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었으면 좋겠어, 딸이었으면 좋겠어?
아내가 임신 중이라는 사실을 밝힐 때마다 한결 같이 똑같은 질문을 받았다. 요즘 대세는 딸이라지만, 우리 부부는 첫 임신 사실(관련 글 : 아빠가 되어버렸다.)을 알았을 때부터 첫째는 아들이길 바랬다. 만약, 딸이어도 하늘이 주시는대로 감사하게 받자고 다짐했었다. 그래서 태명을 묻는 부모님 질문에 우물쭈물 거리고 있었는데, 아내가 대뜸"태명은 '용용이'예요!"라며 선수 쳐버렸다. 남편 이름 끝자리를 따왔단다. 나랑 상의도 없이! 하, 정말 아들을 바라긴 했나 보다.
'용용이' 성별 검사날은 실 바람조차 불지 않던 따뜻한 날이었다. 어젯밤 이 시리게 불던 바람이 생각나 코트 하나 걸치고 출근길을 나섰는데, 겨우내 사라졌던 찌르르 새소리가 들려와 봄이라도 온양 괜스레 기뻤다. 버스 타기 전까진 스마트폰을 잘 안 보는데, 그날따라 왠지 보고 싶더라. 그리고 신기하게도 문자 한 통이 도착해 있었다.
아 내 : "오늘 무슨 날인지 알지?"
안다 알어, 그래도 '오늘은 용용이 성별 검사날이야 알았지?'라고 친절하게 보내주면 어디 덧나나. 오늘따라 버스가 왜 이리 급브레이크를 밟는지 몸이 자꾸 갸우뚱한다. 즐거운 날인데 말이지.
저번 12주 차 때도 와보고 느끼는 거지만, 요즘 병원 참 좋아졌다. 접수대 위 천장에 매달린 모니터로 진료 현황을 알 수 있다. 띵동, 순서가 변동될 때마다 알림 소리가 들렸다. 차분하게 기다리면 되련만 아내는 이상하리만치 불안해 어쩔 줄 몰라했다.
딸이면 어쩌지, 딸이면 어쩌지..
왜냐고 물으니, 태명 때문이란다. 성별 모를 땐 중성으로 해야지 왜 '용용이'로 했냐는 지인들 타박에도 "딸이면, 용순이 하면 되죠~"라며 웃으며 넘기던 아내. 말은 그래도 속은 내심 불안했나 보다. 그간 불러준 게 있어서 용용이에게도 미안했겠지.
띵동. 우리 차례가 되어 들어간 진료실에서 의사 선생님은 용용이 어머님, 아버님 오셨냐며 어제도 본 듯 친숙하게 인사말을 건네셨다. 어찌나 방긋 웃으시던지, '이 사람이라면 믿을 수 있겠다.'하는 신뢰가 절로 생기게끔 하는 마력을 지니셨다. 의사 선생님은 초음파 검사를 시작하자며, 아내를 병원 침대로 안내했고, 나에겐 머리맡에 서서 침대 발치 벽에 붙은 모니터를 보면 된다고 하셨다.
잠시 뒤, 초음파 검사기가 움직이자 모니터 화면에도 희고 검은 무언가가 꾸물거리더니 오뚝한 콧날과 함께 아기 옆모습이 보였다.
"이게 머리고, 심장이고, 위예요. 콧날도.. 어머, 로켓트가 날아가게 생겼네요. 용용인 아빠랑 목욕탕 가겠네요!"
머릿속 긴장 끈이 툭 끊어졌다. 거창한 분석이라도 필요할 거라 생각했는데, 너무도 쉽게 판명 났다. 아들이라고? 물론, 난 처음부터 끝까지 한 군데만 응시하고 있었다. 의사 선생님이 로켓트라던 거기. 톡 튀어나온 게 탯줄일 수도 있어 긴가 민가했는데, 용용이가 다리를 비벼대며 춤춘 덕분에 선명히 드러났다. 검사 전 산모가 쪼꼬우유를 먹으면 아기가 춤춘다는 이야긴 사실인가 보다.
아내는 신났다. 불안 요소가 해결되면 마음에 평안이 찾아오는 법이다. 아들 딸 상관없다던 부모님과 할아버지는 아들 소식에 수화기 너머로 춤추신 듯하다. 증손주 보시고 싶으시다던 할머니께도 전해드리고 싶은데, 반년 전 먼 길을 떠나셔서 아쉽다. 아는 언제 낳냐고 늘 물으셨는데.
날이 아직 차다. 다 좋고, 좋다. 하하. 근데, 택시는 왜 이리 안 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