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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도 Aug 14. 2023

<극한직업>, 그래서 겸직 금지 의무 위반은요?



※ 본문에는 영화 <극한직업>에 대한 스포일러가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 어디까지나 영화의 만듦새에 대한 평론이 아닌, 영화에서 다루는 ‘경찰’의 모습에 대해 해학적 시각으로 써 내려간 글이니 가볍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극한직업> 공식 포스터


지금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




관객 수 1,626만 명으로, 역대 개봉 영화 중 관객 수 2등(1등은 1,760만 명을 기록한 <명량>이다)이라는 기념비적인 성과를 거둔 영화 <극한직업>. 엄청난 인기와 명성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접한 건 영화관에서 막을 내리고도 한참 뒤,  OTT 사이트에 등록되었을 때다.


내가 경찰관이라서 그런지, 경찰을 주제로 다룬 영화나 드라마는 아무리 흥행하더라도 굳이 보지 않게 된다. 얼마나 경찰을 희화화하고 말도 안 되게 그렸을지에 대한 상상으로 인해 꺼려지는 기분. 


영화를 보지도 않고 선입견과 진짜인지 아닌지도 모를 걱정에 사로잡혀 뒤로했던 이 영화를 보고 참 많이 웃었다.


영화 감상평을 한 줄로 요약해 보자면 경찰관이 적당히 불쌍하게, 또 적당히 멋지게 나온다. 실제 경찰관의 삶도 이와 다르지 않다. 물론 실제로는 많이 어렵고 멋질 일은 거의 없지만.




<극한직업> 공식 스틸컷


돈 없어, 이 새끼야. 창문 깨지면 누가 변상해!

서울마포경찰서 마약반의 고 반장(류승룡 배우)은 뜻대로 되지 않는 수사 때문에 만년 반장의 위치에 머물러있다. 


영화 첫 장면에서 그는 마약사범을 잡기 위해 레펠을 타고 창문 밖에서 대기 중이지만, 실내로 침입하진 못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아무리 수사 과정의 일환이라고 해도 창문 파손에 대한 손해는 보상해 줘야 하기 때문이다.


창문이 깨질까 봐 못 들어오냐고 비아냥대는 마약사범에게, 고 반장은 외친다. 돈 없어, 이 새끼야. 창문 깨지면 누가 변상해! 라고.


이 장면은 실제와 다르지 않다. 손실보상 문제의 결말은 항상 "그래서, 총은 쏘는 게 아니라 던지는 거야."로 향한다. 다른 첩보 영화처럼 폼나게 범인을 추격할 수도, 앞뒤 안 가리고 달려들 수도 없는 현실. 범인을 잡기 위해 창문을 깨고 들어가도 나중에 건물주가 항의하면 창문값을 물어줘야 하는 현장의 상황. 경찰관을 위한 법은 없을까?


경찰관 직무집행법 제11조의2(손실보상)
1. 국가는 경찰관의 적법한 직무집행으로 인하여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손실을 입은 자에 대하여 정당한 보상을 하여야 한다.


2014년 4월에 경직법 상 손실보상 제도가 명문화되면서, 경찰관이 직무집행 중 발생한 손실에 대한 구제를 받을 길이 열렸다. 2014년에 생긴 법이다. 경찰관이 국가의 보호를 받게 된 게 10년도 되지 않았다는 소리다.


법이 생겼다고 100% 보장받는 건 아니다. 요건에 부합하는지 첨예하게 따져야 하고 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 법이 없었을 땐 100% 보장받지 못했으니까, 앞으로 제도가 더욱 발전하길 바랄 뿐이다.




<극한직업> 공식 스틸컷


<뺑반>에서는 경찰청장이 콧수염을 기르고 나오더니 <극한직업>은 말단 경찰관이 콧수염을 기르고 나온다. 저런 모습으로 서장에게 대면보고 했다간 바로 마약반을 통솔하는 형사과장 혹은 수사과장이 불려 가서 한 소리 들을 게 분명하다. 경찰관에게는 품위유지의무(국가공무원법 제63조, 지방공무원법 제55조)가 있으니까. 그것이... 법이니까.




