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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리콩 Mar 13. 2024

정신과 폐쇄병동에서의 추억이 생각난다

그 곳은 괜찮은 척 하지 않아도 되는 세계

1화: 내가 먹는 우울증 약들은 도대체 무엇일까? 에서 언급했듯이 저는 제약회사에서 정신과 담당 영업사원으로 일했던 적이 있습니다. 제가 담당했던 약은 조현병, 우울증 등에 사용되는 "아빌리파이"라는 약이었죠. 보통 대학병원에서는 주로 교수님들을 뵙지만 전공의나 펠로우와도 꾸준히 좋은 관계를 가집니다. 그 이유는 보통 공부하면서 사용해서 손에 익거나 자신있는 약들을 계속 쓰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용경험이 풍부해지고 효과면에서도 긍정적인 경험을 하게 되면 미래 더 큰 고객이 될 것입니다. 


제가 담당하던 대학병원에는 전공의 의국이 폐쇄병동 내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보니 폐쇄병동에 들어갈 기회가 몇 번 있었죠. 일단 폐쇄병동은 병동의 저 구석 끝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크고 단단한 철문을 지나야 합니다. 문 옆에 키패드가 있고 비밀번호를 눌러야지만 들어갈 수 있죠. 



그건 아픔의 냄새이고 병의 냄새였죠 


육중한 문을 열고 한발자국 들어서면 제일 먼저 감각되는 건 퀘퀘하고 눅진 사람 몸냄새였습니다. 그건 아픔의 냄새이고 병의 냄새였죠. 사람들이 내 마음이 지금 괜찮은가? 의문을 가질 때 가장 쉽게 판단할 수 있는 방법은 깨끗하던 내 집이 정리가 안되어 있나? 설거지 거리가 쌓여있나? 라고 되돌아 보는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아픈 정도가 심각해지면 내 집뿐만이 아니라 몸도 돌보기 힘들어집니다. 


문에서 의국으로 걸어들어가는 찰나에 본 병동의 모습은 인생에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세계였습니다. 병동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서 멍하니 땅만 쳐다보고 있는 사람, 힘없이 걸어가는 사람, 단상 위에 앉아서 흐느껴 우는 사람, 공동 공간에서 사람들과 탁구치는 사람, 안이 들여다보이는 방에서 의료진과 상담하는 모습 등을 볼 수 있었죠. 이 곳은 공식적으로 아픔을 인정받은 그들이 더 이상 괜찮은 척 하지 않아도 되는 공간이었습니다. 반면에 여기 우리들은 집 밖을 나오는 순간부터 괜찮은 척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2021년 보건복지부 정신건강실태조사에 따르면, 성인 4명 중 1명은 정신 건강 문제를 경험하지만 정신장애로 진단받은 사람 중 12.1%만 전문가의 도움 받는다고 합니다.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걸까..


넷플릭스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에서도 공황장애, 우울증, 조울증, 성격장애 등 다양한 아픔을 가진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 드라마의 감독인 이재규 감독도 인터뷰에서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겪고 극복하는 시간을 견디고 이 드라마를 기획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드라마 속 주인공도 일상을 잘 살아내다가 큰 트라우마를 겪고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마음의 병은 다른 질환과 마찬가지로 인지를 하고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 병은 스스로 인지를 거부하거나 타인들에게서도 부정적인 인식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질환과 다릅니다. 주인공한테 마음의 병이 찾아왔듯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습니다.


따라서 열린 마음으로 사람들을 보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루는 교수님을 뵙기 위해 외래 진료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환자가 진료를 끝내고 나오더니 간호사와 다음 예약을 잡고 밖으로 걸어나가는데 전화가 걸려 옵니다. 무슨 내용이 오갔는지는 모르겠으나 그 분은 전화를 받자마자 갑자기 큰 소리로 엉엉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나왔던 진료실로 뛰어들어갔습니다. 교수님 앞에서 엉엉 우는 소리가 문 밖까지 들렸죠. 

그 때는 몰랐지만 나중에 알고 봤더니 그 분은 보더라인(borderline)이라고 불리는 경계선 인격장애를 가진 분이었습니다. 경계선 인격장애는 감정의 불안정성, 대인 관계의 급격한 변화, 자아상의 심각한 왜곡, 그리고 충동성을 특징으로 하는 정신 건강 장애입니다.


물론 누군가가 갑작스럽게 감정이 변해서 울거나 화내거나 한다면 주변 사람들은 매우 당황스러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마음과 성격은 매우 다양한 스펙트럼 상에 있습니다. 대부분은 병리학적으로 '정상(normal)'의 범주 안에 속해 있지만, 경계선에 있거나 경계 밖에 서 있는 일부도 이처럼 명확히 존재합니다. 우리는 할 것은 이러한 마음의 병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바라봐 주며, 옆에서 정서적 지지를 주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요즘은 미디어에서 연예인이나 인플루언서들이 자신들이 겪었던 우울증, 공황장애 등을 털어놓으며 사람들의 인식이 많이 바뀌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정말 잘 된 일이죠. 오은영박사의 금쪽상담소를 통해서도 다양한 스토리를 접하면서 마음의 병이 아주 특별하고 기이한 케이스가 아닌 내 주위 누군가가 있을 법하다고 인식하게 된 것 같습니다. 지금 이 글을 읽으시는 분이 계시다면, 지금 한 번 내 마음이 어떤지 체크해 보셨으면 합니다.


느슨한 이 공간에서 제가 여러분께 다정한 지지의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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