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숨늬 Dec 15. 2021

셀프 연말 정산, 올해 기념품 남기기

아니 한 것도 없는데 벌써 연말이야?


코로나 이전이었다면 회사에서 주는 리프레시 휴가를 쓰고 해외여행이라도 갔을텐데

오미클론까지 터진 마당에 5일간의 기나긴 휴가를 얻고도 침대에 누워 핸드폰이나 뒤적이는 처지였다.

침대에 누워 다 봐서 이제는 볼게 없어진 유튜브를 뒤적이다가 인스타에서 실제로 만난지 옛날옛적인 지인들의 근황을 보고 있자니


아.. 한것도 없는데 벌써 연말이야? 올해도 한 거 없이 나이만 먹었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왜 사람들은 하루하루 열심히 살면서도 연말만 되면 아무것도 이룬게 없다는 현타에 시달릴까?


그래서 해보기로 했다 셀프 연말 정산!

셀프 연말 정산의 목적은 아주 단순하다 "아 한것도 없는데 벌써 연말이야.."라는 생각 대신

“짜식! 올해도 수고 많았다. 올해는 이렇게나 의미 있는 순간들을 보냈구나!”

라는 마음으로 나를 다독이며 올해를 마무리 하는 것이다.




1. 로망 현실 그 사이에 결혼

2021년에 가장 큰일을 꼽자면 뭐니뭐니해도 결혼을 꼽을 수 있겠다. 30전에 결혼하는게 목표라고 동네방네 떠들고 다녔으니 어쨌든 나는 내 인생 최대의 목표를 이룬 셈이다. 평생 결혼을 못 할 수도 있다고 생각 했었는데 이 자리를 빌어 나와 결혼해준(?) 남편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말을 전한다.


어린 시절 나에게 결혼은 로맨틱 영화일 뿐이었다면 실제 결혼을 한 지금 결혼은 단 몇 분의 로맨틱한 장면과 그보다 몇 배는 긴 영화에서 보여주지 않았던 현실적인 장면들의 결합이라는 것을 알았다.. 영화 속에서는 로맨틱한 프로포즈 장면만을 보여주지만 현실에서는 프로포즈에 이용한 물건들을 정리하는(풍선을 터트린다던가.. 침대 위에 놓인 장미꽃잎 처리하기 등)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 아마 영화와 현실의 가장 큰 차이일 것이다.


직접 뛰어들어 경험한 결혼은 그저 아름답기만한 로맨틱무비는 아니지만 충분히 좋고 의미있는 것이었다.(물론 좋은 사람과 함께 한다는 전제 하에겠지만) 함께 인생을 만들어갈 사람이 옆에 있다는 것, 가장 기쁜 순간과 힘든 순간 내 인생 중 특별한 하루에 제일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생긴다는 것, 어떤 일이든 논의하고 함께 결정 해나갈 사람이 있다는건 분명 어떤 것보다도 의미있다. 게다가 결혼은 이전 싱글의 삶일때는 느끼지 못했던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


2. 사이드허슬러가 되기 위한 첫 발자국


이전에 브런치에 쓴적도 있지만 21년에는 사이드프로젝트에 도전해 봤다. 기획자로써의 자존감이 바닥이었을 때 무작정 시작했지만 프로덕트의 완성이나 성공여부를 떠나 나에게 가장 의미 있는 시도였다고 생각한다. 덕분에 성장하고 싶어하는 열정적인 팀사람들도 만날 수 있었고 비록 오프라인 모임은 한번 뿐이고 랜선 속에서만 만난 사람들이지만 내적 친밀감은 엄청 높아졌다 ㅎㅎ


매번 엄청난 디테일함과 논리력을 요구하는 기획은 나에게 너무 어려웠고 아무리 열심히 기획하더라도 놓친느 부분이 생기거나 개발자나 디자이너가 기획한 내용을 구현해주지 않으면 산출물이라고 할만한게 없는 직무다 보니.. 또 실제로 내가 하는 기획 업무가 프로덕트 디자이너나 UX 리서쳐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것을 보면서 기획자라는 직무 자체에 대한 회의와 커리어에 대한 의구심을 가졌었다.  


기획자가 꼭 참여하는 사이드 프로젝트를 만들고 싶었다는 전직 기획자 출신 비사이드 창업자 분의 말에 많은 감동을 받아서 시작했고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면서 내가 천재 기획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한(?)기회였으나 다행히 내가 이 일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나 스스로가 함께 일하기 좋은 사람, 함께 일할때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에 확신을 얻게 되었다.(나만의 생각일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가장 의미있는 성과는 누군가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라거나 성과를 위해서 일 한게 아니라 오로지 스스로 판단하여 일을 만들고 해냈다는 것이다. 프로덕트를 만들어가는 과정에 어떤 것이 필요할지 또 유저가 정말 좋아할 만한 프로덕트는 무엇인지 진정성있게 고민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는 게 가장 좋았다. 부디 2022년에는 느리지만 천천히 프로덕트가 완성되어서 유저들이 실제로 사용하는 경험을 할 수 있길..


