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원도 Jan 04. 2021

일상의 언어는 멀어지고

2021. 1. 4



아주 오래전부터 일기를 썼다. 지금도 내 방 책장에는 지금껏 써 왔던 일기장이 한가득이다. 고1 때 쓴 일기장엔 당시의 ‘야자 감수성’이 폭발했을 때, 무려 지워지지도 않는 네임펜(왜 그랬니)으로 일기장 겉면에 ‘대한민국 고등학생이라면 누구나 힘들다. 그러나 나는 그중에서도 유난히 힘이 들고 눈물이 고이고...’ 따위의 절절한 심정을 적는 일을 저질러 펼치는 것조차 두려워진다. 그러나 이걸 흑역사 또는 수치심이라 생각하진 않는다. 그때의 나는 딱 이만큼 절박했고 힘들었었구나. 그럼에도 지금 살아있단 말이지. 꽤나 뿌듯한 감정까지 든다.


그러면 고3 때 쓴 일기는 또 얼마나 가관인가. 이때의 나는 나의 모의고사 또는 내신 성적을 철저히 외면한 채, 시험날 찍신이 보우하든 갑자기 나의 대뇌피질이 100%의 움직임을 구사하든 어쨌든 납득하지 못할 이유로 경찰대학교에 합격할 거라 굳게 믿었다. 그래서 경찰대학교의 원서 모집 요강을 신청했고, 요강과 함께 부록으로 딸려온 경찰대학교 수첩을 고3 일기장으로 낙점한 것이다. 여기서 일기의 내용을 밝히긴 그렇지만 어느 장을 펼치든 고1 때의 일기보단 훨씬 더 격정적이라고만 해두자. 이 시기는 진정 흑역사 또는 수치심으로 기록될 만하다.


이런 나를 잘 아는 지인들은 나에게 선물로 종종 일기장이나 다이어리를 안겨주었다. 그런데 요즘의 난, 일기를 쓰지 않는다. 단 한 줄도. ‘요즘’이라 하기엔 시기가 명확하지 않다. 정확히 말해서, 글을 쓰고 난 이후부터는 일기를 쓰지 ‘못’하게 되었다.


글을 쓰고 책을 낸 이후부터는 내가 쓰는 모든 문장이, 내가 뱉는 모든 낱말이 다 문학으로 읽혔고 들렸다. 지금껏 휘갈긴 문장과 거침없이 뱉어 온 말들을 모조리 주워 담아 흰 종이 위로 쏟아부었다. 나의 일상이 곧 나만의 문학이 된 감각은 생소하면서도 동시에 굉장히 피곤했다. 그리고 가면 갈수록 나는 일기를 쓰지 못하고 말을 적게 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일기를 쓰려고 적은 일상의 기록이 나도 모르는 사이 한 편의 에세이로 작성되어갔고, 내가 뱉은 말이 나의 습작 소설 속 인물의 대사가 되어 타인의 마음에 새겨졌다. 나의 모든 일상이 보잘것없는 나만의 문학이 되어 요동치고 나의 실제 생활과 문학을 분리할 수 없게 되었다. 어쩌면 상상력이 빈약한 탓일까, 자책도 많이 했다. 상상할 힘이 없으니 일상을 팔아먹는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나의 일상을 작품 생각하지 않고 담담히 기록할 힘이 부족했다. 지금은 책을 내는 데 온 힘을 집중하기에도 벅찼다.


현재 3분의 1 가량 완성된 습작 소설도 주인공이 곧 나고 소설 속 세계가 곧 나의 일상임을 나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이건 누굴 위한 글이지? 나는 왜 글을 쓰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수록 내가 글을 쓰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결국, 나는 이토록 할 말이 많았구나. 혼자 하기엔 외롭고 비참한 말을 종이 위로 옮기니 그럴듯하게 보이는 그 감각에 흠뻑 취한 건지도 몰랐다.


선물 받은 일기장과 이미 년도를 넘겨버린 다이어리에 언제쯤 나의 하루를 간단히 기록할 수 있을지, 별다른 비유적 표현을 섞지 않고 조금은 건조하게 쓸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2권의 책을 냈고 현재 2권의 책을 작업하는 동시에 1권의 소설을 써 내려가는 나는 여전히 종이를 채울 말과 문장이 부족하고, 그 부족한 말을 일기장에, 남을 향한 말로 쏟아버릴까 겁이 난다. 난 갈수록 잔뜩 심통난 노인처럼 고집스레 입을 다물고, 아직 생각정리가 덜 끝난 철학자처럼 일기를 쓰는 데 우물쭈물하며 애꿎은 연필만 깎고 있을 것이다.


내가 잃어버린 말은 정말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일까. 이젠 그것조차 알 수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