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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용 Feb 27. 2018

새조개 회식 날 풍경

요즘 새조개 철이랜다. 뱃때는 놓쳐도 새조개 때는 안 놓치는 팀장님이 ‘번개!’를 외친다. 갈 사람 가고 말 사람 마는 게 번개라지만, 우린 그런 거 없다. 참석률 100%. 요즘 세상에 뭐 그런 회사가 다있냐겠지만, 글쎄, 그게 팀웍이랜다.

샤브샤브 가게 문을 열자, 구수한 육수 냄새와 함께 안경이 뿌예진다. 앞이 잘 안보였지만, 매년 이맘때 숱하게 지나던 길을 더듬치도 않고 용케 자리까지 잘 찾아갔다. 집어 든 메뉴판에 쓰인 '새조개' 세 글자에 입맛을 다시자 안경이 완전히 맑아졌다.

“이모, 여기 새조개 샤브 8인요.”

1년에 서너 번 볼까 말까 한데, 이모란 말은 잘도 나온다. 부끄러 했어야 하나? 진짜 이모들보다 더 자주 보니깐, 어쩌면 이쪽이 진짜 이모일 수도 있지 않을까. 이모는 고개를 끄덕이고 주방으로 향했다. 서걱서걱. 음소거된 TV, 라디오 DJ 숨 쉬는 일순간의 고요함을 틈타 야채 써는 소리가 들린다. 서걱서걱 서서걱 서서서걱. 소리만 들어도 안다. 이번 건 단호박, 그다음은 청경채, 마지막은 봄똥.

“자~ 나왔습니다.”


이 한마디 들으려 10분을 기다렸다. 이모는 물컹한 조갯살 가득 담은 접시를 내왔다. 조갯살이 구부러진 새 부리를 닮았대서 새조개다. 홍성 남당진에서 발견되어 양식이 어렵던 90년대엔 대부분 일본으로 수출되었다고 한다. 국내엔 소량 유통되어 부자들만 먹었던 귀한 음식이라나.

 

“지금은 양식이 성공해 가이고 쉽게 먹을 수 있는거에유” 


구수한 사투리 섞은 이모님 옛날이야기를 안주 삼아 술잔을 내 앞에 모은다.

소주 1.5 맥주 3.5. 신입사원 때 멋대로 말기 시작한 소맥 비율이 이젠 팀 회식 공식 비율이 됐다. 맛있긴 한가보다. 한번 마신 사람들은 꼭 비율을 묻는다. 대체 어떻게 섞었기에 이렇게 부드럽고 시원하냐고. 내 대답은 한결같다. ‘내 마음~’. 아마 나에게 못되게 군 사람은 쓸 테고, 잘해주는 사람은 달 게다. 왜냐고 묻는다면 나도 모르겠다. 그냥 그 사람 생각하며 술잔 따르다가 손목에 스냅 한번 더 줬는지.

  
여행 이야기, 여행에서 뭐 산 이야기, 자식 이야기, 자식이 잘 해준 이야기, 남이 여행한 이야기까지 오면 세계일주 두 바퀴는 도는 셈이다. 직접 가본 이야기는 없고, 어찌나 들은 이야기들만 많은지 모아 보면 책 한 권이다. 회식 이야기는 보드게임 블루마블을 생각하면 딱 좋다. 흐름 못 따라가면 핀잔과 함께 무인도에서 세 판 쉬어야 하고, 했던 이야기를 또 해버리면 통행주 한 잔 더 마시고, 다음 주제로 넘어가야 한다.
 


이번엔 정치 이야기, 야당 이야기, 여당 이야기. 그리고 대통령 이야기. 세상만사 험담은 높으신 분 까기에 바쁘다. 점원은 사장을, 사장은 건물주를, 건물주는 공무원을. 공무원은... 쭈욱 가다 보면 결국은 대통령 욕이다. 그림으로 그려보면 역피라미드랄까. 대통령이란 직업은 참 힘든 직업이다. 안 먹어도 될 욕까지 다 먹으니 말이다. 


이야기가 돌고 돌아 자기 자랑에 무용담까지 나오면 회식의 끝이 보이는 순간이다. 병 속 남겨진 술은 잠시 감춰두고 때를 기다리면 된다. 서서히 가라앉는 술기운에 찾아오는 뻘쭘함을 마주할 때쯤이면 누군가 벌떡 일어선다. 내일은 모두가 주인공이라며 한 잔 더 부딪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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