3. 기술이 중요해(개발..디자인 그 어딘가 사이)


IT업계 특성상 개발 인력은 공급 대비 수요가 많은 직무다 보니 상대적으로 개발자의 쳐우가 기획자보좋은 편이다. 다만 2021년 초에 온갖 유니콘 기업들의 등장(버켓플레이스,당근마켓,지그재그 등) 쿠팡과 여기어때 토스의 무서운 성장까지 더해져 개발인력 모시기가 업계의 핫이슈가 되었고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니 기획자와 개발자 사이 격차는 따라갈 수 없을 만큼 커졌다.

'아니 개발자들 일 많이 하고 힘들게 일하는 건 알겠는데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할 건 없잖아?' 하는 억울함이 들던 시기 '내가 기술 없는게 죄지' 하며 나도 개발 한번 공부해보자 하며 호기롭게 스파르타 코딩 클럽의 웹개발종합반을 끊었다. 가격도 비쌌는데 할부 찬스까지 써가며 결제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난 대한민국 성실의 아이콘 답게 무려 50강이 넘는 모든 강의를 다 들었고 복습까지 했다. 그리고 나에게 남은 것은 개발자들이 돈을 많이 버는데는 다 이유가 있구나하는 깨달음(?)과 HTML코드를 조금 더 많이 읽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좋은 건가?)


그렇다 나에게 개발자로서의 재능은 1도 없었던 것이다. 물론 안되면 되게 하라라는 정신으로 엄청나게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인다면 개발자로 취업은 할 수 있으려나..? 하지만 나에겐 그럴만한 의지가 없다. 왜냐 일단 재미가 없다. 재미가 있어야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서 뭘 할텐데 선생님이랑 똑같이 했는데 안되는 걸 보면 너무 화가 난다. "도대체 뭐가 문제야?" 쾅(키보드 내려치는 소리) 이러다가 성격만 버리겠다 싶었다. 그래서 내린 결론 지금 하는 일이나 똑바로 하고 개발지식은 개발자와 소통할 수 있을 정도로만 스터디하면 된다.


하지만 늘 기술에 대한 갈증이 있었던터라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면서  접했던 figma라는 요즘 가장 핫한 UX 디자인 툴을 배워보기로 했다. 회사에서는 와이어프레임을 그릴 때 PPT를 활용했었는데(언제까지 PPT 쓸거냐며..좀 바꿔라 회사여) figma라는 툴을 활용하면 와이어프레임도 더 효율적으로 그릴 수 있을 뿐 아니라 디자이너/개발자와의 협업이 훨씬 쉬워지는 것이었다. 실제로 회사에서도 많은 디자이너 분들이 sketch에서 figma로 옮겨가고 있었고 figma링크 확인해달라는 메일도 많이 받았다.


물론 내가 디자인을 전공해서 브랜드 컬러를 뽑아내고 캐릭터도 만들고 하는 UI디자이너까지는 될 수 없을지라도 UX디자인을 할 수 있는 기획자가 된다면 얼마나 경쟁력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figma가 그렇게 어려운 툴이 아니라서 조금만 배우면 나도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figma공부를 시작했다. 현재 단계는 figma에 있는 기능들을 익히는 단계 근데 이것저것 찾아보니까 UX 디자인 관련해 공부할 내용은 겁나 방대하더라 또 UX디자인 트렌드도 계속 변하는 터라 계속 공부가 필요하고..그리고 디자인이란 장인정신이 아주 많이 요구되는 것..(세상에 쉬운 게 하나도 없다.)  아직 갈 길이 멀어도 너무 멀지만 우선 도전했다는 것에 내 스스로에게 큰 칭찬을 해주고 싶다.


4.운전과 인생은 한끗 차이

나와 내 가족들은 내가 운전을 평생 하지 못할것이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만큼 나는 방향치에 길치에 순발력치(?)에 겁도 오지게 많은 운전할 때 필요한 능력을 제대로 구비하지 못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이후로 쭉 서울에 살다보니 딱히 운전의 필요성을 느끼지도 않았다. 대부분 대학교 입학 전 운전면허 학원에 등록해서 면허를 딴다던데 난 운전이 꼭 하고 싶지도 않았고 노는데 정신이 팔려 운전면허 없이 그렇게 대학교를 졸업했다. 운전면허를 따야겠다고 결심했던 건 동오를 데려오면서 부터였고 얼마나 운전을 못했는지 운전면허를 무려 4수 끝에 합격했다. 합격한 날 흘렸던 기쁨과 억울함의 눈물을 잊을 수가 없다. 아니 내가 대학도 2번만에 갔는데 무슨 운전면허를 4수싹이나 하는지. 스스로가 비참하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했다.아니 원래 그렇게 태어난 걸 어떡하라고.


근데 용인으로 이사를 오게 되면서 회사 출퇴근을 위해 자동차가 필요해졌고 그래서 운전연수를 받고 나서야 드디어 운전대를 잡아 볼만한게 되었다. 처음 혼자 회사에 차를 끌고 간 날을 잊을 수가 없다. 네비게이션을 제대로 못봐서 이상한 곳에서 좌회전해서 다른 건물에 들어갔다 나오거나, 고속도로IC를 빠져나오지 못해서 서울까지 갈 뻔한적도 있었다.


