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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이 스스로 찾아오는 이유

반복된 걱정이 뇌에 남긴 자국들

by 네덜란딩 민수현

아버지는 내게 종종 말했다.

“불확실성을 이겨내는 것이 삶의 지혜다.”


예전엔 이 말이 너무 추상적으로만 들렸다. 하지만 서른을 넘기고, 삶이 나에게 더 많은 가능성과 동시에 더 많은 불확실성을 안겨줄수록 아버지의 그 말이 얼마나 현실적인 조언이었는지 알게 된다.


미래가 불확실하다는 이유만으로 지금의 빛을 흐릿하게 만들며 살아가는 경우가 있다

1. 불안은 이렇게 시작된다


우리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이미 벌어진 일처럼 받아들인다.


가진 것보다 가지지 못한 것을 먼저 세고, 이미 이뤄낸 것보다 부족한 것만 확대해서 본다. 일어나지 않은 일들에 대해 걱정을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미래의 그림자가 현재의 빛을 삼켜버린다. 하지만 사실 이 ‘현재의 빛’은내가 살아오며 쌓아온 모든 증거의 총합이다.


작은 성취들, 반복된 노력, 넘어졌어도 다시 일어났던 순간들,

실패 속에서 발견한 통찰들, 내가 나를 증명해온 수많은 데이터들.


문제는 불안이 이 데이터를 읽지 않는다는 것이다. 불안은 방대한 데이터셋 전체를 비활성화한 채,해석되지 않은 하나의 실패나 한 번의 모호함을 ‘전체 패턴의 대표값’처럼 잘못 연결한다.


사실 그 작은 사건은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완성된 데이터가 아닌데, 불안은 그것을 미래 전체의 결론처럼 과대해석한다.


이처럼 불안은 완성되지 않은 하나의 변수 미래 전체의 예측 모델 이라는 방식으로 잘못된 상관관계를 만들어낸다.


2. 왜 불안은 이렇게 강하게 찾아올까?

나는 불안의 구조가 궁금해 관련 연구와 논문을 찾아보았다.


불안은 약함이 아니라 뇌가 불확실성에 반응하는 생존 방식이다. 신경과학자 Grupe & Nitschke(2013)는 불안을 이렇게 정의했다.

“불확실성과 위협의 예측이 불안의 본질이다.”


그들의 연구에 따르면 뇌는 ‘확실한 위험’보다 ‘언제 올지 모르는 가능성’을 더 큰 위험으로 인식한다.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커질수록위험 조절을 담당하는 전전두엽(PFC)은 약해지고,공포 반응을 일으키는 편도체(amygdala)는 과활성화된다.


또 다른 연구(Gu et al., 2020)에 따르면우리는 모두 ‘불확실성을 견디기 어려운 성향(IU)’을 갖고 있으며, 이 성향이 높을수록 걱정이 더 쉽게 커지고,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수만가지의 시나리로을 설계하며, 일어나지 않은 미래를 실제 위협으로 착각하게 된다.


즉, 불안은 ‘내가 유난해서’ 생기는 감정이 아니라 인간의 생존 욕구, 기본 설계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감정이다.


이 부분을 특히 더 집중해서 보았다.


Gu et al.(2020)은 불확실성을 견디는 힘(IU)이 낮을수록

작은 모호함에도 자동으로 걱정이 발생하며, 이 걱정이 반복되면 뇌가 이를 기본 반응(default response)으로 채택한다고 밝혔다.


즉, 불안은 반복될수록 더 빨라지고 더 자동적이 된다.하나의 자극 걱정 불안 신체 반응 “이 상황은 위험하다”라고 뇌가 학습 다음에는 더 빨리 불안 발동이 된다.


이 루프가 바로 불안의 습관화(habitual anxiety)다.불안이 “스스로 찾아오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내가 유난해서 혹은 예민해서가 아니라, 뇌가 그 방식을 오래 학습해 왔기 때문이다.


3. 불안에 대한 생각

우리는 다 스스로를 아낀다. 스스로가 만든 선택들, 과거의 추억들이 다 소중하다. 힘듦속에서도 나를 지켜내고 싶어할 것이다. 그치만 불안은 스스로개 행복하고 싶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인 것 같다.


철학에서 불안은

도망칠 감정이 아니라 ‘깨어남의 신호’로 해석된다.


키르케고르 —

“불안은 가능성의 어지러움이다.”


하이데거 —

불안은 존재가 스스로를 인식하는 순간이다.


스토아 철학 —

“통제할 수 없는 것은 내려놓아라.”


철학자들은 모두 말한다.불안은 나를 혼내기 위해 오는 감정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다시 바라보라는 신호라고.


4. 불안을 다루는 법

최근 일을 그만두었고, 무직 상태가 되었다. 어떤 미래를 향해 순향할지는 모르겠지만 현재에 충실하고 있다. 그럼에도 문득 불안감이 찾아올때도 있다. 나 잘할 거야! 에서 나 잘할 수 있겠지?로, 더 쉬어야지! 에서 복귀를 해야하는데 이시기에 하고 싶다. 빠르게 흐르는 시간 안에서 가끔은 형용할 수 없는 불안감이 찾아오기도 한다.


아버지의 말은 미래를 통제하라는 말이 아니었다.


불확실성을 이겨낸다는 것은 불확실성을 인정하고 견디는 힘을 기르는 것이다.

• 작은 실패를 전체 패턴으로 일반화하지 않기

• 아직 완성되지 않은 데이터를 미래의 결론처럼 보지 않기

• 불안의 습관화를 인지하고 루프 끊기

• 조건이 아닌 ‘나라는 존재 ’를 다시 바라보기

• 내가 살아온 증거(데이터)를 과소평가하지 않기

• 불안을 없애려 하기보다, 오히려 ‘지나가게 두기’


불안은 없어져야 하는 감정이 아니라 그저 ‘날씨’처럼 왔다가 사라지는 감정이다.계절이 지나고 새로운 온도와 풍경이 나를 맞이하듯 불안또한 지나가고 또 오고 그렇게 반복될 것이다.


떠오르면 바라보고, 사라지면 조용히 보내면 된다.


불안이 나를 덮으려 할 때마다 나는 아버지의 그 짧고 단단한 문장을 다시 떠올린다.


“불확실성을 이겨내는 것이 삶의 지혜다.”


-- 개인적인 이야기


어쩌면 더 잘해야하고, 이뤄야한다는 사회적인 압박과 시선들, 불안을 더 크게 만든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니 내가 늦거나 뒤쳐지는 느낌을 받으면 불안하고.. 내가 퇴사를 할 때, 몇몇 상황을 모르는 사람들은 말했다. 그 회사면 버텨야지 그러면 미래가 성공인데! 이 말이 순간 적으로, 일시 적으로 날 불안하게 했다. 내가 정말 버텼어야했나? 이회사에서 5년을 버티면 내 인생을 달라졌을까? 부자가 됐을까? 나는 조건을 가진 나를 존중하지 않는다. 그 누구도 조건으로 판단하지 않는 것 같다. 언제나 없어질 수 있는 조건이 아닌 내 자체의 모습, 마음, 생각, 나를 지키는 행복이 중요한 걸 알았다. 또 취준을 하다가 적시적기에 내가 원하는 곳에 취업하면 좋겠지만 순탄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혹여나 불안이 찾아오더라도 나는 계절이 오듯, 날씨가 변하듯 또 잠시 이런 생각이 찾아왔군. 하지만 나는 나다! :) 라는 마음으로 지내보려 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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