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동안 해 온 내 인생 운동, 크로스핏
2014년 3월 즈음이었다. 여자는 몇 명 보이지도 않고 남자의 비율이 월등히 많은 크로스핏 체육관에 처음 방문했을 때 그 열정과 파이팅 넘치는 분위기가 너무도 부담스러웠다. ‘그래, 딱 한 달, 아니 딱 삼 개월 동안 50kg까지 빼면 관두자.’라는 마음으로 등록을 했다. 내향적이고 정적인 성향에 낯가림과 소심함까지 두루 다 갖춘 내가 남초 체육관에서, 이렇게 에너지가 과열된 분위기에서 과연 이런 거친 운동을 꾸준히 할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런 의심과 두려움, 설렘 약간으로 시작했던 크로스핏을 나는 8년째 하고 있다. 가끔 지겹다 싶을 때면 요가와 필라테스도 기웃거리고 헬스장도 가보았지만 결국 나는 박스로 돌아왔고 역시 이만한 운동이 없다는 것을 느끼곤 했다. 허리 부상으로 걷는 것조차 힘들었을 때도 나는 진통제, 소염제를 처방받아먹고 운동을 갔다. 걸어서 2~30분 거리로 꽤 멀었음에도 비가 오면 장화를 신고 갔고 늦을 것 같으면 택시를 타고 갔다. 심장이 터질 것만 같고 숨 쉬는 것도 너무 힘들어 이러다 천식이라도 생기는 게 아닐까 싶은 지옥의 맛을 매일같이 경험하면서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가 풀렸고 살아있음을 느꼈다.
내가 살면서 무언가에 이토록 집요하게 빠져본 적이 있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인생은 크로스핏 전과 후로 나뉠 만큼 습관, 식단, 생활 루틴이 매일 조금씩 변화되었다. 어쩌면 나는 크로스핏이 나와 잘 맞아서가 아니라 전혀 반대 성향의 운동이라 빠졌는지도 모른다. 게으르고 물렁한 나를 좀 더 단단히 하고 싶어서 하는 의지의 투영. 나의 진로와 앞날에 대한 고민과 불안이 가득하던 시기에 시작했던 크로스핏은 처음 몇 달 동안엔 매일 토할 것 처럼 힘들어서 목에서 피 맛이 느껴졌는데 내가 운동 때문에 힘든건지 삶이 잘 풀리지 않아 힘들었는지 헷갈렸다. 그래도 어떤 설명할 수 없는 건강한 정신이 내면에 점점 자리 잡아가고 있다는 게 스스로도 느껴졌다.
그랬던 내가 우울증으로 인해 최근 3~4개월 동안 열 손가락에 꼽을 수 있을 만큼 박스에 출석한 날이 며칠 되지 않았다. 나는 운동을 해야 스트레스가 풀리는 사람이고, 운동을 해야 생활 루틴이 망가지지 않고, 운동을 해야 살이 찌지 않는 몸으로 바뀌었는데 몇 달씩이나 운동을 지독하게도 하기 싫은 마음은 쉽게 변하지 않았다. 그로 인한 무기력이 나의 생활 전반을 지배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고 주치의 선생님은 무기력함에 도움 되는 약 한 알을 추가해주셨다.
월요일이었다. 매주 그랬듯이 이번 주는 주 3회 이상 운동을 가자 마음을 먹고 운동을 갔다. 바 머슬업과 스내치가 나왔다. 허벅지가 부들거리고 이마와 가슴골 사이로 땀이 줄줄 흐르는 게 느껴졌다. 손목이 반복적으로 접히는데서 오는 약한 통증에 나는 오랫동안 경험했던 그 어떤 희열을 오랜만에 다시 느꼈다.
약의 효과인지 내 마음이 바뀌었는지 단순한 슬럼프가 끝난 건지 단지 오늘 운동이 너무 재밌었을 뿐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이유가 뭔들 나의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는, 내가 살면서 가장 열정을 쏟아 온, 내가 있어야 할 곳에 다시 돌아왔다는 이 느낌이 어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