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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존철학자 Sep 27. 2022

발톱 감추기

 스파르타 사람들은 자신들이 다른 그리스인보다 뛰어난 것은 지혜로 인한 것이 아니라 싸움과 용기로 얻은 것이라고 남에게 인식시키려 하였습니다. 모든 사람이 지혜를 갖추려 애쓰는 것을 막기 위해서요. 

- 플라톤 <프로타고라스>


 기원전 479년 그리스 연합국은 10년 넘게 지속된 페르시아 전쟁에서 승리했다. 이후 연합은 해체되었다. 해상 강군 신흥 강자 아테네와 육상 강군 스파르타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조성되었다. 스파르타는 이에 자신들의 이미지를 역이용하여 더욱더 목소리를 높여 육체를 단련하는 한 편 뒤에서는 논리학과 기하학 등 지혜를 연마하였다. 


 <손자병법>에서 일관되게 강조하는 것이 바로 기만술과 화친 술이다. 기만술은 적에게 자신의 실상과 의도를 드러내도록 유도하고, 자신의 의도는 감추는 것을 말한다. 즉 공격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보여 적을 안심시키는 것이다. 또 가까운 목표를 공격할 계획이면서 멀리 있는 목표를 공격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고, 멀리 돌아갈 계획이나 가까운 곳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게 하기도 한다. 본질은 상대의 방어기제를 자극하지 않아 무방비 상태의 적에게 효율적인 공격을 감행하는 것이다. 화친 술은 싸우지 않고 목적을 달성하는 방법을 말한다. 전쟁은 많은 희생을 요하기에 협상으로 풀어나갈 방도가 있다면 그것이 최선이라 여기는 것이다. 서희는 외교담판으로 원나라와의 전쟁을 막았다. 두 방법의 요지는 분쟁으로 인한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를 막고, 싸워야 할 때 모아놓은 에너지를 폭발시키는 것이다. 사도세자의 아내 혜경궁 홍 씨는 자신의 남편을 죽인 시아버지 영조에게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오히려 "저희 모자를 보전하게 해 주신 성은에 감사드립니다."라고 말했다. 다. 그렇게 얻은 신임으로 결국 조선 2대 성군으로 꼽히는 정조를 왕위에 올릴 수 있었다. 


 "아!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라!" <정조실록. 1776 즉위년 3월 10일>


 정조는 즉위하자마자 자신의 아버지를 칭송했다. 그런 그이지만 어머니처럼 영조가 죽기 전까지 24년이 넘는 시간 동안 아버지에 대한 효심을 감춰두었다. 이 두 사람의 인내로 조선은 중흥할 수 있었다. 


 건안 5년 원소는 십만 대군을 거느리고 조조 군을 섬멸하러 나섰다. 그때 원소의 참모 전풍은 아직 때가 아님을 알고 원소에게 간언을 올렸다. "지금 조조 군은 서주를 격파해 손에 넣고 사기가 하늘을 찌릅니다. 가볍게 대적할 상대가 아니니, 좀 더 때를 기다리다 그들이 느슨해지는 틈을 타 그때 움직이십시오." 원소는 다른 신하의 말에 휘둘려 그의 간언을 무시했다. 전풍이 다시 간언 하자 원소는 화를 내며 그를 옥에 가두었다. 결국 출정을 감행한 원소는 관도대전에서 참패를 하고 말자 전풍의 부하가 말했다. "이번 출정에서 대패하였으니 주군께서 돌아오시면 공을 중용하실 것 아닙니까?" 


그러자 전풍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나는 이제 죽은 몸이다. 원장 군은 냉혹한 사람이라 한 번 마음 밖으로 내친 자를 찾는 법이 없느니라. 만약 조조에게 이겼다면 기분이 좋아서 나를 살려줄 수도 있었겠지. 하나 이미 패하고 말았으니 수치스러워서라도 나를 살려둘 수 있겠는가?" 과연 그의 말대로 원소는 돌아오자마자 민심을 현혹했다는 죄명을 씌워 전풍을 죽였다. 이처럼 옳은 말일 지라도 때에 따라 자신에게 칼 날로 돌아올 수가 있다. 사람의 자존심이란 옳고 그름의 논리보다 더욱 거세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군주는 언제나 미움을 사지 말라고 당부한다. 가벼운 미움들이 몇몇에게만 쌓여도 황소와 같은 사람도 쉽게 부러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휴대폰, 인터넷의 몇 가지 게시물들이 30년 동안 쌓아 올린 평판을 3분 만에 무너뜨리기도 한다. 미움을 가진 자들은 내 표정이 부러지길 바라며 애매한 자극을 계속해서 보낸다. 표정이 조금이라도 부러지면 그들은 자신의 행동이 영향을 줄 수 있다는 확신을 얻고 공격의 강도를 올린다. 관료제 조직에서 술잔을 나눈 동기와 선배들은 승진, 평판에 있어 경쟁 관계를 가진다. 자리는 한정되어 있고 지원자는 곱절이 넘기 때문이다. 그들은 세련된 사회성 속에 숨겨진 칼들로 걸음이 빠른 이들을 베어버린다. 그렇기에 조직에서 오히려 2등이 유리한 것이다. 


 쇼펜 아우어는 인간에게 지적 능력보다 더 자랑스러운 것은 없다고 했다. 동시에 지적 능력을 가진 덕분에 동물의 세계에서 지배자의 위치가 되었으니 당신이 우월한 것을 남에게 보여주는 것만큼 멍청한 짓이 없다고 말한다. 


 "지적능력을 과시하는 것에 대한 최선의 호의는 무시이다. 무시하지 않을 경우 그의 행동에 대한 보복으로서 은밀하게 다른 방식으로 모욕을 시도한다." - 쇼펜 아우어 


 그리스의 오디세우스는 거대한 목마 안에 병사를 숨겨 트로이의 환심을 사 10년 간의 전쟁을 마무리했다. 철혈 재상 프로이센의 비스마르크 총리는 오스트리아의 블루메 백작과 카드놀이를 제안했다. 비스마르크는 무모하게 배팅하며 엉뚱한 말을 뱉었다. 블루메는 이 자는 냉정하지 못하고 경솔한 자라고 확신했다. 그 후 별 다른 의심 없이 오스트리아에 절대 불리한 조약에 서명했다. 이 자는 기만 능력이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잉크가 마르자 비스마르크는 웃으며 말했다. "맙소사! 이 문서에 서명할 오스트리아 외교관이 있을 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어!"


 뛰어난 능력을 갖추는 것만큼이나 상대에게 안정감을 심어주는 것도 중요하다. 미움으로부터 본인을 지키는 것이다. 미움은 타인의 무능력, 이기심, 허영심을 증명하고자 하는 심리로 발현되어 개인에게 심각한 위협을 가한다. 그렇기에 때론 자신이 뛰어난 것이 명백한 사실일지라도 조금은 그것을 감춰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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