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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기린 Sep 28. 2021

떠나는 것이 떠나보내는 것보다 쉽다면

남아있을 공간도 잃어버리게 되는 것


연애를 한 지 너무 오래되었지만, 지금 떠올려도 생생한 그 감정. 헤어졌을 때의 상실감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나는 상처 받는 것과 실망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큰 편이라 믿음을 주기까지 오래 걸리는데 일단 믿고 나면 의심도 잘하지 않기에 상대방이 헤어지자고 할 때의 충격도 더 컸다.


아직 진행 중인 연애감정 속에 홀로 남겨진 채로 어제까지 남자친구였던 이가 멋대로 퇴장을 한다. 생각할 시간을 갖기로 해도 결국 퇴근 시간을 기다리는 사원을 초조하게 지켜보는 부장님처럼 혼자만 애가 탈뿐. 남겨진 연애 속에서 나는 시한부로 주어진 이별을 더욱 외롭게 준비해야 했다.


물리적인 이탈이 주는 진정

함께 걷던 거리나 함께 가던 카페를 지나칠 때면 트리거처럼 그 사람과의 추억이 떠오르는 경험, 다들 있을 것이다. 그런 곳을 애써 피해 돌아다닌다 해도 그 사람이 좋아하던 음식을 먹을 때나 심지어 어떤 연예인이 방송에 나올 때면 그에 대해 나누었던 이야기가 떠오르면서 기억은 깔때기처럼 다시는 경험할 수 없는 그때로 순식간에 흘러간다.


그래서 파리에서 인턴을 하는 동안 헤어졌던 때는 생각보다 수월했다. 그곳에서는  연인과 함께 했던 것도 함께 갔던 곳도 없으니 문득문득 예기치 않게 기억이 떠오르는 일은 덜했다.  머릿속에  사람이 뱉었던 날카로운 말들이 맴돌았지만 에펠탑의 불빛이, 퐁데자르에 흐르는 음악이, 오랑주리의 채광을 받아 빛나는 모네의 수련이 주는 환희가 순간순간  아픔을 튕겨내었다.  강을 산책할 때마다  사람과의 기억을 강물에  움큼씩 던져버렸으나 가치 있다 생각했던 좋은 기억들은 마치 무게가 있는 금가루처럼 금세 가라앉았고 공허한 말들만 동동 다시 떠올랐다. 하지만 그마저도 시간이 지나자 바람에 날리듯 파리의 공기 속에 흩어져버렸다. 그렇게 나는 파리에서  사람에 대한 마음을  털어버렸고 한국에 돌아와 다시 만나지 않았다.


그 일로 나는 내 근거지를 벗어나는 것이 생각 정리에 꽤 도움이 된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퇴사를 했을 때도 여행을 떠났고 남편이랑 크게 다투었을 때는 혼자 카페라도 가서 몇 시간 앉아있다가 들어가야 정리가 되었다. 마음속에서 동굴로 들어가 버리는 사람들도 있지만 내 경우에는 몸이 움직여야 생각이 변화하는 편이었다.


집이라는 공간이
어렵고도 중요한 이유

남편은 평소에도 외출보다는 집에 있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고 싸운 후에도 나가기보다 방 안에 혼자 있어야 하는 사람이다. 코로나 이후로는 올타임 재택이라 더더욱 집에 있는 시간이 나에 비해 훨씬 많을 수밖에 없다. 자연히 식사 준비나 집 정리도 남편이 자주 하게 되면서 집안의 물건들은 점점 남편의 손을 더 많이 타게 되었다. 연애와 결혼의 다른 점은 '헤어질 수 없다'는 데에 있다. 그것은 연애와 비교해 가장 좋은 점이 될 때도 있고 가장 안 좋은 점이 될 때도 있다. 내가 아무리 성이 나서 외출을 몇 시간 하고 돌아온다고 해도 남편이 있는 우리 집은 변한 것 없이 그대로이기 때문에 숨이 턱 하고 막힐 때가 있다. 응당 해두었어야 할 설거지가 그대로 쌓여 있거나 내가 개켜두었던 남편 옷들이 서랍에 들어가지 않은 채 그대로 있는 모습을 보면 '아직 화가 풀리지 않았다'는 남편의 시그널이 접수된다.


남편과의 싸움은 자리를 피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었다. 남편이라는 사람과 마주해야만 풀 수 있는 일이고 보통은 그 배경이 '우리 집'이 된다. 그래서 집은 전쟁과 평화가 덕지덕지 교차하는 퀼팅패드가 되어간다. 단순히 손때가 묻고 낡아가는 것과는 별개로 피할 수 없는 기억들이 켜켜이 쌓인다. 그래서 집 안에서도 나만의 공간이 필요하다. 온전히 내 질서로만 채운 공간은 상징적으로나마 상대로부터 분리된 휴식처가 되기 때문이다. 집이 작으니 방 하나를 차지하는 건 언감생심이지만 남편에게는 그의 책상이 그런 공간이다. 필기구를 늘어놓든 캐비넷을 자꾸 늘리든 내가 참견할 수 없는 영역. 한 때 트렌드 키워드였던 '케렌시아'라는 게 나에게는 있을까? 나는 내가 자리를 피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했다. 혼자 남겨지는 것보다 차라리 내가 누군가를 남겨두는 것이 덜 힘들었으니까.


버지니아울프가 '자기만의 방'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 이유가 있었다. 창작활동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그런 공간이 상징하는 독립성이야말로 분리를 통한 안정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늘 바깥에서 그런 공간을 찾았던 나에게는 진정한 의미의 피신처가 없었다. 생각해보면 신혼 때는 그래도 제법 집을 단장하는 데 취미가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쭉 온전히 내 손을 타야만 변화하는 공간이 침실이라는 걸 깨달았다. 계절에 따라 바꾸는 침구 색상도, 두께도, 화병에 꽂아두는 꽃도 액자 안에 넣는 사진도 남편이 일절 참여하지 않는 곳.


떠날 수 없는 곳
떠나지 않아도 되는 곳

결혼하기 위해 집을 구해야 했을 때 우리의 상황은 그리 희망적이지 않았다. 전세자금 대출로도 예산이 모자라 차라리 집을 사면서 그 집을 담보로 더 큰돈을 대출받기로 했다. 그렇게 아등바등 2억 6천을 만들어 마련한 집은 근사한 구석은 없었다. 하지만 그런 집도 지금 시세로 7억을 웃돈다. 참 부동산이 역시 꿈동산인가 싶다. 우리 집이 이렇게 올랐다는 건 서울 다른 지역은 훨씬 더 비싸졌다는 뜻이다. 그래서 여전히 쉽사리 떠날 수 없는 곳이지만 한편으로는 떠날 필요가 없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런 집에서 나만을 위한 공간을 만들지 않는다는 것은 결국 내 손해이다 싶었다. 이별도 싸움도 내가 먼저 떠나는 것이 더 편했던 나는 결혼을 통해 '머무는 법'을 연습하고 있다. 침대 시트를 걷어 돌돌 세탁기에 돌리면서 머리맡에 놓인 액자 위 먼지를 닦아내면서 그런 생각을 한다. 더 이상 나는 사랑하는 상대를 떠나보낼 일도 없고 내가 떠나야 할 필요도 없으니 앞으로는 우리만의 이 공간에 더 정을 붙이고 싸우더라도 피하지 말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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