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릉선수촌 국가대표 이상의 스케줄을 소화하다...
그렇다. 다후를 또다시 피곤의 늪에 빠지게 한 모든 사건의 시작은,
"최종적으로는 물이 겁나 많이 새긴 하나, 검토 단계까지는 물...아니 공기마저 샐 틈 없는" 준비성으로 유명한 나의 완벽에 가까운 올림픽 관람 스케줄에 있으리...
나를 아는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난 운동광이다. 특히, 공으로 하는 운동을 좋아해서...월드컵이나 유로축구, 프로축구 K리그와 EPL & 라리가, 한국과 미국 프로야구, NBA농구, ATP 테니스 투어, PGA/LPGA 골프 등 공으로 하는 웬만한 sport event에는 푸욱 빠져 살고 있으나, 생각해 보면 이 들 경기들이 거의 모두 상업화된 지금, 프로선수들의 화려한 경기를 보다 보니 아마추어가 하는 올림픽에는 "1988년 서울 올림픽" 이후 별 관심이 없었다. 1988년, 나는 잠실 종합 운동장에서 "마하인간" 벤 존슨과 "갈색 탄화" 칼 루이스, 그리고 당시 내가 즐겨먹던 밀가루 떡볶이보다 긴 손톱을 지닌 "달리는 패션모델" 그리피스 조이너를 직접 보았고, 그로 인해 갑작스레 육상을 좋아하게 되었으며, 당시 중계를 안 해주던 세계육상선수권 대신 올림픽을 기다리곤 했다. 그러나, 그 3 인방 은퇴 후, 치타만큼이나 빠른 우사인 볼트가 나오기 전까지, 나의 육상 관심도 바닥을 치게 되었다. 어찌 되었던, 하고픈 말은...2012년 당시 난 올림픽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다. 사전 티켓 예약도 물론 안 했고...
하지만, 트라팔가 광장에 세워진 올림픽 카운트다운 시계를 계속 보면서, 그리고 방학으로 인해 점점 할 거리가 없어 심심해진 개인적 사정으로 인해 나는 점점 올림픽을 연구하게 되었고, 급기야 올림픽 기간 동안 할 일들을 계획하게 된다.
우선, 완벽한 계획을 세우기 위해 분석부터 시작했다. 계획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아는 나로서는 이번 올림픽 계획을 위해 약 1주일 정도를 할애하기로 하였다. 참고로, 나는 스케줄링에 있어서 전형적인 Slow starter다. 예를 들어, 계획 초기 하루 이틀은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생각만 한다. 그러다 보면 나도 사람인지라 많이 졸게 되는데...내 와이프는 이런 광경을 지속 보게 되자...말이 좋아 Slow starter이지, 나는 그저 아주 느린 사람, (나와 생각이 특히 다른 점은) 시간이 흘러도 빨라지지 않고 계속 Slow 한 게으른 자라고 한다. 하지만 난 고등학교 때부터, 2 주전쯤 시험일정이 발표되면, 약 3-4일은 공부를 전폐하고 공부 일정계획만 짰다. 졸면서...
이런 Slow starter 성향은 공부할 때도 드러나는데, 나는 절대 하루에 국영수 1시간씩...이런 식으로 공부를 안 한다. 하루에 무조건 한 과목, 심지어 일주일 내내 정말 한 과목만 공부한다. 왜냐하면, 나는 그 한 과목에 집중하기 위해서 한 3-4시간의 몰입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집중된 이후로 계속 지겨워 죽기 전까지 그 과목만 한다. 이 방법이 집중적으로 단기 성적을 올리는 데 매우 좋은데 (골프도 4박 6일 전지훈련을 가서, 108홀을 돌면 5타가 저절로 줄어드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런 점 외에도 더더욱 좋은 점은 일주일 내내 한과목만 가지고 다니게 되어, 정말 책가방이 가벼워진다는 점이다. 특히, 나는 교과서나 참고서를 사자마자 분철하기로 유명했는데, 이 모든 결과가 합쳐지면서, 내 가방은 솜털처럼 가벼이 바뀌었다.
어쨌든, 다시 돌아와서...나는 아래처럼 여러 일정표를 분석하기 시작했고, 약 3일이 지난 시점에서 목표는 구체화되었다. 여러 세부 목표를 세웠는데, "우사인 볼트와 같은 경기는 본방으로 꼭 관람하여 시대에 뒤처지지 말기" 등의 아주 작은 목표도 있었고, 애국심을 최대한 발현한 "매일 한국 선수들이 출전하는 경기를 관람하되, 무조건 직관, 또는 표를 못 사면 야외 스크린이나 주영한국문화원에라도 가서 여러 한국사람들과 같이 응원하기" 등의 무모 혹은 무식한 목표도 있었다.
바로, 이런 목표가 문제가 되었는데...이제 실제 우리의 올림픽 여정을 시작해 본다.
우리 가족의 올림픽 관람은 나의 계획대로 척척 진행하게 된다. 우선, 7월 27일 개막식이 시작되기 전 먼저 진행된 멕시코와의 축구 예선경기를 7월 26일 관람한다. 나의 목표대로, 이 경기는 한국문화원에서 교민들과 함께 응원하기로 한다. 다후는 이때 난생처음으로 축구라는 경기를 접하게 된다.
