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빵 소녀 앞에서 부끄러운 어른
이 시대 어른의 역할은 어디까지일까
최근 들어 흡연하는 청소년들의 모습을 쉽게 보게 된다. 얼마 전에는 한 식당 앞에서 중고등학생들이 교복 차림으로 모여 담배를 피우는 모습에 '세상 참 많이 변했구나.' 했는데 오늘은 중학생으로 보이는 한 여학생이 길을 걸으며 버젓이 담배를 피우는 모습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분명 나와 눈까지 마주쳤는데 그 학생은 너무도 당당히 연기를 내뿜어 내가 더 민망해졌다.
과거에는 소위 문제아라고 불리는 아이들도 숨어서 담배를 피우거나, 어른이 나타나면 끄는 시늉이라도 하지 않았던가. 담배 피우는 청소년들에게 선도의 말조차 할 수 없게 된 지 오래지만 눈을 맞추고 연기를 내뿜는 강단은 대체 유래가 어디란 말인가.
요즘 애들은 왜 이렇게 개념이 없나.
가정에서는 대체 어떻게 교육을 시키는 건가.
공교육의 위신이 땅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학교에서 배울 텐데 왜 저럴까.
오만가지 생각으로 그 아이들의 인성을 탓했는데, 이게 꼭 아이들만의 문제라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닫자 어른으로서 더 부끄러워졌다. 백 프로는 아니겠지만 그 아이들이 담배를 구하는 경로 중 하나가 '수고비를 받고 대신 사다 주는 어른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나서부터다. 게다가 '흡연카페'라는 곳이 청소년들의 랜드마크가 되고 있다는 뉴스를 본 이후에는 정말 어른으로서 얼굴을 들 수 없을 지경이 됐다.
해당 뉴스에 따르면 실내 금연이 일상화된 상황에서 흡연이 자유로운 곳이 있는데 흡연카페도 그런 곳이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그러겠다는데 뭐 어떤가 싶지만 문제는 중고등학생들의 출입이 잦다는 것이다. 그곳에선 신분증 검사가 이뤄지지 않는 데다 그들이 담배를 피워도 제지 없이 방치되고 있었다고 뉴스를 전했다.
'룸카페'라는 곳이 특별한 출입 제한을 하지 않아 청소년들의 탈선 장소가 되고 있다는 뉴스에 황당했던 게 얼마 되지 않았는데 또 이런 뉴스를 접하고 나니 개탄스러웠다.
영유아를 키우면서 '아이들은 잘못이 없다. 잘못은 어른에게 있다.'는 말을 흔히 듣게 된다. 그만큼 아이들이 자라는 데 어른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렇다면 청소년들의 당당한 흡연 문제도 어른의 책임이 큰 것은 아닐까.
어른에게는 자라나는 청소년들을 유해환경으로부터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아무리 세상 살기 힘들어도 청소년들에게 탈선의 빌미를 제공하며 돈 벌 궁리를 해서는 안 될 것이고,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보다 체계적이고 실질적인 규제의 기준이 필요할 것이다.
어떤 이들은 담배는 개인의 기호식품이니 청소년들의 기호를 적정선에서 존중해 줘야 한다고도 한다. 요즘은 개인의 행복과 권리가 중요한 시대이니 더 그래야 한다고. 건강을 해치는 것 역시 그들의 선택에 따른 책임이라고.
그렇다고 그들의 잘못된 선택을 묵인할 수만은 없지 않은가. 시대의 흐름이 그렇다면 어른의 몫은 더욱 중요해진다. 지금 이 시대 어른의 역할에 대해 깊게 고민해 봐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나는 어떤 어른이어야 할까. 내 아이들을 생각하니 책임이 더 무거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