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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기린 Feb 03. 2022

그해 네 녀석은

결혼, 지금부터 시작이다



얼마 전에 종영한 SBS 드라마 <그해 우리는> 은 잔잔하고 편안한 전개와 주옥같은 대사들로 인기가 많았다. 나와 남편도 매회 본방사수를 하며 열심히 보았지. 최웅과 국연수는 다시 만난 순간부터 하나 둘 '우리'였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감정을 되살려 나간다. 둘 사이의 에피소드들이 '우리'만의 추억이 되어 서로에게 남아있다는 걸 확인하고 그 추억을 현재로 만들고자 하는 바람이 같다는 걸 깨달았을 때 둘은 비로소 다시 연인이 된다. 풋풋하고 따뜻한 그 감성이 그저 예뻐서 볼 때마다 그냥 기분이 좋아졌던 드라마.  


우리는 부부입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둘이 '부부입니다'를 외치는데 문득, 그들의 결혼생활은 어떨까 궁금해졌다. 사실 모두가  최웅이 정말 귀엽고 사랑스럽다며 빠져있을 때 나 혼자 시니컬했었다. 최웅의 캐릭터가 우리 남편과 닮은 구석이 많기 때문이었다.


- 저렇게 감수성 풍부하고 사랑을 보채는 남자랑 결혼하면 이렇게 돼


그러면 친구들은 하나같이 환상을 깨지 말라며 진저리를 친다. 그러면서도 미술을 전공하고, 집에 있기 좋아하고, 상처받은 것을 그대로 쌓아두고, 공과 사에 칼 같은 면들에서 우리 남편과 최웅이 닮았다는 걸 부정하지는 않았다. 현실판은 늘 그렇지 뭐.


연애를 할 때는 '우리'라는 말에 필사적으로 의미부여를 하는 것 같다. 어쩌면 아직은 너와 나는 독립된 개체라는 인식이 뚜렷하기 때문에 더 그럴지도 모른다. 그래서 함께 하는 시간을 늘리고 둘만 공유하는 비밀들을 만들면서 조금씩 조금씩 경계를 허물고 남들보다 가까운 특별한 사이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부부가 된 이후에는 '0촌'으로 그야말로 가장 가까운 사이이자 헤어지려면 법을 따져야 하는 관계가 되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너와 나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우리'라는 말이 더 이상 특별하지 않다. 그냥 편의상 '남편이랑 제가'라고 말하면 너무 길기 때문에 '우리가'라고 말하는 정도의 효용이랄까. 오히려 부부로 몇 해를 살다 보면 점점 '나'와 '너'가 단독으로 주어가 되는 일들에 더 의미부여를 하게 된다.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든 현재에 이루기 힘든 일들에 더 집중하게 마련이니까. 내가 남편 없이 혼자 해외여행을 몇 달 다녀온 것에 대해 브런치에 글을 쓴 적이 있는데 유독 이 글을 소재로 기사를 쓰고 싶다는 요청이 많았다. 이야깃거리가 될 만큼 흔하지 않은 일이라는 뜻이겠지.


거저 우리가 되진 않는다

가끔은 '      없이 그냥  우리 '이라는 생각이 싸움이  때도 있다.  번의 업데이트를 거친  현재 진행 중인 우리  가계 운용 방식은 이렇다. 프리랜서인  월급은 들쭉날쭉하기 때문에 얼마를 받든 무조건 모으는 통장으로 보내고 남편의 월급  100  역시 모으는 통장으로 보낸다. 그리고 나머지 남편의 월급에서 각종 세금, 대출금, 보험료, 공과금 등을 내고 각자의 용돈을 뗀다. 남는 돈은 생활비 통장으로 보내 식비나 생필품을 사는  쓴다. 함께 모으고 쓰는 돈이 명확하게 보이니 생활비 용처로 다투는 일이 없어졌고 각자의 용돈은 얼마 되지 않으니 무엇을 하든 서로 터치하지 않아 좋았다.


