그걸 먹고 364일 동안 음식에 대한 냉정한 평가를 해야 해. 각각의 양념재료와 조리시간, 냄비들, 팬들, 식용유, 카놀라유, 포도씨유, 올리브유 종류별로 써보고, 비싼 재료부터 싼 재료까지 무엇이 가장 우리에게 좋은 순간이 되는 요리인지 만들고 먹겠지. 그 과정에서 너는 364일이 아니라 36일 만에 1년 뒤 안 죽어도 된다고 할 거야. 그 이유는 두 갠데 남은 날을 같은 음식만 먹기 힘들어서, 아니면 1년만 먹기엔 너무나 맛있어서지.

음.. 1년만 먹기엔 너무나 맛있을 수도 있어.

나 만나고 몇 킬로 쪘다고?

비밀임. 그럼 나머지 1일을 뭔데 다른 걸 하는 거야? 아니면 또 같은 요리야?

그때가 되면 알려줄게. 이제부터 1년 뒤 내가 죽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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