<극한직업> 공식 스틸컷


유도 국가대표 출신으로 경찰에 입문한 마봉팔 형사(진선규 배우). 아마 무도특채로 경찰에 들어온 듯하다. 무도특채는 형사과에 5년간 의무 복무해야 하기 때문에, 현실과 잘 맞아떨어지는 설정이라 할 수 있다.


경찰청은 다양한 특채 제도를 시행 중인데, 무도특채의 경우 필기시험을 치르지 않고 서류와 자격을 검토 후 면접을 통해 채용한다.


우선 무도 공인기관 3단 이상을 소지해야 하며, 국제대회 입상자 또는 국내 전국대회 우승자만이 지원 자격을 얻는다. 여기서 칭하는 '대회'는 경찰청에서 별도로 정한 기준이 있는데 올림픽, 세계선수권대회, 아시안게임 등이며 자세한 건 경찰청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덧붙여... 마봉팔 형사는 실제로 경찰서에서 꼭 한 명 쯤은 볼 수 있는 얼굴이다. 옷차림도 영화와 비슷하다... 이런 사람은 승진할 때 정복을 입는 게 그렇게 어색할 수 없다. 본인도 쑥스러워하고 동료들도 웃으며 놀린다.




<극한직업> 공식 스틸컷


마약반의 막내인 재훈(공명 배우)은 실제 경찰에 대입해 보았을 때, 우선 수사과나 형사과에선 보기 드문 상이다.


이런 얼굴은 보통 경찰서가 아닌 시도경찰청 단위에서 볼 수 있고, 경무계와 같은 내근직에 다수 분포한다. 나이가 되게 어려 보이는데 시험 승진으로 쭉쭉 올라가서 경사나 경위 계급일 확률이 높다. 가끔 외근 부서에 이런 얼굴이 보인다면 상당히 높은 확률로 경찰대생이며, 외근 부서에서의 의무 복무 기간이 끝나면 어디론가 사라진다.




<극한직업> 공식 스틸컷


이 영화의 핵심은 치킨집이다. 마약반 경찰관들이 잠복하는 과정에서 치킨집을 인수하고, 경찰서에 출근하는 대신 치킨집을 운영하며 맛집으로 소문까지 난다... 실제로도 가능할까? 답은 간단하다.


절대로 불가능


국가공무원법 제64조, 국가공무원 복무규정 제25-26조
: 영리업무의 금지


공무원은 겸직 활동을 정말 엄격히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본인' 명의로 치킨집을 계약한 후 운영까지 한다? 실제였다면 무슨 이유를 붙여도 허용될 수 없는 명백한 위법 행위다. 타인 명의라도 실제로 본인이 운영 행위에 상당한 기여를 하는 걸로 밝혀진다면 역시나 위법!


[경찰관 기강 해이 심각]


[경찰관의 도 넘은 배짱 장사]


[잠복근무 중이라 보고 후 치킨 장사 매진, 경찰청 "관련자 모두 엄중하게 책임 물을 것"]


이런 기사가 쏟아질 게 눈에 훤하다.




이외에도 현실과 맞지 않는 부분은 여럿 있었다. 반장(경위)이 승진했다고 과장이 된다거나. 수사비를 카지노에 쓴다거나. 경찰서장이 마약반을 믿어준다거나(실제로 불신한다는 뜻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짠 내 나는 경찰 외벌이 생활이나, 연금 빼면 아르바이트하는 것보다 적게 버는 현실을 자조적으로 풀어내는 건 너무나도 현실적이어서 많이 슬펐다. 이 영화의 장르가 코미디 맞나요? 르포르타주 아니고요?


그거 아십니까? 경찰관이 퇴직 후 받는 연금은 월급에서 가져간 것에 얼마를 보태주는 것에 가깝다는 걸. '기여금' 명목으로 월급에서 상당히 많은 금액이 공제되는데 이걸 일반 은행 적금으로 부어도 연금보다는 많이 받을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뭐, 이것보다야 많겠지만...). 경찰관 연금은 결국 '내돈내산'이라는 웃픈 현실. 연금법 개정으로 이제는 오히려 낸 돈보다도 적게 가져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그만 알아보자.


대한민국 짭새들 가난한 거 그거 인권 문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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