올림픽 전날 우리 가족의 일정은 매우 심플하다. 아침 일찍 다후에게 이유식을 먹이고 나와, 시내 중심에 위치한 주영한국문화관에 간다. 멕시코와의 축구 경기를 목이 쉬도록 응원하고, 걸어서 트라팔가 광장으로 가서 성화봉송 주자를 멀리서 나마 본다. 마지막으로 다시 하이드파크까지 걸어와서, 올림픽 전야축제를 즐기다가 밤늦게 집으로 돌아간다...
[ 7월 26일 첫 번째 일정 : 한국 대 멕시코 축구경기 - 주영한국문화원 ]
이 날 다후는 한국 특유의 북 치고 장구 치는 응원에 매우 큰 관심을 보였으며, 이 날 문화원에 모인 사람들 중에 가장 나이가 어린 사람으로 많은 이목을 집중시킨다. 연합신문이나 TV조선 등의 언론 매체에서 사진을 마구 찍어가기도 했다. 다후 눈을 보자마자 자신은 눈을 깔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한, 같은 학교 출신의, 현재는 YG엔터테인먼트 법인장이 된 JJ도 같이 관람했다. 경기는 0:0으로 비겼어도, 첫날 치고는 매우 안정적인 출발이었다.
[ 7월 26일 두 번째 일정 : 성화봉송 - 트라팔가 광장 ]
고된 응원으로 체력이 방전된 다후를 유모차에 태워 트라팔가 광장으로 성화봉송을 보기 위해 이동한다. 봉송 주자가 너무 빨라, 지나간 줄도 몰랐지만, 그래도 올림픽 개막을 카운트다운하는 시계 앞에서 (개막은 하루하고 4시간이 남았다) 증빙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 7월 26일 세 번째 일정 : 올림픽 전야제 - 하이드 파크 ]
굳이 트라팔가를 왜 갔을까라고 생각할 만큼, 여러 개의 큼지막한 스크린에서 성화 봉송을 중계하고 있는 하이드 파크였다. 그 큰 공원을 몇 개의 Section으로 나누어, 다양한 방송과 공연을 동시에 진행하는 모습을 멀리서 관망한 후, 다후는 흠칫 당황하는 모습도 잠시 보였으나, "아, 어른들은 이렇게 노는구나"라고 깨달은 듯 자신만의 Play를 하게 된다.
개막도 안 한 올림픽 첫날 일정을 밤 12시까지 가까스로 소화한 다후는, 매우 피곤하다 라는 것을 느낄 새도 없이 다시금 하이드 파크를 찾게 된다. 우리 대한민국의 효자 종목인 양궁 경기를 관람하기 위해서다. 이날은 양궁 표를 구하지 못해서 공원 바닥에 자리 깔고 맥주 먹으며 경기를 보았으나, 7월 30일 양궁 경기표를 구했기에 나는 매우 흡족한 상태였다. 이 날은 내외가 모두 운동을 매우 싫어하지만, 다행히 다후와 동갑인 딸이 있는 한 가정과 같이 관람했다. 다만, 그 내외는 맥주를 아주 좋아하고, 뜬금없는 일본식 유머 (남편이 어렸을 때 일본에서 살았다)를 구사하여 나를 은근 만족시키었다.
그렇다, 올림픽이 개막한지도 이틀이 지났다. 공기소총과 양궁으로 시작된 한국 경기는, 이제 내가 좋아하는 구기 종목으로 연결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바로 오늘, 한국 축구의 8강 진출에 가장 중요한 경기인 "한국 대 스위스"전이 런던 북쪽 약 200km 지점에 위치한 코벤트리에서 열린다.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은 기억하겠지만, 직전 월드컵 때 우리를 진심 빡치게 만든 바로 그 스위스 전이기에...오늘은 평소에 절대 하지 않는, 아침 일찍 일어나 목욕재계도 하고, 드디어 런던올림픽 첫 직관을 준비한다. 붉은 악마 유니폼이 없는 다후는 빨간색 딸기 코스프레 복장을 준비했고, 이 날 경기를 승리하여 8강에서 영국과의 경기를 원한다는 의미로, 같이 간 친구들과는 영국 왕실 가면을 준비하는 등, 모든 것이 계획대로 진행되었다.
자아...이제 진짜 경기장으로 출발이다.
도착한 경기장 분위기를 설명한다...우리 바로 뒷자리에는 힐링캠프 촬영을 위해 이경규 씨를 비롯한 SBS 관계자들이 자리 잡았고, 반대쪽 바로 뒷자리에는 스위스의 거물 체육인사, 제프 블래터 국제축구연맹회장이 자리 잡고 있었다...그렇다, 그는 오늘 우리의 상대인 스위스 인이며, 정몽준 축구협회 회장과의 끝었는 악연으로 유명하고, 2015년 급기야 부정부패로 회장직을 물러난다. 그리고, 바로 그 뒤에는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스페인전에서 당시까지 월드컵 최고 시속으로 기록된 114km/h의 대포알 슈팅으로 유명해진 "캐논슈터" 황보관 기술위원장과 김주성 기술위원장, 그 오른쪽 끝에 한국 축구협회 회장 조중연 씨도 자리 잡았다. 영국 왕실 가면을 쓴 우리는 많은 영국인들도부터 인터뷰 요청을 받았고...
자아, 이제 선수들 몸풀기도 끝났다...그리고, 첫 직관 경기의 휘슬이 울린다...!!!
연속된 직관 투어로 인해,
태어나자마자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는 다후의 이야기는 다음 편에...
[ 참조 : https://brunch.co.kr/@mussmuss/39 - 런던올림픽 직관투어의 시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