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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도비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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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마크 Jun 30. 2024

잭팟 대신 변수가 터졌다

승진 가능한 걸까?

라스베가스에 다녀왔다. 미리 계획해 두었던 휴가였는데 마침 타이밍이 참 좋았다. 비록 공식 승진요청서에 최종 서명마저도 매우 험난했지만,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심의 결과를 기다리는 일뿐이었다. 지난 일은 모두 잊고 아무 생각 없이 호캉스를 하며 지친 몸과 마음을 재충전하기 딱 좋은 때였다. 이왕이면 잭팟도 터지면 좋고!! (비나이다 비나이다, 잭팟 터지게 해 주옵소서!)


한창 휴가를 만끽하고 있는데, H선생님께 "대박 사건"이라는 카톡이 왔다. 휴가 끝나고 돌아오면 얘기하자고 하셨지만, 벌써 무슨 일인지 궁금해졌다. 당시에 나는 선생님께 자주 하소연을 하고 조언을 듣고 했었는데, H선생님은 선생님대로 중국관장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계셔서 종종 본인의 이야기도 들려주시며 나를 위로해 주곤 하셨다. 여태껏 겪고 듣은 바로는 '또! 또! 또! 중국관장이 또...!!! 해도 해도 진짜 너무하네' 정도의 생각이 들었을 뿐 '대박 사건'이라고 부를만한 일은 없었기에 그 내용이 더 궁금했다. 


호캉스로 온 휴가라 먹고 구경하고 쉬는 일의 반복 말고는 별다른 일정이 없었기에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선생님께 전화를 걸었다. 내용을 듣자마자 "헐, 왜요? 대박!!!"이라는 말이 바로 나왔다. 내용인즉슨, 윗선에서 퇴직으로 공석이었던 한국 목록사서 자리의 채용 계획을 무산시키고 목록 업무를 외주를 주기로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었다. 채용이 무산된 배경이 어처구니없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얼마 전 노조와의 승진요청 미팅에서 왜 관장이 "외주" 얘기를 꺼냈는지 이제야 퍼즐조각이 맞춰지는 느낌이었다. (미국회사인데 중국회사입니다. 참조.)


그때 나는 너무 황당한 나머지 미팅이 끝나자마자 동료 한국선생님들께 "관장이 한국책 목록을 외주를 주면 된다는데요???"라며 미팅 내용을 얘기하자, 선생님들 모두 "이마크씨 일 잘하고 있는데, 무슨 외주??? 마크씨 직급 바꿔주고 목록 업무 더 하게 하면 되지, 외주는 무슨 외주야~ 말도 안 돼~"라며 관장의 "외주" 언급을 헛소리라고 생각했다. 


일개 직원 나부랭이인 나는 직원회의를 통해서 배경 설명 없이 중요 사안에 대한 결과만 들을 수 있었고, 부장 직급으로 중간관리자인 H선생님은 당연히 나보다 훨씬 회사 내 정보통이었지만 관장의 정보통에 비할 수는 없었다. 그러니 아무것도 몰랐던 우리는 당연히 관장의 "외주" 얘기를 엄청 뜬금없는 소리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하지만 목록 사서 채용 무산이라는 소식을 듣고 나니 관장이 외주를 언급했던 내 노조 미팅과 시기적으로 맞아떨어지며 윗선에서는 벌써 무슨 얘기가 오가고 있었구나라고 대강 짐작을 할 수 있었다. 


목록 사서 공석 자리는 채용공고가 나면 나도 지원해보고 싶었던 자리라 아쉬웠다. 하지만 그보다 내가 놀란 이유는 일이 이상하게 꼬였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직속상사와 중국관장이 내 업무분장 조정을 아무 관련도 없는 공석인 목록사서 자리와 이상하게 엮어 내 업무분장을 제대로 해결할 의지를 보이지 않았을 때도 짜증이 났을 뿐 걱정스럽지는 않았는데, 이제 상황이 살짝 우려되기 시작했다.


내가 제출한 승진요청서는 심의결과가 나오기까지 정해진 기한이 있었다. 승진요청서를 상사에게 제출한 날로부터 30일 안에 관리자는 검토를 마쳐 심의기관으로 서류를 전달해야 했고, 심의기관은 서류를 받은 날로부터 60일 안에 심의 결과를 내야 했다. 즉, 즐거운 이 휴가기간을 포함해 앞으로 60일만 기다리면 승진이 되든 뭐가 되든 내 업무분장과 관련된 모든 논쟁을 끝낼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심사는 내가 승진요청서에 적은 대로 내 포지션에서 해온 일이 앞으로도 쭉 계속될 것이라는 전제하에 이루어진다. 지금 60일이 문제가 아니었다. 도서관이 앞으로 쭉 한국책 목록업무는 외주를 준다면 예전처럼 내가 한국책 목록을 할 일도 없고, 도서관에서는 더 이상 한국책 목록업무 담당자가 필요하지 않으니 나를 승진시킬 이유도 없어지는 것이었다. 가장 최악인 건 누가 봐도 그 외주 관리 업무를 내가 맡게 될 것이 자명하다는 사실이었다. 여러모로 내 포지션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었다. 


휴가는 즐거웠고 잭팟의 행운은 없었다. 다시 도비가 되어 회사로 복귀했다. 잭팟은 안 터졌지만, 변수는 팡팡 터졌다. 전 직원회의를 통해 한국 목록 사서 채용 계획이 무산되었고, 앞으로 외주를 줄 것이라는 결정 내용을 공식적으로 듣게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직속상사는 입사 이래 처음으로 내 업무분장표를 변경했는데, 한국 목록 외주 업무 관리가 새롭게 들어가 있었다. 나는 이 사실을 노조에게 알렸다. 


내 노조 담당자는 예전에 승진까지 최대 2년이 걸린 케이스도 있긴 했지만, 여태 한 번도 승진에 실패한  적은 없다며 혹시나 실패한 케이스가 생기면 그건 나일 것이라는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 내 케이스 자체에 대해서는 그만큼 자신이 있지만, 노조담당자가 보기에 나의 승진을 방어하는 중국관장과 직속상사의 태도가 상상 이상으로 최악이라 했던 말이었다. 내가 그녀의 유일한 실패 사례가 되지는 않았지만, 이는 노조 담당자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첫 노조담당자는 직원의 직무/직급 재배치 전문 담당자였다. 노조담당자는 외주와 관련해 노조 내 여러 곳에 자문을 구했지만 뚜렷한 답을 얻지 못했고, 내 상황이 너무 특이한 케이스라 노조집행부로 넘기게 되었다며, 새로운 담당자를 연결해 주었다. 새 담당자에게 간략히 내 상황 설명을 했는데, 이 상황에서 노조가 도와줄 수 있는 건 없어 보였다. 


노조를 찾아가면 도움을 팍팍 받아 모든 게 잘 해결될 줄 알았다. 하지만 외주라는 변수가 나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역시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 법이다. (늘 새로워, 짜릿해!) 승진요청건에 대해 아직 심의부서와 미팅이 남아있다. 내 일이니까 후회가 남지 않도록 모든 과정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하지만 외주라는 변수 등장에 내 승진 가능성이 희박해진 것도 사실이라 이 일이 어떻게 흘러갈지 나도 궁금하다. 내 일이긴 하지만 관람객 모드로 살짝 태도를 바꿔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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