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생A의 유학 일기
*유학생활을 하며 보고 느낀 점들을 일기 형식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의건이나 두서없는 서술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 글은 [The Thin Ice - Pink Floyd]를 들으시면서 읽으면 더욱 좋습니다.
나는 10년 차 유학생이다.
아직도 나는 뚜렷이 기억한다. 2014년 1월 11일, 그전까진 10번도 타지 않았던 비행기를 6시간이나 타고 말레이시아라는 나라에 무모한 발걸음을 내디뎠을 때를. 그로부터 햇수로 10년이 되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나도 참 끈질기다.
사실 아직까지도 내가 맞는 길을 걷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 때가 많다. 모든 이들이 그러하듯, 나 역시도 답이 정해진 삶을 살고 있지는 않으니까. 말레이시아, 미국을 거쳐 캐나다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고민과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고, 앞으로도 수없이 겪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겪을 무수한 개인적/환경적 변화들 역시 필연적으로 마주치는 교차로 같은 존재들일 것이다.
어쩌면 캐나다가 마지막 목적지가 될 수도 있고, 또 다른 나라, 또 다른 도시에서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어쩌면 지금 하는 공부가 아닌 또 다른 무언가를 공부하고 있을 수도 있다.
어쩌면 긴 유학생활을 청산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완전히 새로운 무언갈 할 수도 있다.
어쩌면...
이건 내가 특별한 유학생의 부류 중 하나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유학생이라면 누구나 겪는 고민과 사유의 과정이다. 만약 본인이 이러한 고민을 안고 있는 유학생이라면, 개인적으로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하고 싶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신이 갖고 있는 목적의식이 변화하고, 어디서 어떤 공부를 할지가 끊임없이 바뀌기 때문이다. 나 역시 행선지와 전공을 완전히 뒤바꾼 전력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고민들은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그런 과정이 있어야만 유학 생활을 버틸 수 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일부 유학원들과 유학 낙관론자들이 여러 매체들을 통해 보여주는 환상 가득한 정보들은 유학을 희망하는 사람들을 섣불리 부추길 뿐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들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유학은 분명 누군가에게는 밝은 미래를 가져다주는 수단일 테니. 분명 유학생활이 주는 나름의 유니크한, 한국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시간들을 무시할 순 없다. 그 과정에서 배우는 언어 및 지식들, 문화적 견문, 시야와 인맥의 확장 등은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유학생이라는 신분은, 그 환상에서 비롯된 화려함에 비해 그 속은 해질 대로 해진 천조각과 같다. 따뜻한 집을 떠나 완벽한 타지에서 혼자 감내해야 하는 시간들은, 마냥 밝게만 표현될 수는 없다. 온갖가지 인간군상들은 말할 것도 없고, 서구권에서 흔히 겪는 인종차별들, 언어와 문화의 장벽, 좋은 성적을 받아야 한다는 부담감과 원하는 성적표를 받아 들지 못했을 때의 좌절감 등등... 유학생활 시작 전 꿈꾸던 행복한 순간보다는 힘들고 후회되는 순간이 더 많을 수도 있다. 이 순간들을 버티지 못하고 본국으로 돌아가거나 술과 파티에 찌들어 살고 심지어 마약에 손을 대는 등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가는 사람들도 많다.
나는 유학에 대한 밝은 환상도, 막연한 공포감도 심어줄 생각도 없다. 이는 유학에 대한 괜한 편견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경험이라는 것은 획일화될 수 없는 것이고, 이를 통해 배우는 것도 사람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이렇다 저렇다 말을 해줄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유학을 가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라고 나에게 묻는다면, 내가 해줄 수 있는 답은 단 하나다.
"알아서 결정해."
혹여나 내 글로 인해 유학의 결심을 접었다면, 미안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선택이다. 무책임하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어쩔 수 없다. 애석하지만, 만약 내 글들로 인해 접힐 결심이었다면 그 유학은 성공할 가능성이 적다고 말해주고 싶다.
냉정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것이 유학과 해외 생활의 현실이다.
다만 이제 조금씩 써 내려갈 '유학 일기'라는 연재글에서 내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은, 그 어떤 것도 꾸미지 않은 그냥 날 것의 내 삶이다. 구태여 미사여구를 붙여가며 포장하고 싶지도 않고, 부정적인 표현들로 지레 겁먹게 하고 싶지도 않다. 유학원 하나 방문하지 않고 맨 땅에 헤딩하며 살았던 10년 간의 시간들, 그리고 이제 또다시 시작될 나의 유학생활을 가감 없이 서술할 예정이다. 아마도 캐나다에서 겪을 이야기들이 주가 되겠지만, 두서없이 지난 시간 동안 겪었던 경험들을 무작위로 써서 올릴 수도 있다. 사실 나도 날 잘 모르겠다.
물론 내 글에 대한 판단은 독자들의 몫이다. 그저 재밌는 이야기 정도로 받아들여도 좋다. 지금 유학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삶과 비교해보아도 좋다. 만약 유학을 꿈꾸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내 글이 조금은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나는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유학생 A'와 같은 존재이지만, 내 글이 독자들로 하여금 유학 및 해외 생활에 대한 것들을 조금이나마 들여다보고, 그것이 무엇이든 본인이 얻을 수 있는 것들을 얻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p.s. 쓰다 보니 너무 염세적인 글이 되어버린 것 같다. 매일매일이 지옥 같고 무조건 견뎌야만 한다는 것이 아니다. 환상이라는 거품을 걷어내고 현실을 직시하고자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