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좋아서, 좋지 않아서, 모든 날에 산책

by 이니슨
산책 : 나만의 속도에 맞춰 담담히 나를 들여다보는 걸음


마음이 소란할 땐 환기가 필요하다.

구석에 콕 틀어박혀 웅크리고 있으면

더 깊은 동굴로 빠져든다.

일단 밖으로 나가야 한다.


혼자 걷는 걸음은 오로지 나에게 맞춰진다.

내 속도에만 맞춰 앞으로 나아간다.

타인에 신경을 두지 않아도 되는,

고요히 나를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다.



엉켜버린 실타래를 풀려면

멀리 놓고 보면서 엉킨 부분을 찾아야 한다.

아주 작은 틈이라도 찾아내면

생각보다 쉽게 풀어낼 수 있다.

마음도 마찬가지다.

너무 급하게 달려들면 더 엉킬 뿐이다.


나를 옥죄는 어떤 것으로부터 한 발짝 물러선다.

목적지도 없이 어딘가로 향하다 보면

햇살이, 바람이 나를 스친다.

잠시 숨을 고르고 신선한 공기를 마셔본다.


깊숙이 들이마신 숨을 길게 뱉으며

나에게 집중한다.

음악을 들어도 좋고, 자연의 소리를 들어도 좋다.

그렇게 담담하게 걸어 나가면 그뿐.


어느 순간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

나뭇가지 사이로 비치는 햇살,

꽃잎을 흔들어 놓는 바람,

대자연을 품은 공기.

소란하고 복잡했던 마음에도 틈이 보인다.


기분이 울적해서 시작한 혼자만의 산책은

이제 기분이 좋을 때도, 그렇지 못할 때도

집을 나서게 하는 습관이 됐다.

마음이 좋아서, 좋지 않아서, 모든 날에

산책을 한다.


여정이란 꼭 먼 곳에서만 가능한 것이 아니었다. 익숙한 길, 우연한 길, 새로운 길, 그 어떤 길 위에서든 나를 둘러싼 풍경은 끊임없이 달라지며 새로운 풍경을 펼쳐내고, 그 앞을 걸어가는 나 역시 한 발씩 내디딜 때마다 미세하게 달라져 있다.

산책을 할 때에는 한 걸음 한 걸음마다 시간이 느리게 흘러간다. 시간을 느슨하게 만들면 풀리지 않을 것 같던 단단한 마음의 매듭도 살짝 헐거워진다. 그렇게 헐거워진 매듭 사이로 빠져나오는 고통들을 스쳐가는 바람과 길 위에 다 조금씩 흘려버렸다.

- 매 순간 산책하듯(김상현 지음, 시공사)


같은 길이어도 매일이 다른 그곳에서

충분히 내 시간을 보낸다.

더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갖는다.

나를 들여다보고 찾고 토닥이고 칭찬하고 응원한다.

괴로운 것들을 털어낸다. 그리고 새 마음을 다짐한다.


오늘도 산책하기 참 좋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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