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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땃쥐쓰 Feb 27. 2020

거절당한다는 것

시댁은 나를 싫다고 말해왔다.



나는 지금껏 운 좋게도 타인의 거절을 경험한 경우가 많지 않았다.

원하는 학교, 원하는 회사, 원하는 사람과 만나며 교류해왔고 제 멋대로 살며 나의 선택과 판단이 남에게 가로막히는 경험은 흖지 않았다. 자잘한 실연과 청약 탈락 같은 거쯤일까.


그래서인지 시부모님께 첫인사 후 거절의 의사를 밝히셨다는 말은 아주 아프게 들렸다.

말씀을 들어보니 나는 모자란 것 투성이었다.

사주가 좋지 않았고, 키가 작았으며, 부모님의 직업이 훌륭하지 않았다.

그리고 서울 여자였고, 부자도 아니었다. 나에 대해 그런 말을 전해 들은 것은 처음이었다.


싸우고 난 친구가 그 애는 성격이 나빠- 같은 험담을 하고 다닌다거나, 나의 진학을 시기한 친구가 그 애는 거기에 걸맞지 못해-라고 말한 것 등을 들은 것과는 기분이 전혀 달랐다. 나는 남편인 알파카씨(가명)에게 부족한 사람이라는 것이었고 그들의 가족이 되기에는 자격이 부족하다는 말로 들렸다.


어느 것에도 승복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나는 몇 번인가 속상해하고 나서부터는 속상해하지 않았다.

마치 속상해하는 것 자체가 그들의 말이 맞고 나는 부족한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나는 비록 걸출한 인재는 아니지만 평생 남에게 해 끼치지 않으면서 나 스스로를 성실하게 단련시키면서 살아온 이 시대의 한 젊은이였고 그들에게 나쁜 평가를 들을 만한 나쁜 짓도 한 적이 없었다. 비록 전통적인 며느리감은 아니지만 노력이 무엇인지 알고 인생의 중요한 게 무엇인지 항상 고민하며 살아가는 한 소시민이었다. 그렇게 내 자신을 돌아보자 나는 충분히 떳떳한 한 여성이었고 근거 없는 사주와 타인의 취향이 고집된 키 같은 것은 더 이상 나를 해칠만한 의미 있는 판단 근거가 아니었다.


나는 죄송하게도 그 모든 의견들을 무시하기로 마음먹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와 이파카 사이의 일생의 행복에 있어 영향을 줄 것 같지 않은 의견들은 내가 마음속에 품고 있다고 해서 해결될 것도 아니었고 그 의견을 따라 헤어져 살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장기적으로 그분들을 뵙고 살아가며 마음속에 원망이 싹트지 않도록 묻지 않고 날려 보내는 것이 내가 생각한 현명한 방법이었다. 그러자 내 마음속에서는 원망이 잦아들었고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추진함에 있어서도 흔들림이 생기지 않았다. 이런 나를 알파카씨도 지지해주었다. 결국 그분들도 알게 되리라고 생각한다. 인생은 짧고, 이러한 불편한 시간마저 아쉬움으로 남는 때가 올 것이라고. 그때가 되면 우리 서로 즐거울 시간도 없는데 왜 이렇게 어색한 시간을 보냈을까 아까워하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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