그러다가 남편이 사브작사브작 취미로 그리던 그림이 인스타그램에서 점점 반응이 오더니 실구매로 이어지는 건 수가 눈에 띄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남편은 또 그걸 자랑하고 싶어 그림이 얼마에 판매가 되었는지 일일이 말해주었는데 셈을 해보니 그 액수가 절대 귀엽지 않은 수준이었다. 저 돈을 다 생활비에 보탠다면 참 든든할 텐데 싶은 마음이 들자 나도 모르게 남편을 회유하기 시작했다. 남편은 아마 집으로 쉴 새 없이 배송되는 내 택배를 보며 '저 돈을 다 모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고 생각했겠지.


그래서 나도 양심상 그림판 돈을 전부 가져오라고는 못 하고 '재산세'나 '소득세' 명목으로 생활비에 일부를 보태는 건 어떠냐고 농담 섞어 물었다. 쪼잔하긴 하지만 따져보자면 재택을 하면서 집에서 캡슐 뽑아 마시고 집 전기 쓰고 본인이 그림 그리는 일에 집중하고 있을 땐 간혹 내가 본인 몫의 집안일을 대신해주기도 하니까 내 공로도 치하해 달라며. 그래도 그 돈을 나에게 달라는 것도 아니고 생활비에 보태라고 한 거니 나름 관용적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남편은 완강하게 거부했다. 본인이 쉴 시간을 빼서 과외의 노력을 들여 벌게 된 부수입이니 엄연히 자기 돈이라고 했다. 난 우리 남편이 돈 욕심이 없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쓰는 욕심이 없는 거였지 모으는 욕심이 엄청난 사람이었다. 소비요정인 아내라는 변수 없이 자기 욕심껏 돈을 모을 수 있는 꿀단지를 뺏기지 않기 위해 혈서라도 쓸 기세. 결국 내가 포기했고 남편 또한 그 돈 안에서 본인이 그림 그리는데 필요한 재료를 충당하기로 했다.


치열하게 지켜낸 '나'를
다시 '너'에게 맡긴다

나와 남편이 '우리'가 되기로 한 순간부터 함께해서 의미 있는 일들도 많았지만 온전히 '너'와 '나'여서 행복했던 순간들도 있었다. 가끔은 이해가 안 되더라도 양해를 해준다면 상대방은 내 생각보다 더 크게 그 배려를 느낄 수 있다. 적어도 난 남편이 나를 혼자 여행 보내 줬을 때 표현했던 고마움보다 훨씬 더 큰 감동을 느꼈었다. 아무리 내가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하는 것일지라도 부부는 말마따나 '한 몸'이기 때문에 알게 모르게 상대방의 도움과 양보가 수반된다.


내가 남편에게 '오빠 그림 그리는 데 적합한 환경을 조성하는 데 내 수고도 있다'는 발언에 남편은 갑자기 '나는 너 일하러 갈 때 태워주고 했잖아'라고 응수했고 그때부터는 논리보다는 감정이 우선시 된 유치한 다툼이 시작되었다. '너'와 '나' 사이에 경계가 있어야 하는 건 맞지만 말로 조분조분 정리하면 참 정 없고 서운한 게 또 부부 사이.


최웅과 국연수 커플과 달리 부부는 '우리'라는 생각 때문에 싸우고 '너'와 '나'를 앞세워도 싸운다. 그렇다면 부부의 평화는 어떻게 지켜야 할까?


그건 바로 '나'는 '너'를 생각하고 '너'는 '나'를 위해주는 '역지사지'를 잘하는 수밖에 없다. 누구나 본인에게조차 본인이 좋아하는 모습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하물며 아무리 살 맞대고 사는 사이라고 해도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분명히 있다. 본인에게 관대한 만큼만 상대방을 이해하려 노력하면 '우리'가 당연한 이 관계가 감사하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늘어날 거다.


오늘도 나는 남편의 '너'로서의 생각들을 읽으려 노력하고 또 노력한다. 이해가 안 될 땐 혼자 소심하게 주어를 바꾸어 보는 거지. '네 녀석'으로 말이야. 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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