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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파파 Jun 20. 2024

019 거인의 노트(김익한 저)

기록은 무엇을 기록할지가 아니라, 무엇을 기록하지 말아야 할지가 중요하다


조선왕조실록을 위시한 우리 역사의 무수한 기록들은 우리가 배달민족보다 기록민족이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리게 해 준다. 이 책의 저자인 김익한 교수는 기록학자이다. 우리는 매일 수많은 기록물에 파묻혀 살고 있지만 기록학자란 말은 익숙지 않다. 기록이란 사실 그대로를 남기면 되는 일인데 굳이 기록학자가 필요한가?라는 생각이 먼저 드니 말이다. 하지만 저자의 말에 따르면 기록학자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을 기록하지 않을지 판별하는 능력이라고 한다.  

과거에는 기록하기 위해서는 한지와 먹과 붓, 그리고 글을 쓸 수 있는 사람 등 많은 비용이 들었다. 그래서 꼭 필요한 내용을 선별해 기록하는 것이 중요했다. 하지만 현대 사회는 다르다. 24시간 수많은 곳을 1초의 흘림도 없이 영상으로 기록할 수 있는 CCTV들부터 음성을 문자로 바로 변환해 주는 스마트기기들까지 원하면 일어나는 모든 일을 기록하고 보존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기록들이 기록으로서 가치가 있을까? 기록은 누군가에게 정보를 전달하여 특정한 용처에 쓰여야 그 존재의 의미가 있다. 이렇게 유의미한 사용이 동반되지 않으면 메모리 용량을 차지하는 불필요한 데이터에 불과하다. 기록의 불필요한 사족과 과도한 양은 전달의 효율을 떨어트리기에 필요한 내용만 남겨야 한다. 이렇게 하루에 생성되는 수많은 데이터 속 동시대에 또는 후대에 의미 있게 사용될 가치가 있는 내용을 선별하여 기록하는 것이 바로 기록학자가 필요한 이유라고 저자는 말한다.
 

기록이란 개인에게도 중요하다. 지식을 정리할 때도, 마음을 정리할 때도


저자는 책을 읽을 때나 우울할 때도 기록을 해볼 것을 권한다. 기록은 지식을 정리해 줄 뿐만 아니라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게 해서 문제를 파악하는 데도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러한 목적의 기록은 반드시 있었던 사실에만 기반을 두는 게 아니다. 나의 마음, 진심, 감정 등 모든 것이 기록이 된다.

사실 적시를 넘어 저자가 말하는 일련의 기록은 성찰적이다. 운동을 열심히 해서 몸을 건강하게 만들 듯, 책을 많이 읽어 지식을 쌓듯, 지속적인 기록의 과정을 통해 과거로부터 발전 동력을 얻는 것이다.

기록된 과거를 통해 미래의 나를 발전시킬 수 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는 참 후회가 많다. 매일매일 내가 한 말과 행동에 아쉬움과 회한이 쌓인다. 왜 그랬을까, 왜 순간을 참지 못해 같은 잘못을 반복할까 라는 후회와 자책이 가득하다. 당장 어제 하루만 떠올려도 시간을 되돌려 바꾸고 싶은 말과 행동 천지다. 타임머신이 있다면 돌아가 바꾸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이는 불가능하다.

머릿속에서만 반복되는 반성과 번민은 그 칼날은 무뎌진다. 그래서 나는 어제의 잘못을 되풀이하고 만다. 인간은 불완전하기에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발전한다. 그렇기에 나의 회한들로부터 반성과 개선의 기회를 찾아야 한다.  
 
현재의 내가 한 행동은 시시각각 과거의 것이 된다. 매 순간 과거가 된 언행들은 나를 발전시키는 데 사용할 수 있는 귀중한 교보재이다. 이런 귀중한 교보재를 과거의 잊힐 기억으로만 남길 것인가, 그 순간의 사실과 감정을 기록하여 타산지석의 기회로 삼을 것인가.

그래서 저자가 말하는 기록의 쓸모가 크게 다가왔다. 예전부터 일기를 가끔 써보긴 했지만 체계적이고 끈기 있게 해보지 못했다. 기록과 글쓰기의 중요성을 무의식적으로 희미하게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중요와 효용을 전문가의 책을 통해 명확히 깨닫게 되면서 그 필요성을 더 절감하게 되었다.

일기나 여행 기행문, 독서 감상문 등 예전에 썼던 글을 시간이 지난 후 다시 읽어보면 이전의 내 부족함이 명확하게 보인다. 낯 뜨거운 부족함을 대면하는 데에는 많은 용기가 필요하기에 필시 꾸짖음의 효과는 머릿속에서만 일어나는 반성보다는 클 것이다.

그러나 일기를 비롯해 우리가 쓰는 글 중 100% 진심인 글이 있을까? 누군가 볼 것이라 상정하고 쓰게 되지 않는가? 그렇기에 더 꾸며진 글을 쓰게 되고 진심은 모자이크 처리된다. 그 결과는 미화된 자신을 마주하고 만다.

안타깝게도 이 순간 쓰고 있는 나의 독서 감상평 역시 약간의 (아니면 많이?) 꾸밈이 들어있다. 인터넷이라는 오픈된 곳에 업로드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읽히기를 바라는 글이기에 날것이 아닌 정제된 나의 생각을 적어야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그렇기에 언젠가는 너무 수사적이지도 않고, 거짓에 포장되지 않은 나의 진심 어린 글을 써보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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