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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도비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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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마크 Jun 10. 2024

거짓말 대잔치

좀 더 치밀하게 해 주세요. 깜박 속아 기분이라도 덜 나쁘게.

승진 요청서만 제출하면 이 모든 논란이 끝날 줄 알았다. 노조는 나의 승리(?)에 거의 확신이 차 있었고, 당분간 심의 결과가 나올 때까지 나는 상사와 관장과 더 이상 말이 통하지 않는 논쟁은 그만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인사 담당자에게서 관장과 상사가 내 승진 요청서에 대한 검토를 마무리했으니, 나도 최종 서명을 하라며 서류를 보내주었다. 내 실제 업무를 두고 처음부터 나와 의견 대립이 팽팽했으니 곱게(?) 검토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승진 요청서 관리자 검토란에 직원(나)이 서술한 내용에 "동의하지 않음"으로 표시한 것도 충분히 예상한 결과였다. 그런데 그들의 비동의 이유를 읽어 내려가며 나는 점점 황당하다 못해 짜증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한국과 달리 전자결재 시스템이 아닌 이메일이 공문서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나는 이메일을 보낼 때 단어 선택을 상당히 신중하게 하는 편이다. 마치 기안을 올리듯 말이다. 하물며 승진요청서와 같은 각종 공식 서류는 내용과 단어선택을 최대한 객관적이고 중립적으로 쓰려고 노력한다. 가령 계획했던 업무에 차질이 생겨 중간에 다시 기안을 올리는 경우, 공문서로 기록을 남기는 이유는 누군가의 실수와 잘잘못을 비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왜 업무 진행 과정이 계획과 달랐는지 사유를 근거로 남겨두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비난은 뒷담화로... 물론 나의 실수도 중립적으로 쓰지만, 이건 처세술이라고 칩시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었기에 공문서인 승진 요청서 관리자 검토란에 교묘한 거짓말이 난무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게다가 관장의 코멘트에는 도서관 전반적인 업무 상황에 대한 본인의 무지와 편애 및 내게 황당무계하게 업무를 떠넘기려는 내용까지 담겨있어 기가 찼다. 이 모든 논란의 시작은 중국인 상사가 내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중국책 관리 업무(중국책 카피편목 관리, 감독)를 하지 못하게 했으나, 그에 맞게 업무 분장표를 변경하지 않고 3년 이상 방치해 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관리자 검토란에 적힌 상사의 코멘트에는 이 핵심 내용은 쏙 빼고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으며, 내가 문제상황을 적시에 알리지 않았고, 내가 내 업무의 상당량을 근로학생에게 미루고 있다는 표현을 쓰고 있었다. 또한, 한국책 카피편목도 이미 담당자가 있어 내게 배정되지 않은 업무였는데, 내 업무 시간의 대부분을 한국책 카피편목에 쓰고 있다는 거짓 표현까지 스스럼없이 적어두었다.


내가 공식적으로 승진 요청서를 내기 전까지만 해도 상사는 문제직원을 둘러싼 문제들과 관련해 관장의 차별적 인사처리를 부당하다고 생각하며, 그와 반대되는 나의 상황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공감하고 있었다. 하지만 관리자 검토란에 적힌 내용을 보니 상사는 본인의 입장과 태도를 완전히 바꾼 것 같았다. 


만약 상사의 승진 비동의 코멘트가 상사의 잘못과 나의 실수, 그리고 그럴 수밖에 없었던 정황을 보다 중립적인 시각에서 적었더라면 비록 나는 이런 상황이 억울하고 답답하지만 그냥저냥 받아들였을 것이다. 직속 상사로서 직원 관리를 소홀히 한 본인의 잘못을 감추고 싶은 마음도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다면 조금 더 똑똑(?)하게 코멘트를 적었어야 했다. 상사 본인의 무책임함을 무마하기 위해 심지어 공문서에 교묘하게 사실을 왜곡하고 거짓말을 해가며 관장의 권력과 손잡고 이 상황을 나의 생쑈로 돌리는 상사의 모습이 비겁하게 느껴졌고 굉장히 실망스러웠다. (이런 거짓 코멘트는 나의 전투력 향상에 기여했다.)


검토란 다음 섹션의 내용을 보니 실망감이 가시기도 전에 분노가 차올랐다. 그동안 도서관 대출팀에서 단순한 책 수리 보존 업무를 진행해 왔는데, 대출팀의 업무 성격이 교수-학습 지원에 중점을 두는 것으로 바뀌면서 대출팀의 책 수리 보존 업무는 "자연스럽게" 이마크(나)의 담당이 될 것이며, 이는 적어도 내 업무 시간의 50%를 할애해야 하기 때문에 내 포지션의 직무 변경은 불가능하다고 적혀있었다. 같은 부서, 같은 팀도 아니고 다른 부서의 업무를 상호 간에 상의도 없이 어떻게 "자연스럽게" 넘길 수 있을까? 이런 발상을 할 수 있다니 놀라웠다. 


