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시리즈 <조용한 희망>을 보고 chapter2
*이 글은 넷플릭스 <조용한 희망>과 그의 원작 스테파니 랜드의 <조용한 희망>에 관한 스포를 일부 담고 있습니다.
"우리가 서로를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한번쯤은 <조용한 희망>을 보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에피소드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나에게는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 시리즈를 계속 보는 것을 포기하게 만들었던 변곡점이 되는 그런 에피소드가 아니었을까 한다.
딸과 함께 살고 있던 노숙인 쉼터의 열악한 환경 때문에 딸과 함께 길거리에 나앉게 된 알렉스에게 알렉스를 좋아하던 네이트가 자신의 집에서 알렉스가 딸과 함께 지내게 해주는 것부터 모든 이야기는 시작된다. 알렉스를 좋아하는 네이트는 어느 누가 봐도 좋은 사람이었기에 "제발..제발 알렉스 저 남자랑 잘 해보자.."하는 무언의 응원을 보내고 있던 중에 숀(알렉스이 남자친구)이 집에 찾아오면서 이 행복은 깨어진다. 숀이 알렉스의 엄마의 남자친구가 엄마가 살던 집에 마음대로 세를 주고 받은 세로 대출금을 갚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썼다는 사실을 알게되어 찾아온 것. 알렉스와 숀 알렉스의 엄마는 엄마의 남자친구를 찾으러 떠나게 되고 엄마의 남자친구가 엄마 집에 받은 세를 도박에 다 써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결국 집도 날리고 남자친구도(?) 날리게 된 알렉스의 엄마, 충격으로 정신을 놔버린 엄마는 자해를 하며 크게 다치게 되는데 그런 엄마를 보며 힘들어하는 알렉스를 위로하는 숀 그리고 자연스럽게 숀과 하룻밤을 보내는 알렉스(????) 많은 사람들이 이 장면에서 <조용한 희망> 보기를 포기했다고 한다. "알렉스가 고구마 답답이다." "지팔지꼬(지 팔자 지가 꼰다)는 의사도 못 고친다." 등의 많은 의견을 내놓았지만 나는 어쩐지 알렉스의 선택이 이해가 갔다.
매번 이성적으로 옳은 선택만 내린다면 인생 사는게 어렵다는 말은 도대체 왜 있겠는가. 현실은 뭐하나 매끈하게 되는 법이 없다. 게다가 이전에 네이트와 알렉스가 했던 대화 장면을 본다면 알렉스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비를 맞으면서 차고에 그림을 그리는 알렉스의 엄마에 대해 이야기하던 알렉스와 네이트. 네이트는 알렉스에게 언제부터 엄마를 돌보았는지 알렉스 말고 엄마를 돌봐 줄 수 있는 가족은 없는지 묻는다. 네이트에게 네이트의 부모님은 어떤 분이냐고 묻는 알렉스. 네이트는 자신의 부모님은 지극히 평범한 분들이라고 대답 한다. 알렉스는 단 한번도 평범한 삶을 살아본 적이 없는데 한 순간도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아 본 적 없는 네이트가 알렉스를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알렉스가 감정적으로 가장 약해진 순간에 알렉스는 자신과 같이 온전하지 않은 부모 밑에서 자라 온 숀만이 자신을 이해할 수 있다고 믿었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 순간 알렉스의 엄마를 이해하고 알렉스를 마음 깊이 이해할 수 있었던 사람은 숀이 유일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누군가를 이해하려고 할 때, 또 누군가를 도우려 할 때 우리의 기준으로 그들을 성급하게 판단할 때가 많다. 기본적으로 내가 지나오지 않은 삶과 거쳐오지 않은 길에 대해 완벽하게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그들의 행동이 때로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으로 보여도 그들에게는 그 순간에는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었음을 받아들일 줄 아는 자세가 필요하다. 쉽게 '이성적으로', '현실적으로', '옳은 선택' 이라는 판단하는 말을 꺼내서는 안된다. 우리에게는 다른 사람을 판단할 만한 권리도 없을 뿐더러 그럴만한 능력도 없다.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처지에 놓였다면 그는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구조적인 문제나 환경에 오랜 기간 처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지극히 평범한 우리들도 옳고 그름조차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에 오랜 기간 처해 있다면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옳은 선택을 내리기가 어려워질 것이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를 이해하거나 도우려고 할 때의 가장 중요한 전제는 내가 저 사람의 상황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조용한 희망>속의 알렉스와 같은 빈곤층, 가정폭력의 피해자, 싱글맘들은 가해지는 무수한 세상의 편견들 이를 테면
"가난한 사람들은 일할 의지가 없어."
"싱글맘은 비행청소년이겠지"
"왜 남편한테 맞고만 있지?"
"그렇게 맞으면서 다시 남편한테 돌아가다니 제 정신인가?" 같은 말들에 끊임없이 노출된다.
그러나 알렉스는 보여준다. 알렉스는 누구보다 자신의 아이를 사랑하며, 아이를 잘 돌보는 좋은 엄마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몸이 부서져라 일하면서도 열심히 글을 쓰고 갑자기 아이를 가지는 바람에 대학에 가지 못했지만 대학도 합격한 적이 있다. 또 그녀는 가스라이팅 하는 남자친구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녀에게 부족했던 것은 정신적 경제적 의지가 되어줄만한 온전한 가족이 없었다는 것 뿐이다. 그녀는 그저 운이 조금 나빴던 것 뿐이다.
우리가 이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도움은 무엇일까, 다짜고짜 이해하려 들지 않는 것, 그들의 행동을 판단하려 들지 않는 것, 편견 어린 시선 대신 격려 가득한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봐 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