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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도비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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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마크 Mar 19. 2024

전쟁의 서막

관장님, 결투를 신청합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말은 직장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모든 조건이 비슷하다면 아무래도 나와 가까운 사람의 편을 드는 일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단, 적당히 굽혔을 때만.


자료 특성상 동아시아 도서관의 직원은 대부분 한국인, 중국인, 일본인인데,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형평성을 갖춘 리더십이 더욱더 절실히 필요하다. 특히 도서관 장서 수, 교수진 및 교내 프로그램 수 등 중국이 훨씬 앞서기 때문에 한국과 일본에 비해 중국이 자연스레 우위를 차지하는 경우도 있는데, 게다가 관장마저 중국인이니 자칫하면 매번 중국만 챙긴다는 인상을 주기 좋다. 도서관 운영을 성공적으로 해내기 위해 형평성에 맞게 한중일 모두에게 기회가 주어지도록 리더가 더 신경 써야 하는 이유다.


하지만 관장이 중국인이라서 일부러 중국 팀을 조금 더 챙겼다고 해도 꼬투리를 잡을 생각은 별로 없었다. 회사 조직이 아름답기만 한 곳은 아니니까 공명정대한 리더를 만나면 감사하지만, 아님 말고~. 팔은 안으로 굽는 법이라 어느 정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했다. 나라도 내가 리더라면 티 안 나게 뒤에서 한국인 팍팍 밀어주고 싶은 마음 가득하니까 말이다.


그런데 중국 관장은 해도 해도 너무 했다. 아무리 이해해 보려고 애써봐도 중국인이라서 편애하고, 한국인이라서 차별한다는  외에 타당한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중국 관장이 편애하는 중국직원은 흔히 말하는 문제직원이었기 때문에 결정이 불합리하다고 느껴지는 경우가  있었다.


업무 분장도 마찬가지였다. 대부분 업무분장을 다시 할 때 각 포지션의 업무 내에서 재조정을 하는데, 중국직원의 경우 관장 본인의 권력을 남용해서 중국 직원의 직속 상사 및 유관부서와 상의 없이 다른 부서 업무를 배정하는 식이었다. 내 업무분장이나 해결해 주고 중국 직원을 챙겼다면 기분은 나쁘지만 거기서 끝이었을 텐데, 내 요청은 매번 무시하고 중국 직원만 챙겨주는 꼴이라니 난 이미 화가 잔뜩 나 있었다.


중국 관장의 이런 편애와 직권 남용이 정점을 찍은 일이 있었다. 사건의 발단은 문제 직원의 직속 상사가 퇴사를 하며 시작됐다. 공석을 채우기 위해 채용 공고가 나갔는데, 현재 교내 도서관에 재직 중인 사람만 지원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수상한 냄새가 났다. 누가 봐도 문제아 직원을 내정자로  채용 공고였다. 모든 직원들이 술렁거렸다. 문제 직원의 인성을 제외하고, 단순히 스펙만 놓고 본다면 공석에 적격자이긴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직원회의 중에 상사를 무시/비난하고, 팀워크를 찾아볼 수 없이 이기적으로 행동하며, 매사에 불평, 불만이 가득해 다른 직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등의 모습을 보여 평판이 안 좋았던 터라 다들 채용 공고를 이상하게 생각한 것이다. 이렇게 문제가 많은 직원을 꼼수를 써서 밀어주다니 진짜 너무한다 싶었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다. 교내 숨은 인재가 지원을 했고 최종 합격을 했다! 너무 잘 됐다. 나를 포함한 모든 직원이 환호했다. (문제 직원이 면접을 평소처럼 오만한 태도로 임하고 전반적으로 면접을 못 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장은 이 직원을 뽑기 위해 2차 면접까지 진행했으나 결국 최종 탈락을 하고 말았다.)


정의가 살아있다고 생각했는데 개뿔. 아직까지 날짜도 기억난다. 2021년 10월 6일, 도서관 전 직원회의 시간이었다. 관장이 문제 직원의 승진 발표를 했다. 문제 직원이 최근 업무 변경으로 한 단계 높은 직급의 일을 하게 되었는데, 인사팀과 노조협약의 규정에 따라 승진을 시키기로 했다고 했다. 기가 막혔다. 내부 채용에 최종 탈락을 하니, 없는 일을 만들어서까지 승진을 시켜주다니. 대단하다.

 

모두가 충격받은 상황 속에 한국학 사서 선생님이 한국팀 공석 채용 진행 상황에 대해 질문을 했고, 공석이 채워지는 동안 평소 하던 대로 내가 업무 공백을 메워도 되는지 물었다. 그런데 관장의 답변이 기가 막혔다. 항상 내가 해오던 일인데, 뜬금없이 나의 업무량도 고려해야 되고, 나에게 너무 부담을 주면 안 된다고 했다. 내가 원래 하던 일이라 별 지장 없다고 말했더니, 관장은 갑자기 노동법도 생각을 해야 된다고 했다. 같은 노동법을 두고 문제 직원한테는 없던 일도 만들어서 승진을 시키고, 나는 몇 년째 해오던 일인데 노동법대로 승진이 아닌 업무량을 생각해야 된다고?? 같은 법이 눈앞에서 다르게 적용되는 걸 보고 더 이상 참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관장님, 결투를 신청합니다!


문제 직원의 승진 소식에 더 열받았던 이유가 있다. 앞 편에서 설명했듯 내 업무분장 해결에 대한 공식 요청을 관장이 읽씹 한 후 동료 선생님께 조언을 구했었다. 동료 선생님은 문제 직원이 속한 부서의 부장님이었는데, 문제 직원이 최종 면접에서 탈락한 후, 부장님과 상의도 없이 관장이 막무가내로 문제 직원의 승진을 진행하고 있다고 귀띔 해주시며, 본인도 내 업무 분장 상황이 궁금했다고 하셨다. "안타깝게도 제자리랍니다? 해결이 안 되고 있어요. 인사팀이 관장한테 연락은 취한 모양인 게, 제 중국인 상사가 이마크(나) 네가 괜히 인사팀은 찾아가서 아침부터 관장이 잔뜩 화를 내며 이마크가 원하는 게 뭐야!!라고 소리를 지르더라며 저한테 하소연하라고요." (뭘 원하긴, 제대로 된 업무 분장!!!)


관장이 내 업무 분장 해결 건은 인지하고 있으니 뭐라도 진척이 있을 줄 알았다. 모든 일엔 우선순위가 있으니 문제 직원의 업무분장을 새로 만들기 전에, 3년째 미해결인 내 업무분장부터 해결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아님 적어도 두 개를 동시에 진행하던가. 그렇게 인사팀에 도움을 청하고도 한 달간 깜깜무소식이다가 문제 직원 승진이라니. 업무 분장 변경을 이렇게 빨리 할 수 있는데 왜 나한텐 복잡한 일이라며 3년간 방치를 한 건지 납득을 할 수 없었다. 참을 만큼 참았고, 이제 할 말은 해야겠다. 관장님, 우리 전쟁을 시작해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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