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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용 Jan 14. 2018

비행기 잔해 속에서 되찾은 오른 다리

아이슬란드에 추락한 비행기 C-117 (DC-3s)



  내 오른 다리는 안짱다리다. 외반슬(外反膝)이라고도 불린다. 왁자지껄 체육대회에도 내 자리는 항상 정해져 있다. 구령대 우측 벤치석. 늘 그랬던 건 아니다. 국민학교 2학년, 자원했던 200m 육상 사건 이후다. 당일 컨디션은 좋았다. 출발 총소리가 울리기 전까진 난 자신했다. 내가 1등 이리라고. 안짱다리임을 알기 전까진 잘 달렸었으니깐. 


땅! 출발은 빨랐다. 직선코스까지도 1등이었다. 코너만 돌면 우승이었다. 문제는 코너 구간에서 발생했다. 몸을 기울이다 중심을 잃고 넘어졌다. 선생님들이 달려와 날 일으켰다. 경기는 끝나 있었다. 난 꼴찌였다. 바닥에 퍼진 모래알이 떨어진 내 수치심 같았다. 친구들은 괜찮다며 토닥였지만, 나는 알았다. 운동은 더 이상 못할 다리라는 걸.


사회생활에 무리 없었다. 곡선을 달릴 일은 많지 않았다. 운동신경이 없다고 주변에 못 박아버리니, 운동할 일도 없었다. 이런 생각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8,300km 떨어진 아이슬란드 솔 헤이 마산두르(Solheimasandur)에 가기 전까진 말이다.




여행 일주일 전. 평소처럼 여행 대비 인터넷 서핑 중이었다. ‘아이슬란드에 남겨진 비행기’라는 기사가 내 눈 걸음을 붙잡았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도져버린 궁금증에 기사를 찬찬히 읽어 보았다.

 

Douglas C-117 (DC-3s),  출처 : wikimedia.org


1973년이니 벌써 44년 전 이야기다. 미 네이비(Navy) 소속 C-117 1대가 아이슬란드 상공 근처를 날고 있었다. 화물과 인원을 실은 채였다. 갑작스레 C-117은 항로를 이탈하였다. 연료 이상이 원인이었다. 조종사 그레고리 플레쳐(Gregory Fletcher) 중사는 아이슬란드 남부 해변에 불시착을 결심했다. 검은 모래 해변 위 얼음이 충격을 줄여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치열했던 2차 대전을 경험한 사람다웠다. 그는 비행기를 부드럽게 착륙시켰다. 덕분에 탑승객 전원은 목숨을 건졌다. 누유로 인해 비행기는 폭발했지만 말이다.


탑승객은 전원 구조되어 케플라비크 공군기지로 이송되었고, C-117은 검은 모래 언덕과 함께 솔 헤이 마산두르(Sólheimasandur)에 남겨졌다. 이야기는 전 세계로 퍼졌다. 사람들이 하나둘 찾기 시작했다. 44년이 지났다. 이 곳은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비행기 추락지가 되었다.





쿵 쿵 쿵.


속 빈 강철 두드리는 소리와 깔깔대는 웃음소리가 나침반 역할을 했다. 마커가 사라져 방향을 잃었던 찰나였다. 덕분에 비행기 잔해를 찾았다. 4km 걷는 데에 족히 1시간은 걸었다. 아무리 걸어도 검은 모래뿐이었고, 바다는 가까워질 생각을 않았다. 바닥에 세워진 작은 마커(marker) 하나 보고 걷기란 쉽지 않았다. 


체력적 고통보다 심리적 고통이 컸다. 지쳐갈 때쯤 들린 쿵쿵 소리는 그야말로 희망을 담은 소리였다. 사막 걷기란 이런 느낌이 아닐까. 굶어 죽기 전에 지쳐 탈진해버렸을지도 모르겠다. 어릴 땐 비웃던 고장 난 냉동탑차 안에서 얼어 죽은 남자 이야기가 완전히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일본과 중국이 영토 전쟁 중이었다. 악연은 아이슬란드에서도 계속되는 듯했다. 동중국해 군도 보단 스케일은 작았지만 말이다.


