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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파파 May 25. 2024

009 종의 기원(찰스 다윈 저)


종의 기원, 시대적 믿음에 반기를 들다.


다윈의 종의 기원은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 마르크스의 자본론과 더불어 인류 지성사의 역작으로 평가받는다. 진화론, 적자생존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바로 다윈이다. 다윈과 그의 저서가 이렇게 추앙받을 수 있는 이유는 책의 완결성 때문이라 생각한다.


현대의 인류가 사용하는 모든 첨단기술의 발전은 25만 년의 사피엔스의 역사 중 불과 100여 년 만에 이룩한 것이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출간한 지 160여 년이 된 ‘종의 기원’은 그 이론에 있어 현대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만큼 당시의 이론이 완성도 높고 정교했다는 것이다.

18세기 유럽에서 인기 있던 비둘기 사육을 시작으로 다윈은 수많은 종의 관찰, 관측으로 자신의 이론에 살을 덧붙여 간다. 중간중간 자신의 이론을 공격할만한 주장들을 언급하고 이를 논박하며 그는 자신의 논리를 완성시켜간다. 얇고 간단명료한 문장들로 구성되는 요즘의 책들과 달리 당시에는 다소 길고 장황한 문장들이 인기였다고 한다. 그렇기에 한 문장이 한 페이지에 달하는 경우가 잦았고 덕분에 가독성은 무척 낮았다. 또한 실제 관측, 관찰 결과의 나열은 지루함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한 걸음 한 걸음 이론적 무장을 갖춰가는 모습은 마치 오랜 시간 정성스레 대리석을 조각해 가는 대가의 모습 같았다.

그가 갈라파고스에서 진화론의 영감을 얻고 종의 기원을 출간할 때까지 수십 년의 공백이 있다. 나름 부유했던 덕에 생계를 위한 돈 걱정이 없던 그는 긴 시간 동안 책의 집필에만 몰두할 수 있었고, 자신의 이론에 천착하며 그 토대를 굳건하게 만들었다. 젊은 시절 신학을 전공했고 아내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으며 당대는 철저한 기독교적 사회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신에 의해 인간이 창조되었다는 창조론이 진실이었던 시대의 믿음에 반기를 들기 위해서는 철저한 이론적 무장을 갖추어야 했다.

생명체의 진화에는 어떠한 의미도 깃들여있지 않다


앞서 말한 난해함과 지루함으로 독서를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있었지만 진화론이라는 조각상의 완성을 보기 위해 꾹 참고 완독 한 순간 삶에 대한 엄청난 사유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그는 진화론에 어떠한 의미도 부여하지 않았다. 루이스 아가시를 위시한 당시 많은 학자들은 생명의 진화에 어떤 심오한 메시지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다윈은 그러한 생명의 진화에는 어떠한 교훈도, 의미도 없고 단지 시간이라는 우연이 주는 결과물이라고 말했다.

종의 목적은 생존과 번식이다. 인간을 비롯한 수많은 생명체는 이러한 목적을 수행하기에 적합한 형태로 진화를 거듭해 왔다. 리처드 도킨슨은 이기적인 유전자에서 생명체의 삶의 목적은 유전자의 전달이라 했다. 저녁 메뉴부터 주택담보대출 이자까지 하루하루 수많은 고민에 휩싸여 사는 한 명의 인간으로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행복한 삶을 꿈꾸고 그를 위해 다니기 싫은 직장에 다니며 노력하는 하나의 사회구성원으로서 진화의 우연성과 도킨슨 적 유전자 전달체의 취급은 어릴 적 배운 인간의 존엄성이 훼손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진화에는 의미가 없지만 우리의 삶은 의미를 지닌다


138억 년이라는 억겁의 시간과 무한에 가까운 우주의 공간을 생각하면 지금 이 순간 지구라는 작은 별에 존재하는 나라는 인간은 얼마나 작디작은 존재인가? 무수히 지나온 수많은 인간을 비롯한 생명체들을 생각하면 한 명의 인간은 얼마나 무의미 한가? 이렇게 허무주의로 빠질 수 있는 비관적 생각이 단 한 문장으로 정반대의 국면을 맞이하였다.


생명체에 대한 이런 시각에는 어떤 장엄함이 깃들어 있다.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이다. 얼핏 진화론은 생명의 무의미를 말하는 것 같지만 다윈의 저 마지막 문장은 오히려 정 반대를 말한다. 자연환경에 적합한 종이 살아남았지만 생명체들은 자연에 무기력하게 선택당하지만은 않았다. 당대를 사는 종은 적자(適者)가 되기 위해 격렬히 저항하고 투쟁하였다. 즉 진화의 시작은 우연이지만 진화의 과정은 그 시대를 살아온 생명체의 삶에 대한 숭고한 의지가 담겨있는 것이다.

다이아몬드가 값진 이유는 아름다움을 탐닉하는 수요에 비해 양이 아주 적어 희소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한 인간의 인생은 우주적 관점에서는 찰나의 순간이다. 각각의 개체는 살아남기 위해 투쟁하며 자신의 삶에 대해 끝없이 갈망한다. 생명에도 이러한 희소가치를 적용하면 한 인간에게 자신의 삶은 절대적인 가치를 지닌 것이다.

누군가에게 다윈의 ‘종의 기원’을 읽고 내 삶의 무한한 가치를  깨닫게 되었다고 얘기하면 머릿속에 물음표를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논리의 도약이 다소 심한 감이 없지 않지만 사실 철학이라는 것은 마인드맵과 같아서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는 것이 또 하나의 재미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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