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지용 Mar 01. 2018

노안(老顔)은 상처받지 않는다.

MBA OT 때 있었던 일이다. 회사선 엉덩이가 가볍기로 유명한데 그날따라 좀 묵직했다. 전 날 많이 먹은 게 죄다 엉덩이로 갔는지, 만찬 자리에서 움직일 생각을 안했다. 아침 점심을 굶은 터라 기력도 없고 좀 피곤했다는 게 이유랄까. 투명한 녹색병 하나와 엄지손가락 크기 잔 하나 들고 이리저리 다녀야 할 Fresh 한 나이인데.


나이 지긋하신 선배 한 분이 우리 테이블로 오셨다. 친히 소주와 잔을 드시고. 둥그런 원탁 가운데에 턱 하니 앉아 왼쪽부터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시켰다. 한 번 들은 이름이나 특징을 놓치지 않고 재 질문하는 선배의 탁월함에 나는 내심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술도 많이 드셨을 텐데.


내 차례가 되었다. 손가락을 쭉 펴 차례를 지목하던 선배의 손이 천천히 뒤집혔다. 네 손가락도 마저 펼치곤 손바닥을 천장을 향했다. 이 테이블서 내가 나이가 많아 대우하시나. 선배는 나를 빤히 보시더니, 물었다.


"저기 실례지만 연배가 어떻게 되세요?"


진실을 말해도 상대가 믿지 않으니, 이보다 답답한 일이 없었다. 서른둘이라고 믿어달라고 사정해도 계속 형님뻘이 아니시냐고 묻는다. 아, 생각해보니 덥수룩한 내 머리가 문젠가, 두 달간 안 잘랐지만, 그렇게 이상하진 않은데.


살면서 숱하게 겪어온 일이다. 처음이 언제더라. 고등학생 때였나, 교회 형과 미용실에 갔었다. 형이라곤 하지만 그 당시 서른다섯쯤 되었던 거 같다. 난 청춘 열여덟.


머리 손질이 끝나고 샴푸실로 향했다. 교회 형도 커트가 끝났는지, 곧이어 샴푸실로 들어왔다. 둘 다 검은색 미용실 샴푸의자에 털썩 앉곤 뒤로 몸을 젖혔다. 뒷목으로 차가운 세수 대가 느껴질 때까지. 한창 샴푸 중에 내 머리를 감겨주시던 미용사 분이 물었다.


"머릿결이 좋으세요. 친구분도 그렇고 관리를 잘 하시나 봐요."

"저분 친구 아닌데요. 저는 열여덟이고, 이 형은 서른다섯이에요."

"예? 아니 이 분은 서른다섯 같긴 한데.."


'너는 왜 그래?' 가 생략되었으려나. 내 얼굴은 조금씩 빨개져가고 있었다. 턱주가리부터 귀까지. 아마 머리까지 빨개졌을지도 모른다. 미용사 분은 나를 위로하려 이야기를 건넸다. 그런데 그게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걱정 마세요. 손님 얼굴은 이대로 쭉 가요. 10년 뒤엔 사람들 다 늙어도 손님은 이대로일껄요?"


그래? 근데, 왜 난 10년 지난 지금도 노안 소리 듣지.





Photo by Jake Davies on Unsplash

매거진의 이전글 새조개 회식 날 풍경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