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지용 Mar 23. 2018

핫도그, 아이슬란드에서 꼭 먹어봐야 해?

핫도그, famous restaurant in Reykjavik.


레이캬비크 둘째 날 아침이었다. 침대서 일어나 기지개를 켰는데, 찌뿌둥함에 끼야야 하는 비명소리가 나왔다. 굵직한 장대비가 창문 투덕이는 소리 때문에 잠을 설친 탓이다. 그래도 아침 일찍 짐 싣고 떠나는 방랑 여행이 끝나고, 오랜만에 맞는 여유에 기분이 좋았다. 믹스 커피 한잔을 끓여놓고 아내와 침대 위에서 뒹굴거리다가 '오늘은 뭐하지?'라는 질문을 던졌고, '레이캬비크에도 '맛집'이 있지 않을까' 하는 질문으로 이어졌다. 마침 점심에 뭐 먹을 거도 없는데 뭐 있나 찾아나 보자며 노트북을 켰다.


뭐라 검색해야 할까, 한국어엔 'ㅇㅇ 맛집'이라는 만능 키워드가 있는데, 영어엔 뭐가 있나 싶어 고민에 빠졌다. 결국 'famous restaurant in reykjavik'라고 검색했는데. 북유럽 스타일 스테이크 식당, 그리고 시청 호수 뷰가 보이는 멋진 바 등이 조회되었다. 점심 식사론 부담스럽게 느낀 탓일까, 정작 내 눈을 잡아 끈 건 단출한 핫도그 집이었다. 노상 핫도그 가게 방문 후기를 남긴 해외 블로거가 이리도 많은 걸까. 참으로 의아해 가보기로 했다.


Bæjarins Beztu Pylsur

Location : Tryggvagata 1, 101 Reykjavík, Iceland
Open Hour : Sundays to Thursdays  10:00 – 01:00,  Fridays to Saturdays  10:00 – 04:30  


핫도그, 기다리며까지 먹을만하다고?


가게는 하르파(Harpa)를 대각선으로 바라보는 Tryggvagata 거리와 Pósthússtræti 거리가 만나는 지점에 위치했다. 1.5평 남짓 작은 노상 판매점 앞엔 삼사십 명이 골목을 휘감으며 줄을 서 있었고, 하나같이 얼굴엔 행복함이 가득해 보였다. 다리를 동동거리게 되는 추위에도 선물을 기다리는 어린아이 마냥 신난 모습이었다. 


잠깐 기다리면 줄이 줄어들까 싶었는데, 핫도그 판매 속도보다 빠르게 사람들이 몰려든 탓에, 우리 앞에 다섯 명이나 줄을 서버렸다. '강 건너 불구경'하다가 불난 우리 집 못 본다더니, 딱 그 꼴이었다.



15분쯤 기다리자 우리 차례가 다가왔다. 바이킹의 나라 답게 크리스 헴스워스(영화 Thor 주연)를 닮은 점원이 우리에게 말을 건넸다. 


"$%@#&*$%@"


What?, 왓 두유 원트 정도를 생각하던 내게 영언지 아이슬란드언지 모를 말로 물어오는 점원이 야속하게만 느껴졌다. 좀 천천히 말해주지. 아내가 나를 바라보는 눈빛에 담긴 '우리 남편이라면 당연히 알아들었겠지'라는 메시지도 부담스러웠다. 어찌할까 고민하다가, 손가락 2개를 지그시 펼쳐 보였다. 점원은 내 검지 중지 두 손가락 끝을 잠시 응시하더니, 고개를 끄덕이곤 핫도그 두 개를 내왔다. 나는 해냈다며 어깨가 으쓱했지만, 후에 생각해보니 그는 나에게 어디서 왔냐고 물었던 것도 같다. 하하.


핫도그, 맛있대도.


가게 옆 테이블에 앉고 나니, 머리 위에 느낌표 하나가 떠올랐다. 테이블 정중앙에 놓인 기이한 받침대가 뭔고 하니 핫도그 받침대였다. 핫도그를 올려두니 사이즈가 꼭 맞았다. 여름이라면 핫도그를 올려두고 여유롭게 먹으라는 배려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춥디 추운 겨울 아이슬란드에 그런 여유는 사치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저, 빨리 먹고, 뜨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런데, 이게 생각보다 맛있었다. 기다랗고 연한 소시지 살코기는 앞니로 부드럽게 베어 물렸고, 흘러나온 촉촉하고 고소한 육즙과 이름 모를 소스에 혀가 춤을 추었다. 어금니를 들이대자, 촉촉하고 부드러운 빵과 빵 사이에 숨겨져 있던 시리얼이 톡 튀어나와 바스락바스락 씹힌다. 정말이지, 목구멍으로 넘기기까지 긴장을 풀 수 없는 맛이다. 


전 미국 대통령 빌 클린턴(Bill Clinton)도, 메탈리카 보컬 제임스 헷필드(James Hetfield)도 다녀갈만했다. 유명한 아이슬란드 요리는 대부분 먹어봤지만, 어쩌면 간편하고 저렴한 핫도그야 말로 아이슬란드 국민 음식(national food)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우리나라 어느 가게 에서든 리필을 거절 않는 김치처럼 말이다. 난 핫도그 덕에 마트에서 꼭 소시지를 사가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었다. 꼭 집에서 다시 먹어보리라 결심했지만, 여행 1년이 지난 지금까지 냉동실에 그대로 있다. 


마지막으로, 아내는 핫도그 두 개를 먹는 포즈를 취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난 찍히기보다 찍는 것이 좋았지만, 이번엔 순순히 따랐다. 그리고 찰칵 소리가 들리자마자, 둘 다 냉큼 베어 물었다.


히히, 맛있더라. 아내 미안! 



매거진의 이전글 요쿨살론에서 멈춰 섰다. 아이슬란드 여행.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