하지만 아까 말했다시피 나는 이 시대 성실의 아이콘이며 포기하지 않는 집념의 소유자이기 때문에 절대 운전을 포기하지 않았고 식은땀을 주룩주룩 흘리면서 계속 운전을 시도했다. 당연히 아직도 베테랑 운전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주변 지역들 정도는 자유롭게 갈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포기하지 않은 나 대단해 멋있어!


그리고 운전을 하면서 깨달은게 있다 운전이랑 인생은 정말 비슷하다. 누군가 함께 차에 타서 조언을 해주더라도 결국 운전은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내야만 한다. 무섭다거나 힘들다고 중간에 차에서 내리거나 운전을 그만둘 수는 없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인생에 많은 사람들이 영향을 끼치겠지만 결국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선택하고 책임져야 한다. 포기할 수도 그만둘 수도 없다.  길을   들었다면 돌아가면 그만인 것이다.


5.동오와 진짜 가족이 되다.

동오가 우리 부부와 같이 산지 어언 6개월 처음에는 집안환경이 낯선지 잠도 제대로 못자고 불안해해서 같이 뜬눈으로 밤을 세운적도 많았다. 남편이랑 친해질 수 있을까 걱정이 됐고 혹시나 시댁 어른들이 싫어하면 어쩌나하는 마음도(이건 사실 아직도 신경쓰이지만) 있었고, 갑자기 혼자가 될 엄마도 걱정 됐고 하여간 걱정 투성이였지만 그래도 성공적으로 인간(남편)과 동오의 합사에 성공했다! 둘이 서로 얼마나 좋아하는지 보고 있으면 뿌듯하다. 게다가 동오는 원래 스킨십을 안 좋아하는 아주 독립적인 강아지였는데 요새는 애교가 폭발했다. 안 좋은건가 싶다가도 동오 애교에 녹아내리는 나란 집사.. 나를 이제 진짜 가족으로 받아들인건지 아님 워낙에 겁많고 의심많은 동오가 이제서야 나를 완전히 신뢰할 수 있게 된건지 모르지만 어떤 존재의 완전한 신뢰와 사랑을 받는다는건 날 아주 충만하게 한다. 나의 바람은 그저 동오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수명이 다하는 날까지 우리 곁에 있어주는 것이다.


6.이 밖에도

- 결혼식 준비를 위해 4kg을 뺐다. 고로 난 취업준비하기전 대학생 시절의 몸매를 되찾았다.

- 덕분에 몸매를 유지하겠다고 그렇게 싫어하던 운동도 일주일에 2-3번씩 하고있다.

- 실제로 일본사람을 만나면 한마디도 못하겠지만 일년 동안 포기하지 않고 일본어 수업도 꼬박꼬박 나갔다.

- 정말 소소하지만 브런치 라디오 작가로도 선정되었다.

- 난 지그재그 서비스를 진짜 좋아하는데 지그재그 에픽 에디터로도 뽑혔다(10만원 쿠폰 씬나!)

- 귀여운 시조카가 생겼다.

- 엄마와 호캉스를 했다. 해외 여행이라면 더 좋았겠지만 엄마가 기뻐해서 내가 더 기뻤다.

- 코시국에 결혼을 하니까 자연스럽게 불필요한 인맥이 정리됐다.
  그때는 속상했지만 지금 생각하니 오히려 다행이다.

- 동오 유튜브도 시작했다. 구독자야 별볼일없지만 문득 생각났을 때 다시 보면 추억이 떠올라 좋다.

  혹시나 나중에 동오가 나이들어서 강아지별에 가게되면 아주 소중한 채널이 될 것 같다.




연말이 되니까 여기저기서 이런 저런 소식이 들려온다, 누가 연봉을 엄청 띄워서 이직을 했다더라, 누구는 어디에 집을 샀다더라, 누구는 그 어렵다던 글로벌 대기업에서 초고속 승진을 했다더라 같은 얘기들 말이다.


그런 얘기를 들으면서 씁쓸할때가 있다. 난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서 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엄청난 것을 이뤄낸 그들에 비해 나는 이루어 낸 게 하나도 없는 쭉정이 같이 느껴진다. 성장하지 않으면 나태한 사람이고, 성장하지 않으면 패배자로 보는 사회 분위기가 요즘 들어 더 심해진 것 같다. 코로롱 시국으로 사는게 팍팍해져서인지 아니면 글로벌 IT 기업의 성과지상주의 기업문화가 가장 트렌디하고 힙한 것으로 여겨지는 시대라서 그런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삶은 숫자로 표현할 수 있는 게 다가 아니라는 것, 올해 동안 그저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면 그리고 스스로 더 행복하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도전했다면 그 누구든 이뤄낸 것 하나 없이도 그 자체로 의미 있는 한해를 보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이 글을 읽는 모두가 스스로 자책하고 반성하기 보다는 스스로에게 칭찬 해주는 연말을 보냈으면 좋겠다.

"짜식 올 한해도 열심히 사느라 고생했다. 니가 제일 멋져 짜릿해 최고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