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시리즈 <조용한 희망>을 보고 chapter1
#1. 느슨한 연대의 힘
잠이 쉽사리 들지 않아 누워서 핸드폰으로 이것 저것을 보던 중 우연히 책을 추천하는 글 하나를 발견했다.
스테파니 랜드의 <조용한 희망> 미국의 전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 페미니스트 학자인 록산 게이가 강력 추천하는 책이라고 하길래 e-book을 쿨거래하고
책을 다 읽고 난 뒤에야 넷플릭스에 책을 원작으로 한 시리즈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언뜻 본 예고편에 나온 여자 주인공의 외모가 너무 내 스타일이라(여리여리한 몸에 고전미 넘치게 생긴 여배우를 좋아하는 편)정주행을 시작했는데
이게 웬걸 빠져들어버렸다.
원제 <Maid> 한국어 제목 조용한 희망의 스토리는 대충 이렇다.
원치 않는 임심으로 엄마가 된 알렉스는 남자친구의 학대를 견디다 못해
가정폭력 피해자 쉼터에서 노숙인 쉼터로 계속해서 삶의 공간을 옮기며 두 살배기 딸아이를 돌본다.
먹고 살기 위해 그녀가 선택한 일은 가사 도우미,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길 수 있는 시간은 한정 되어 있고 변변한 직장을 구할 마땅한 이력이 없는 처지였기에
그녀에게 청소부는 세상에 남은 유일한 일자리 였다. 가사 도우미로 받는 최저 시급은 생계를 꾸리기에 턱없이 부족하고
스테파니는 정부의 온갖 지원금을 수급해 간신히 생활을 꾸려 나간다.
하루하루를 버티며 열심히 일해도 삶은 늘 위태롭고, 주변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에 모멸감을 느껴야 했고,
가족이라고 부를만한 사람들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알렉스의 사정이 나아지는 것 같으면 사고를 치는 전 남자친구와 나사 하나 빠진 것 같은 자칭 예술가 엄마.
공든탑도 무너진다는 것을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할 수 있는 고구마 답답이 스토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용한 희망>이 나를 사로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수많은 이들의 호평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조용한 희망>은 단순히 모성애 강한 주인공의 신파극을 그리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조용한 희망>은 주인공 알렉스를 엄마로서만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엄마로서의 알렉스, 딸로서의 알렉스, 홀로 존재하는 인간으로서의 알렉스를 입체적인 관점에서 묘사하며
시청자들로 하여금 결국엔 알렉스라는 캐릭터에 더 큰 공감대를 갖게 만든다.
<조용한 희망>이 보여주고자 했던 메세지가 "엄마는 힘이 세다"와 같은 진부한 모성애 예찬이 아니라는 것도 많은 사람들의 호평을 끌어낸 이유 중 하나다.
<조용한 희망은> 알렉스라는 한 인간의 성장과 알렉스의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성을 통해 연대라는 가치를 보여주는데 집중한다.
알렉스가 가사 도우미로 일하는 집의 주인인 변호사 레지나와 알렉스의 관계성이 그렇고 알렉스가 쉼터에서 만난 비슷한 처지의 여성들
그리고 가정폭력의 피해자이자 이제는 가정폭력 피해자의 쉘터가 되어준 쉼터 원장과의 관계가 그렇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이 작품에서 그리는 연대가 진부하지 않다는 점이다.
이전 작품들이 비슷한 처지에 처한 사람들이 연대해 자신들을 억압하는 거대한 대상 또는 사회구조를 무너뜨리는 적극적인 의미의 연대를 그렸다면
이 작품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느슨한 연결 그리고 인간성에 대한 신뢰와 애정으로서의 연대의 힘을 이야기 한다.
코로나 시국이 시작된지 어느덧 2년이 지났다.
올 한해를 돌아보자면 유주택자와 무주택자, 여성과 남성, 청년 세대와 기성 세대, 보수와 진보 등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간의
처절하기 끝이 없던 수많은 갈등만이 떠오른다.
이런 갈등의 대부분은 집안에서 방 구석에서 이뤄졌다.
화가 난 사람들이 컴퓨터 앞에 앉아 누군가를 욕하고,
늦은 밤 sns와 각종 커뮤니티에서 어느 집단을 혐오하며 조롱과 멸시를 키웠을 것이다.
인터넷 상에서 서로 치고 박고 싸우는 사람들을 지켜보며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우리 모두 대단한 것 하나 없는 연약한 존재일뿐인데 왜 서로 싸우고 공격하지 못해 안달인 걸까.
어느덧 우리 사회는 개인과 개인이 따뜻한 선의로 이어지기 보다 적의와 의심 경계심과 편견으로 선을 긋는 각자도생의 사회가 됐다.
조용한 희망이 지금 우리에게 이야기 하는 것은 무엇일까 한 인간의 성장과 느슨한 연대의 가치다.
조용한 희망에서 알렉스와 레지나 그리고 쉼터 여성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이제 서로에 대한 악의와 경계심 편견으로 가득차 있는 이 어두운 공간을 허물고 매일을 고군분투하며 살아가고 있는 서로의 눈빛을 봐야 한다.
서로에 대한 편견 어린 시선, 악의 가득한 눈빛 대신 묵묵한 응원의 미소를 건네야 한다.
결국 연약함에서 연약함으로 이어지는 이 느슨한 연대가 이 세계를 구원해 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