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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미치 Jun 28. 2022

아이슬란드, 불과 얼음의 허니문 : 민경의 서문

“Darkness always turns into the dawn”


 3월의 첫날. 나의 하루는 스물일곱 시간째 계속되고 있다. 자정이 될 때 나는 어느 라이브 클럽에서 파티를 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런던 히드로 공항의 한 카페에 현실감 없이 앉아 있다. 어제와 오늘을 가르는 경계도 없이 하루를 보내고 있는 나는 분명 내내 같은 사람인데, 비행기 옆자리에서 익숙한 모습으로 책을 읽는 재경을 보면 문득 낯설다.


 결혼 준비를 시작하고 반년이 넘도록 나는 유난스럽게도 결혼에 대한 정의를 내리지 못해 몸살을 했고, 앓는 동안 사람들의 축하를 받기 싫어했고, 혼자 내면의 싸움과 화해를 시도하며 긴 시기를 보냈다. 결론내릴 수 없는 일에 결론을 내리려는 시도를 포기하고 그 포기를 다시 포기하는 일을 거듭했다. 그런 터널같은 시간을 지나고 이제와서야 드는 생각이 있다. 이 모든 건 결국 태도와 자세의 문제라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헤어짐을 전제로 만나지 않는다. 언젠가 어떤 형식으로든 이별이 닥칠 수 있겠지만, 그 가능성은 변하지 않겠지만, 이 관계의 태도를 달리 하기로 한다. 이별에 대한 고민을 밀쳐두는 쪽으로.


결혼 전까지 9년을 만난 연인이 언제는 이별을 고민하며 만났겠나 싶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 고민은 우리가 서로에게 반한 바로 그 순간부터, 서로에 대해 한 가지씩 알아가는 모든 발걸음마다 있었다. 그때마다 우리는 이별하지 않는 쪽을 선택해왔다. 때로는 기꺼이, 때로는 체념인듯, 또 때로는 모험을 감수하며. 이제는 그 고민을 멈추기로 한다. 연애는 모든 순간 헤어질 이유를 탐색하는 기간이었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헤어지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기로 약속한다. 결혼식은 우리가 서로에게 반려가 되어주기로 약속하는 예식이자 잔치였다. 그 약속 날짜가 가까워지며 내 안의 평화와 자신감이 자리잡을 때쯤,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병이 발병했다.


 거대한 역사적 사건 앞에서 개인의 경조사란 얼마나 사소한지. 그러나 개인의 경조사가 역사를 되비춘다는 사실은 또 얼마나 고무적인지. 유례없는 전염병이 창궐하고 사람들이 죽어가는 상황 속에서 우리가 결혼을 다시 고민하고 강행하기로 결정하기까지의 모든 과정은, 우리 둘의 역사인 동시에 대한민국의, 그리고 세계의 역사이기도 했다. 2020년 2월 29일에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세계를 위협하는 중이었다는 역사를 우리가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2020년은 하필이면 윤년이고, 우리는 그 중에서도 윤일을 택했고, 물러서지 않았다.


재경과 나 둘 모두 음악 씬 등에서 공연과 기획, 또 구성과 연출을 해왔다. 아마도 그 경력을 모두 통틀어 우리가 가장 열심히 준비한 행사였을 것이다. 이상하게도 나는 별 걱정이 들지 않았다. 사람이 적으면 적은대로, 많으면 많은대로 괜찮을 것 같았다. 나 자신을 위한 행사니까. 재경 역시 나와 비슷한 사람이니까. 우리 둘을 위해 의식적으로 ‘위험을 무릅쓰고’ 참석을 강행하겠다고 나설 가까운 사람들에게 드는 미안함, 나를 슬프게 했던 것은 그 감정 한 가지였다. 기쁨과 고마움만으로 채울 수도 있는 일에 이런 감정을 느껴야 한다는 사실이. 그러니까 여러모로 위험하고, 특별하고, 이기적인 결혼식이었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자신의 결혼식이란 그런 것이겠지. 예식을 모두 마친 지금 재경은 여전히 나의 연인이며, 이제 우리는 서로를 반려라 부른다.



/



 재경이 문득 "우리 신혼여행은 어디로 가지?" 하고 무심히 물었을 때 내 대답은 거의 반사적이었다. 어디긴, 아이슬란드지. 그리고 영국. 재고의 여지도 없다는 듯 내뱉었지만 나도 그러고 나서야 깨달았다. 그렇구나. "역시 그렇지?" 하는 재경의 대답과 함께 우리의 허니문 여행지는 그렇게 간단히 결정됐다. 마치 처음부터 정해진 일처럼.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뮤지션들이 태어난 장소들로,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계절을 만나러, 우리 둘에게 가장 의미있는 여행을 떠나기로.


 우리는 많은 곳을 함께 다녔지만 한때 재경은 여행은 도피가 아니냐는 말을  적이 있다. 현실에  붙이려는 노력이 여기 아닌 어딘가를 원하는 욕망보다 값지다며, 여행에  관심을 느끼지 못하겠다고. 나는  말이  인상적이어서 아직도 기억하는데 지금 그에게 물으면 언제 그런 얘기를 했느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함께 하는 여행은 도피였던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익숙한 장소를 함께 걷는 것도, 낯선 풍경을 함께 바라보는 것도 여행이었다.


 우리가 함께 경험한 모든 장소, 모든 시간이 우리의 일부를 이루었고 우리가 복기하고 환기하며 나누는 많은 이야기들은 각자의 경험을 서로의 경험으로 만들어주었다. 그래서 나는 문득 문득  삶의 지평이 나를 넘어서는  같다는 생각을 한다. 재경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을까. 어느  그는 내게 프리마베라 페스티벌을 보러 스페인에 가고 싶다고, 나와  많이,   곳까지 여행하고 싶다고 했다. 어쩌면 그때 쯤에는 이미 많은 것들이 예정되었던  같다. 내가 오랫동안 고대해온 불과 얼음의 땅에 그와 함께  것이라는 사실까지도.


이제 케플라비크 행 비행기를 타러 갈 시간이다. 내 삶에서 가장 길었던 3월 1일이 저물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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