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가질 수 있을까
정부에서는 올해 발표한 주거복지 로드맵을 통하여 공공주택을 14만여 가구 공급하기로 했다. 물론 턱없이 부족한 수이다. 안정된 삶을 위하여 내 집 하나는 꼭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입장이지만, 열심히 일해서 모은 돈이 고스란히 통장에 들어가 집을 사기 위해 최소 10-15년을 모을 자신은 없다.
감사하게도 나는 이사를 많이 다니지 않았다. 부모님의 명의로 된 집에서 살았기 때문에 단 한 번도 집에 대해서 걱정을 해 본 적이 없었다. 내가 처음으로 ‘집’에 대한 불안함이 든 것은 독일에서 유학하던 시절이었다. 대학원에 붙고 2년 동안 교내 기숙사에서 살았지만 2년이 지나면 무조건 나와야만 했다. 학비는 거의 무료로 2년 동안 대학원을 다닐 수 있었지만 막상 기숙사를 나가서 집을 구하려고 하니 걱정이었다. 다행히도 한국에 돌아와 집 걱정은 한시름 놓았지만 다시 돌아간다면 집부터 구해야 할 판이다. 독일에 있는 동안 나에게 집이란 물리적이고 경제적인 개념보다는 심리적으로 의지한 시간이었다. 밤에 지친 몸을 이끌고 현관문을 여는 순간 타국에서 이방인이라는 존재가 유일하게 안전해지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곧 이 집을 떠나야 하는 시기가 다가오면서 집을 구해야 한다는 압박과 함께 불안함이 엄습해왔다. 그러다 보니 ‘집’에 대한 소유욕이 생겨났다. 유학생이라서 그런 건 아니다. 한국에서 집을 구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매달 월세를 내고 은행 이자를 내면서 2년마다 이사를 다녀야 하는 상황에서 우리 모두가 거주의 안전성을 느끼지 못하고 주거비 부담을 느끼고 있다. 심지어 집을 갖고 있어도 가난한 사람들이 태반이다. 하우스푸어 (house poor)라는 단어를 보면 얼마나 모순적인 상황 인가 싶다. 집을 갖고 있어도 가난한 하우스푸어들이 대한민국에 얼마나 많은가
서울에서 빚 없이 집을 마련하는 것은 불가능한 얘기다. 이미 서울지역 아파트 평균 매매 가격은 6억 원을 넘어섰다. 앞으로 10년이 넘게 월급의 반 이상을 저축한다 해도, 대출받아 집을 사다 보면 평생 대출금을 갚으며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모두가 ‘집’의 소유로부터 자유로워질 수는 없는 것일까? 안타깝게도 대한민국에선 집을 소유하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한 사람의 경제적 능력을 단편적으로 확인하는 수단이 되어버렸다. 아파트가 집의 최고 가치를 지닌 상품으로 여겨짐과 동시에, 어느 지역, 어떤 브랜드 아파트 심지어 층수 조차도 개인의 사회적 계층을 판가름하게 되었다. 주택을 소유한 사람은 중산층 이상으로, 세입자는 중하층 이하라는 등식이 우리 사회에 자연스럽게 굳어져왔다. 또한 안정적인 직장을 갖고 경제활동을 오래 할 수 있는 젊은 사람일수록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사야 한다는 것이 사회적 통념이 되어버렸다. 나 마저도 이러한 통념을 갖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서울의 좋은 지역 아파트에 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 주변 친구들은 진작에 사회생활을 시작하여 집을 사려고 돈을 꾸준히 모으고 있는 반면에 나는 여전히 학생 신분이라는 점이 나의 앞날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필사적으로 집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도, 정부에서 발표하는 주택정책은 결국 빚을 전제로 하며 ‘집’에 대한 걱정 없이 머무를 공간을 소유할 방법은 없다. 빛 잘 드는 집에 살고 싶지만 빚만 늘어날 현실이다. 절망적인 것은 정부의 주거혜택을 받기 위해 내가 얼마나 가난한지를 증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순위 밖에 밀려난다면 그건 내가 남들보다 덜 가난한 것이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집이라는 개념이 사야 하는 것이 아닌 사는 것이라면 모두가 집으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 덴마크는 주택을 사회주택이 아닌 보통 주택이라고 부른다. 사회 소외계층을 포함한 특정한 계층의 전유물을 일컫는 사회주택이 아닌 시민이라면 모두가 함께 어울려 살아가야 하는 일반 주거라는 인식이 깔려 있으며, 누구나 싼 가격에 양질의 주거복지를 누릴 권리가 있다는 덴마크의 보편적 주거 복지 정책 정신과 맞닿아 있는 단어이다. 입주자격 없이 누구나 사는 공간으로, 입주기간 없이 원하는 만큼 내 집으로, 집이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의 문제로 인식하여 정주의식을 높인 덴마크의 주거 정책이, 자유. 평등. 정의 실현을 위한 민주주의의 진정한 정신이 아닐까 싶다.
자유공간 창간호를 준비하면서 스스로에게 질문한 것은 ‘집을 꼭 소유해야만 하는 것일까?’였다. 안타깝게도 대한민국에서 빚 없이 집을 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 또한 다른 사람들처럼 집을 마련하기 위해 돈을 저축하고 대출을 갚으며 살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 집이란 사는 것 (buying)이 아니라 사는 것 (living) 이기에, 그동안 나도 모르게 의식하고 있었던 사회적 통념으로부터 벗어나 보려고 한다. 덴마크나 독일처럼 젊은 세대가 집 걱정 없는 시대가 당장 오지는 않겠지만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정부도 청년 주거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이 문제가 나 또는 가족의 책임이 아닌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여 해결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집을 꼭 소유해야 하만 하는 개념에서 벗어나 평생 집이 있다는 사회적 보장이 존재한다면, 즉 국가가 책임지고 국민의 주거권을 보장해준다면 그 누구도 필사적으로 집을 구하기 위해 빚을 내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소유, 점유의 개념을 넘어서 집은 당연히 필요한 공간으로 여기고 집에 대한 소유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