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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학생A Apr 28. 2023

#3. D-4, 독백

유학생A의 유학 일기

*유학생활을 하며 보고 느낀 점들을 일기 형식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두서없는 서술이 있을 수 있으니 양해 바랍니다.

*이 글은 [패닉 - 로시난테]를 들으시면서 읽으면 더욱 좋습니다.



April 27, D-4


오늘은 4월 27일, 출국일로부터 4일이 남은 날이다. 가장 속을 썩였던 집 문제도 (임시방편적이지만) 해결됐고, 짐도 거진 다 쌌다. 비행기표는 진작에 예매가 끝났다. 이제 나는 또 다른 시작 앞에 서있다. 조금 솔직해지자면, 설레면서도 마음 한편에는 약간의 두려움이 존재한다. 또다시 내 고향을 떠나 먼 곳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앞길을 막연히 나 혼자 걸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두렵다.


불현듯 2014년 1월의 내 모습이 떠오른다. 멋모르고 언어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환경과 정서가 전혀 다른 곳에 캐리어 하나 끌고 발걸음을 옮기던 만 15세의 나.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그때의 나는 마냥 해맑았던 것 같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그저 해맑은 소년.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내 모습을 본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잘 버텼다고 어깨를 토닥여줄까, 아니면 왜 아직까지도 이러고 있냐고 아연실색할까. 모르긴 몰라도 그 고생을 하고도 또다시 짐을 싸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내 모습에 놀라지 않을까 싶다.


내가 있던 고등학교의 풍경. 아이폰 4s로 찍은 사진이다.



모든 일은 시작이 있어야만 존재한다.


'시작이 반이다 (Well begun is half done)'


마치 클리셰처럼 너무나 많은 곳에서 사용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그 의미를 간과하기 쉬운 속담이다. 그 사전적 정의는 '시작이 어려워 보일지라도 일단 시작하면 끝을 맺기에 그리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말뜻에서 '끝'이라는 마무리에 집중하기 마련이지만, 이 말의 진정한 저의는 '시작'에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일은 시작이 있어야만 존재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일들, 하물며 실수들 역시 그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시작점이 나오기 마련이다. 하물며 삶의 첫 지점에도 그 '시작'이 존재한다.


하지만 시작은 여전히 나에게 언제나 어렵고, 불안한 존재이다. 왜그런지 생각해보면, 시작선 앞에 서있는 나의 마음 한 구석에는 언제나 설렘과 불안함이 공존했다. 그리고 이 오묘한 감정의 발현이 시작이라는 첫 도미노를 쓰러뜨리기 어렵게 만든다. 사실, 내 유학생활을 돌이켜보면 항상 그러했다. 아니, 비단 유학생활뿐만 아니라, 여행을 갈 때도, 비교적 늦은 나이에 입대했을 때도,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사귀기 시작했을 때도 내 마음속은 항상 그러했다.


모든 일은 불확실하다.


시작이라는 출발선 앞에서 우리 (아니, 적어도 나)는 그 앞길에 무엇이 있을지 모른다는 무지함에서 오는 불안감과 자칫하면 돌이킬 수 없는 실패를 겪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애석하게도 마치 부모를 잃어버린 어린아이처럼 겁쟁이가 되어버린다. 그리고 그리하여 수많은 '시작'을 놓쳐버리고 만다


사실 무책임할 수 있지만, 내 앞 길을 내가 어찌 알겠는가. 사실 우리가 예언가도 아니거니와, 미래는 아무도 알 수 없지 않은가. 누군가 나에게 몇 년 후의 일을 상세히 알려준다면 얼마나 좋겠냐만은, 그 어떤 예언도 정확한 내 삶을 들여다봐주지 못한다. 그렇기에 우리의 삶은 항상 두렵고, 또 무섭다. 오죽하면 [이번 생은 처음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수많은 사람들이 점을 보고 사주를 보겠는가.


하지만 이런 두려움이 있기 때문에 나는 그 안에서 최선의 결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려고 한다. 나의 해외 생활은 언제나 빛 한줄기 들어오지 않는 터널을 걷는 기분이었다. 모든 것을 스스로 부딪히고 깨지면서 경험하고 나아갔다. 만약 좋은 결과가 나에게 주어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항상 그런 결과가 도출되진 않는다. 내가 어떻게 하지 못하는 일들은 내 능력 밖의 일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최선 (때에 따라서 차악)의 결과를 나 자신에게 주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에 최선을 다하고, 그다음의 흐름을 바라보는 수밖에 없다.


무서웠고, 여전히 무섭지만, 그게 내 삶인걸.


이번 캐나다에서의 긴 여정 역시, 나조차도 내 앞길이 꽃길일지 가시밭길일지 알지 못한다. 학점이 생각했던 것만큼 나오지 않아 실망하고 좌절할 수도 있고, 학점이 잘 나와 장학금을 받을 수도 있다. 친구를 많이 사귈 수도 있고, 친구를 많이 못 사귈 수도 있다.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맨몸으로 있는 힘껏 부딪혀 최선의 결과를 받아 드는 것이다.


이제 길면 2년이 넘을 긴 여정의 시작이 단 4일 남았다. 아까도 말했듯이 시작이 반이라지만, 여전히 두렵다.


그러나 이제 피하기엔 늦었다. 부딪히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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