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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호 Feb 27. 2024

신채호 <조선상고사>

제3장 옛 조선의 종류와 그 득실 양평

조선 상고부터 고구려 초엽까지 정치상 사실을 기재하여 <유기>라 이른 것이 100권이었는데 위나라 장수 관구검의 난에 다 빼앗겼다. (중략) 백제는 중엽에 고흥 박사가 <신집>을 짓고, 신라는 진흥대왕 전성시대에 거칠부가 <국사>를 지어 삼국의 전고(典故)를 갖추어 놓았으나, 오늘에 그 한 구절 한 글자도 남아 있는 것이 없으니 이는 천하 만국에 없는 일이다. 역사의 영혼이 있다 하면 처참한 눈물을 뿌릴 것이다. (중략) 지금에 전하는 것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뿐이다. 

(중략)

고려 말엽에 임금과 신하들이 고종 이전 나라 형세가 강성하던 때 기록은 몽골이 꺼리고 싫어할까 두려워서 깎아 버리거나 고쳤다. (중략) 세종이 권근과 정인지 등에게 명하여 <조선사략>, <고려사>, <고려사절요> 등을 편찬하게 하면서 몽골 압박을 받던 고려 말엽 이전 조선의 각종 실기에 따라 역사를 짓지 못하고 몽골 압박을 받은 뒤로 외국에 아첨한 글과 위조한 고사에 따라 역사를 지어 구차스럽게 사업을 마쳤다. 그리고 정작 전대 고려시대 실록은 민간에 전해짐을 허락하지 않고 규장각 안에 비장해 두었는데, 임진왜란 병화에 죄다 타버렸다

(중략)

신지 아래 역사를 감추어 두는 버릇이 역사의 고질이 되어, 조선왕조에서도 중엽 이전에는 <동국통감>, <고려사> 등 관에서 간행한 몇몇 책 이외에는 사사로이 역사를 짓는 것을 금했다. 그래서 이수광은 내각에 들어가서야 고려 이전 비사를 많이 보았다 하였고, 이언적은 <사벌국전>을 짓고도 친구에게 보이는 것을 꺼려 했다. 당대 왕조의 잘잘못을 기록하지 못하게 하는 일은 다른 나라에도 간혹 있지만, 지나간 고대 역사마저 사사로이 짓거나 읽는 것을 금하는 것은 우리나라뿐이었다. 그래서 역사를 읽는 이가 별로 없었고.

(중략) 

뒤에 일어난 왕조가 앞 왕조를 미워하여, 역사적으로 자랑할 만한 것은 무엇이든지 파괴하고 태워 버리기를 일삼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신라가 일어나자 고구려·백제 두 나라 역사가 볼 것이 없게 되었고, 고려가 서자 신라 역사가 볼 것이 없게 되었으며, 조선왕조가 고려를 대신하니 고려 역사가 볼 것이 없게 되어, 늘 현재로서 과거를 계속하려 하지 않고 말살하려 하였다. 그래서 역사에 쓰일 자료가 박약해졌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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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채호 선생의 주장에 긍정하는 사람도, 인정하기 어려운 사람도, 부정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우리의 역사를 알려주는 자료가 너무도 부족하다는 것이 아닐까요. 중국과 일본의 기록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재의 모습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여기에 대해서도 비판한 신채호 선생의 글을 다음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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