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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재형 Jan 03. 2020

#6 2020 원더 키디

2020년, 새해 다짐

  "...... 부스를 반년이나 비웠으니 말이에요. 계절이 하나 훌쩍 지나갈 만큼......"

  ......

  "...... 파랗게 빛이 나던 가로수는 이제 온통 헐벗었죠. 우리가 지나친 계절 동안 가로수 이파리엔 빨갛고 노란 불이 무서운 속도로 번져나갔을 텐데, 보세요. 앙상한 가지만 남아 벌벌 떨고 있는 애처로운 모습을요......"


  "......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로. 어차피 가을은 돌아올 테니까. 지금은 더 큰 이별을 준비해야 할 때입니다. 보이시나요?...... 2020년입니다."

  

  아- 아- (마이크를 두드린다) 톡톡. 여기는 지나간 날을 얘기하는 지나간 라디오. 여섯 번째 시간입니다.

  

  (BGM - '시작' by 김동률)

  



  #6. 2020 원더 키디


  꼬박 반년만에 돌아왔습니다. 지나간 라디오. 기다려주신 분에게는 먼저 사과의 말씀을 전합니다. 기다리긴커녕, 네가 뭐하는 놈인데 하시는 분께도 미리 사과드립니다. 계속 뜬금없는 이야기가 이어질 테니까요.

  

  무려 반년! 게으름을 피운 탓이라고 해도 긴 시간이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태만의 결과가 아니라 망각의 결과였다는 것을요. 네, 새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글쓰기는 계속 열심히, 아니 어느 때보다 열심히 해왔습니다. 하지만 라디오 부스에는 발길을 딱 끊고 말았습니다. 그간 저는 「THE SALARY BOOK」이라는 이름의 브런치 북을 완결 짓는 데에 정신을 쏟아부었습니다. 2019년 글쓰기의 한 단락을 짓기 위해서 꼭 해야만 하는 일이었죠.

  


  2020년 이라고요? 

  

  여전히 전 힐끗 달력을 볼 때마다 어색함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2020년이라니. 2019년은 '과거'라는 섬뜩한 인장을 붙인 채 시간선 저편으로 넘어가버렸습니다. 2019년 최후의 날에 저는 2019년을 이제 다시는 못 만난다는 것에 우울했습니다. 이제 다시는 만나지 못할 'xxxx 년'이라는 생각은 해가 지날 때마다 하지만 올해는 유독 이 생각이 뚜렷하게 들었는데 바로 2020년이기 때문이죠. 2010년대가 2020년대로, 2020 원더 키디가 우주를 누볐던 바로 그 해가 되었습니다. 그 시절 사람들이 기대했던 말하는 로봇이 우주로 날아가는 미래는 오지 않았지만 휴대폰 AI가 비트박스에 랩을 하는 시대는 되었네요.


  

  새해 계획

  

  새해가 되면 이런저런 계획들이 수첩과 플래너에 한가득 적히기 마련입니다. 누군가는 다이어트를, 누군가는 포기했던 저축을 다시 시작할 마음을 먹죠. 하얀 백지를 새까맣게 채워 넣은 빽빽한 계획들을 보면 시작도 안 했지만 마음이 뿌듯하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기도 전에 우리의 마음속 서랍장 한편에 들어가 다시 긴 잠을 자겠죠. 정확히 2021년 1월이 돌아올 때까지요.

  

  사람은 망각하는 동물이라죠. 저라면 '흔들리는 동물'이라고 하겠습니다. 유혹에 흔들리고 가족들이 먹다 남긴 피자 조각에 흔들리고 세상에 수없이 많은 예쁘고 쓸데없는 것들에 흔들리니까요. 어떤 달콤한 손짓에도 흔들림 없는 사람들을 "어휴, 쟤는 사람도 아니야."라고 하는 건 괜한 말이 아닌 겁니다. 올 2020년도 정신없이 흔들리고 유혹에 굴복하면서 그래도 꿋꿋이 정신 승리하며 살아가야겠습니다.

  




  (BGM - '행운을 빌어요' by 페퍼톤스)

  

  아주아주 오랜만에 돌아온 지나간 라디오. 오늘은 여기까지 입니다. 새해에는 보다 꾸준히 연재를 하겠노라 마음먹었지만, 저도 사람이니 또 어떤 유혹에 흔들릴지 알 수 없네요. 그럼 다음 시간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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