나의 업무 중 하나에 책 수리 보존 업무가 있긴 했다. 그리고 대출팀이 책 수리 업무를 했었던 것도 일부 사실이다. 나의 경우, 내가 직접 책을 수리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 도서관에서 수리나 보존 처리가 필요한 책들을 모아 중앙도서관의 전문 부서로 한 달에 한번 전달하는 중간다리 역할이었다. 매달 해당 부서에 보낼 수 있는 책 수가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내 업무 시간의 절반을 해당 업무에 쓸래야 쓸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대출팀의 책 수리 업무는 전문가에게 간단한 트레이닝을 받은 뒤에 할 수 있는 굉장히 단순한 경우에 한했는데, 책의 낱장이 한 장 떨어져 다시 붙여 넣어야 하는 경우, 커버가 너덜너덜한 경우 등이었다. 이는 전문 부서에 보내 책을 수리하게 되면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데, 책 대출/반납 시에 발견된 파손본 중 단순한 처치는 대출팀에서 바로 처리함으로써 도서자료의 이용서비스가 지체 없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그 단순 수리를 담당하던 대출팀 직원은 은퇴를 했고, 후임이 바로 얼마 전 승진한 문제 직원이었다. 문제 직원은 입사 후 몇 년 간 해당 업무에 대한 트레이닝을 받지 않았고, 그래서 단순한 수리 업무도 내가 한데 모아 중앙도서관의 전문부서로 보내온 지 몇 년째였다. 즉, 대출팀은 더 이상 책 단순 수리업무를 하지 않았다. 


같이 언급된 대출팀의 교수-학습 지원 업무도 나를 분노하게 한 또 다른 이유다. 관장은 도서관의 성격과 목적에 맞지 않게 대출팀 직원이 도서관 이용자에게 직접 언어학습을 제공하기로 결정했고, 이를 위해 문제 직원을 승진시켰다. 누구는 도서관의 성격과 맞지 않는 일을 위해 승진을 시키고, 누구는 조직 내 급선무로 인력이 필요한 업무임에도 무논리로 승진을 강력하게 저지하는 대조적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열받았다. 


안타깝게도 승진 요청서에는 얼토당토않은 관장과 상사의 코멘트에 "사실이 아님"이라고 표시할 수 있는 부분이 없었다. 모든 사실 관계는 서류 검토 부서에서 잘 밝혀내주길 바라며, 찝찝하게 최종 서명을 마쳤다. 


서류에는 적을 수 없었어도, 직접 당사자에게는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퇴근을 앞두고 승진 요청서 검토란에 적은 의견 잘 봤는데 궁금한 게 있다고 상사에게 말을 걸었다. 처음에 상사는 검토란에 적은 내용은 모두 관장이 적은 거라 본인은 잘 모른다고 했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상사와 관장의 직급 차이에서 생기는 정보력 때문에 검토란의 내용은 딱 봐도 누가 어떤 부분을 썼는지 확연히 알 수 있었다. 게다가 본인이 주어 I를 써가며 "나는 몰랐다, 나는 이마크 의견에 반대한다." 등을 잔뜩 써놓고서는 아무렇지 않게 본인이 안 썼다고 시치미를 뚝 떼는데 어이가 없었다. "누가 썼든 어쨌든 한국책 카피편목에 대한 내용은 상사도 알다시피 내가 담당하지 않은 업무인데, 왜 제가 했다고 적어놓으신 거예요?"라고 묻자 상사는 화를 내기 시작했다. 본인은 내 베이비시터가 아니라며, 업무 분장에 적힌 내용대로 업무내용과 업무량을 내가 스스로 잘 관리했었야 했다며 내 탓을 했다. (언제는 업무 분장에 적혀있는 걸 하지 말라면서요. 참나!) 그리고 이런 문제 상황은 더 진작에 보고를 했어야 한다며 점점 언성을 높였다 (보고 했는데 관장과 상의 중이라면서요! 3년째!!). 심지어 자꾸 이런 식으로 나오면 지금 현재 임시로 맡고 있는 자체편목 업무도 당장 빼버리겠다며 으름장을 높으며 쌩하고 퇴근을 해버렸다. 


말이 안 통해도 이렇게 안 통하고 심지어 협박까지 하는 모습이라니! 나도 퇴근이나 해야겠다 싶었는데 웬일로 관장이 우리 오피스에 들렀다. 마침 잘 됐다 싶어 관장에게도 물어보았다. "관장님, 검토란에 쓰신 대출팀 책 수리 업무가 저한테 오는 게 도대체 무슨 말이에요? 그랬더니 상사와 똑같은 답변을 했다. 검토란에 적힌 내용은 모두 내 직속 상사가 적은 거니 상사에게 문의하라고 했다. 헛웃음이 나왔다. 더 이상 질문도 대화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 "일단 제가 최종서명은 했지만, 검토란에 적힌 내용은 사실과 달라 저는 동의 못합니다. 알고 계시길 바라요."라고 대화를 마무리지었다. 


'본인이 적었다고 떳떳하게 밝히지도 못할 내용을 왜 공문서에 적어둔 걸까? 그래도 떳떳하지 못한 내용인 건 알긴 아는가 보네? 사실 왜곡으로 모든 사건을 나의 생쑈로 몰고 가기로 작당모의를 했으면, 좀 더 치밀하게 미리 입이라도 맞추지. 의리도 없고, 허술하다 허술해.' 아무렇지 않게 거짓말을 하는 그들을 보고 있자니, 이 모든 상황이 너무 어이가 없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심사 기관에서도 승진 요청서를 60일 내에 검토를 마무리해야 하는 마감기한이 있다는 것이다! 두 달만 버텨보자! (스포: 두 달이면 끝날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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