나는 멀찌감치서 심판이 되기로 했다. 한중일 전으로 확대시킬 필욘 없다는 판단에서다. 아내도 우측에서 팔짱을 낀 채 지켜보기로 했다. 형세는 일본에 유리했다. 등과 날개를 일본 여행객들이 선점해 중국 여행객들은 꼬리로 밀려난 채였다. 나는 2.5 : 0.5로 판단했다. SNS 사진용으론 등과 날개서 찍는 사진만 한 게 없기에 위치 점수와 선점 점수를 각각 가산했다. 근처에서 분통만 터트리던  중국 여행객들에겐 0.5 감점을 가했다. 알아들을 순 없었지만 욕지거리를 내뱉는다는 판단에서다.


전세는 쉬이 뒤집히지 않았다. 일본은 비행기에 주저앉아버림으로써 버티기에 들어갔다. 중국인 모자는 등과 날개로 진입을 시도했다. ‘너네 여기 전세 냈냐?’라고 외치는 듯했다. 큰 소리로 삿대질하던 엄마 중국인은 그만 발을 헛디뎌 버렸다. 비행기 등에서 미끄러질 뻔했다. 보다 못한 아들은 머쓱해하는 엄마를 꾸짖었다. 부끄러웠을까, 깜짝 놀란 모자는 그대로 비행기를 떠났다. 일본 여행객들도 아쉽다는 듯 비행기를 떠났다.  링 위에 남겨진 사람이 승자라더니. 어부지리(漁夫之利). 나와 아내만 남았다.





누가 보면 총포탄에라도 맞은 줄 알겠다. 비행기 내부는 난장판이었다. 외벽은 짓이겨져 종이처럼 너덜거렸다. 창이 있었을 사각 프레임엔 바람만 노다녔다. ‘잔해’라는 단어가 딱 어울렸다. 살코기는 소화시키고, 배설된 고기 뼈와 같지 않은가.


상처 사이엔 전 세계 여행자들이 남긴 자국이 있었다. 다녀갔음을 기록하기 위해 이름을 새겨두었나 보다. 누굴까 싶어 SNS 에 두어 명쯤 찾아보다가 그만뒀다. 알파벳으로 쓴 이름은 국가를 정확히 특정하기 어려웠다. 남들도 다 똑같았다. 해외 유명 관광지 곳곳에 새겨진 '철수♡영희'는 한국어이기에 한국이 주목받을 뿐이 아니었을까.



하늘만 보고 있었다. 곁에 선 사람 무색하게. 언젠간 지나갈 다른 비행기를 기다리는 걸까. 제 행색이 이리도 초라한데? 구멍 나고, 찢기고, 낙서 투성이인데. 훨훨 나는 친구 비행기들이 보면 부끄럽진 않을까. 눈이 될 조종석도 부서진 채였다. 다리가 되어줄 엔진과 날개도 부서진 채다. 질투는 나지 않았을까. 날아다니는 다른 비행기를 보면서.


씁쓸함에 비행기를 뒤로 했다.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았다. 상처에 뼈대만 남은 비행기가 나와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깟 수치심이 뭐라고. 숨기기에 급급했다. 안짱다리라는 게 밝혀지면 세상 큰 일 날 일도 아닌데. 맞다, 두려웠다. 꼴찌 돼버린 체육대회처럼 경쟁 사회에서 뒤처져 버릴 것만 같았다. 비행기는 꼿꼿이 서서 하늘을 바라보는데 말이다. 강인해 보였다. 상처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Wrecked Plane DC-3 @Sólheimasandur, Iceland.




돌아가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오른 다리는 더 이상 절뚝이며 끌려가지 않았다. 눈에 띌까 숨기지도 않았다. 내 다리니깐. 강인하게 땅을 디뎠다. 속이 후련했다. 마음속 짐을 던 듯했다. '뫼비우스 띠'로 느껴지던 검은 모래 해변도 짧게만 느껴졌다. 

왕복 8km 거리에 지레 겁먹고, 안 왔으면 후회할 뻔했다. 그저 비크(Vik)로 가던 길이었을 뿐이다. 도로변에 가지런히 주차된 차들에 흥미를 느껴 세웠을 뿐이다. 이 곳이 여행 전 찾아보던 비행기 추락 지로 가는 길임은 모른 채.  


주차장 앞엔 작은 팻말이 서 있었다. 갈 땐 미처 못 본 모양이다. 4km 거리를 차로 이동할 경우 경찰에 신고된다는 내용이었다. 검은 해변이 훼손될 걱정에 지주가 내린 결단일 게다. 난 피식 웃었다. 4km. 까짓 거 한 달음에 닿을 거리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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