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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실 Feb 11. 2021

소리도 없이 (Voice of Silence,2020)

소리도 없이 사는 사람들

 계란장사와 살인청부의 하청업인 시체 처리를 하며 돈을 버는 창복(유재명)과 태인(유아인). 이들은 시골 동네에서 투잡을 뛰며 살고 있다. 말을 못 하는 태인과 다리 한쪽을 저는 창복은 늘 받던 시체 처리가 아닌 다른 부탁 하나를 받게 된다. 어쩌다가 어린아이를 자기들의 동네까지 데려가게 생겼다. 창복은 애를 유괴하는 일인 줄 몰랐다면서 하루만 태인의 집에 맡아달라고 한다. 초희는 울거나 떼를 쓰지도 않고 이들 사이에 껴서 덜컹거리는 트럭을 타고 시골길로 향한다. 하지만 초희의 아버지는 딸의 실종 소식에 바로 응답하지 않았다. 아이 유괴를 지시한 이들도 초희가 아들이 아닌 딸이라서 적은 ‘몸값’을 올리려고 유괴까지 감행한 것이다. 며칠을 태인의 집에서 있게 된 초희는 오히려 태인의 동생 문주에게 옷을 개는 법, 세수를 하는 법, 어른이 먼저 숟가락을 들어야 한다는 집에서 배운 식사예절을 가르치면서 지낸다. 그러던 중 초희를 찾지 않는 부모의 태도에 아이를 그냥 팔기로 했다는 지시가 내려왔다. 창복은 태인에게 아이를 데려다 줄 장소가 적힌 주소를 주고 자신은 아이의 몸값을 직접 받으러 동네를 떠난다.

 


 봐야지 봐야지- 하고 미뤄뒀던 <소리도 없이>를 청룡영화제 수상 소식을 핑계로 후다닥 봤다. (2021 청룡영화제 신인감독상, 남우주연상 수상작) 첫 장편영화작 <소리도 없이> 홍의정 감독은 우리에게 세계의 문을 차근차근, 차분히 열어준다. 계란장사를 하던 창복과 태인의 모습에서 시체를 처리하는 모습으로. 그리고 홀로 자전거를 타고 옷더미가 가득한 방안에 털썩 눕는 태인의 모습으로. 그리고 창복의 죽음 이후에나 나오는 계란 농장의 모습까지.

 우리는 이 세계에 입장해보면 영화의 제목인 ‘소리도 없이’라는 말에 대한 상응이라도 하는 것처럼 장면과 인물들이 소리도 없이 우리의 눈앞에서 사라지는 것을 보게 된다.

 영화는 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말을 한다. 창복(유재명)은 소리도 없이 돈가방을 놓고 ‘편안하게 하늘로’ 사라지며, 초희의 초등학교에 데려다준 후 유괴범으로 몰린 태인(유아인)은 소리도 없이 초희에게서 사라진다.

 그리고 초희는 소리도 없이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팔릴 위험에 수일이나 방치되어 있었으며, 무엇보다 시골 동네 한 곳에서는 소리도 없이 시체를 처리하는 일이 수도 없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또한 어린아이를 발견했던 동네 경장의 지시에, 집에 가고 싶다던 아이를 찾으러 갔던 경찰은 소리도 없이 사라질뻔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무 말도 없던 태인이라는 사람이 말하는 소리를 우리는 들을 수 있다. 말하자면 영화에서 말하는 ‘소리’가 무엇인지도 우리는 당연히 알 수가 있다는 것이다. 아무도 모르는 ‘느티나무 소년’의 존재가 영화를 말하고 있다. 영화 이후의 스토리를 상상해보자면 태인은 아무도 모르게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경찰의 수사망에 유괴범으로 잡혔을지도 모른다.

 이 영화는 우리에게 특별한 ‘영웅’을 요구하지 않는다. 



 어쩌면 태인의 집에 있었던 사람들은 아무도 찾지 않는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초희의 부모는 초희가 아들이 아닌 딸이라서 몸값을 적게 불렀다. 이로써 초희는 아무도 찾지 않는 사람이 된 셈이다. 그렇지만 누구보다 씩씩하게 자신의 삶을 개척하고 있는 초희를 유일하게 찾는 사람은 태인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아마 서로를 찾아 나서고, 찾아주기를 바랐던 것이 아닐까. 말 한마디 없는 태인이 된 배우 유아인의 얼굴이 선명하다. 어느 것 하나 쉽게 써 내려가지 않았을 것 같은 영화의 모든 이야기가 하루 종일 머릿속을 맴돈다. 


 우리는 이 영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

창복과 태인의 삶에 누가 윤리적인 기준을 들이댈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어떻게 댈 지도 곤란할 만큼 어렵다. 아무도 모르게 살아가던 이들의 삶에 들이닥친 결과에 권선징악이라는 프레임은 이미 허용되지 않는다.

사각지대라는 곳에는 권선징악도, 윤리적인 기준도 사라진다.


보통 사람처럼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더 나아가 영화는 우리에게 어떤 소리를 내면서 살아가야 되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는 것 같다. 무엇이 우선이 되어야하는 것인지 우리는 한참을 고민하게 된다.



*사진 출처: 네이버 <소리도없이>(2020) 포토 스틸컷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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