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가에서 오래간만에 먹는 엄마 밥에 흥분해 과식을 했다. 설사를 하네 체한 것 같네 앓는 소리에 엄마는 왜 적당히 안 먹고 욕심을 내냐 잔소리를 한 바가지 하면서도 한 손엔 매실액과 카베진이, 다른 한 손으론 내 검지와 엄지 사이를 꾹꾹 누른다. 체 한 데에는 여기를 항상 이렇게 세게 눌러줘라, 그러면서 슬쩍 남자 유무를 묻고 올 때마다 새 옷을 가져오는 것을 지적하며 나의 소비행태의 문제점과 엄마 기준 ‘멀쩡한 놈’ 대해 일장 연설을 펼친다.
상대방이 좋아하는 걸 해줘야 하는 센스가 있어야 한다, 좋아하는 거 열 가지 해주는 것보다 싫어하는 거 한 가지 안 하는 놈이 낫다, 싸한 기운을 절대 무시하고 넘기지 마라 등등. 감자전을 부치는 엄마의 등을 보면서 나는 식탁에 놓인 유바리 멜론과 천혜향의 껍질을 깠다.
“엄마, 내가 자양동을 못 떠나는 이유는 진짜 과일이 엄청 싸. 근데 이런 과일은 시장에서도 쓸데없는 포장에다 꽤 비싸지. 제철마다 좋아하는 과일을 가격 생각 안 하고 종류별로 사다 놓고 먹을 때가 사실 어쩌면 내 많은 행복들 중 넘버원인 것 같아. 아니 근데 이거 진짜 너무 너무 맛있다.“
엄마는 전을 뒤집으며 있는 과일 다 먹고 가라고 했다. 잡곡을 챙겨줄까 물었고 김치는 남아있느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내가 서른 중반이 되어도 여전히 내 볼에 까칠한 수염턱으로 뽀뽀 세례를 하며 떠남을 아쉬워 하지만 엄마는 삼일이나 봤으면 됐지 제발 얼른 가서 작업이나 더 해라, 빨리 보내야 내가 쉬지, 한다. 그러면서도 이것저것 갖가지 반찬과 손질한 식재료들을 캐리어가 터질 듯 가득 챙겨넣었다. 엄마의 음식들을 한 짐 챙겨 기차를 탔다. 천으로 뚜껑 위를 덮어 고무줄을 감고 그래도 새진 않을까 노파심에 신문지며 비닐을 세 겹이나 씌워 밀봉한 엄마의 김치와 마른반찬 몇 가지, 볶은 아몬드와 곶감 봉지 등을 서울집 텅 빈 냉장고에 차곡차곡 채워 넣으면서 나는 혼자 웃었다. 무거워서 괜찮다고 몇 번이나 사양한 유바리 멜론도 기어코 넣어줘서 결국 이고지고 한통 가져왔다.
김치와 반찬이 줄어 바닥이 보이고 통을 하나씩 비울 때 마다 어떤 아쉬움이 가득하겠지. 내일 저녁에는 자양 시장 판두부에 엄마 김치를 볶아 먹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