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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도 Aug 29. 2023

<주토피아>, Try Everything!



※ 본문에는 영화 <주토피아>에 대한 스포일러가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 어디까지나 영화의 만듦새에 대한 평론이 아닌, 영화에서 다루는 ‘경찰’의 모습에 대해 해학적 시각으로 써 내려간 글이니 가볍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주토피아> 공식 스틸컷


굳이 다르게 보이려고 애쓰지 말자




2017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장편애니메이션상을 받은 디즈니 사의 영화 <주토피아>.


누구나 살고 싶은 도시인 주토피아는 초식 동물과 육식 동물이 공존하며 살아가는 중심지다. 경찰관을 꿈꾸는 토끼, 주디 홉스는 부푼 마음을 안고 고향을 떠나 주토피아로 향한다. 각고의 노력 끝에 최초의 토끼 경찰관이 되지만 그에게 돌아오는 건 토끼가 어떻게 경찰관을 할 수 있겠냐는 차별 섞인 시선과 냉소. 


이런 난관을 헤쳐 나가기 위해 주디가 사기꾼 여우인 닉 와일드와 힘을 합쳐 성장해 나가는 디즈니다운 영화다.




<주토피아> 공식 스틸컷


주디가 동료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는 초식 동물이라기보단, 덩치가 작은 '토끼' 경찰관이기 때문이다. 코뿔소도 초식 동물이지만 주디와 같은 차별은 당하지 않으니까. 여기서 질문이 생긴다.


경찰관의 덩치는 무조건 커야 할까?
덩치가 업무 수행 능력을 대변할 수 있을까?




대표적으로 덩치가 큰 경찰관 이미지를 떠올려 보자.


<범죄도시> 공식 스틸컷


많은 분들이 영화 <범죄도시>의 마석도(마동석 배우)를 떠올릴 것이다.

그는 영화에서 대화보단 주먹으로 사건을 해결하며, 범죄자를 주먹 하나로 평정하는 과정에서 관객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하지만 이건 현실과는 아주 동떨어진 얘기다. 그렇게 주먹을 썼다간 바로 파면될 가능성이 높다. 수갑을 세게 채웠다고 독직폭행으로 고소당하는 현실에서 주먹으로 참맛을 보여줄 경찰관이 어디 있단 말인가?


요즘 현장 경찰관들이 악성 민원인이나 피의자에게 어떤 괴롭힘을 당하는지 안다면, 범죄자들에게 곧 경찰서로 같이 가달라고 굽신거리며 부탁해야 하는 시대가 머지않았음을 직감할 것이다.


영화 속 강력한 경찰관 이미지는 흥행 보증 수표지만, 현실의 경찰관은 민원인의 요구에 순종하길 바라는 게 조금은 씁쓸한 현실이다. 


<범죄도시> 공식 스틸컷


지역경찰(파출소, 지구대에 근무하는 경찰을 통칭하는 말)에서 같은 팀에 마석도가 있다면 든든할 순 있다. 시각적인 위압감 정도는 제공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 이상은 무리다.


예전에 정말 마석도와 흡사한 덩치를 가진 후배와 파출소에서 근무한 적 있었는데, 민원인에게 시달리던 그가 토로하듯 말했다.


"경찰 조끼만 입으면 왜 이렇게 시비를 거는 거지? 사복 입고 있을 땐 한 번도 없던 일이 자꾸 생기네."


마석도도 파란색 근무복에 노란색 외근 조끼를 입는다면 한없이 약해지는 게 현실인 것을.


경찰관은 주먹이 아니라 법과 증거로 싸우는 사람이다. 피의자가 고용한 변호사에게 법률이나 전문 지식으로 지지 않아야 한다. 주먹다짐에 그다지 뛰어난 능력이 없어도 괜찮다.


그리고 경찰관 개개인의 헬스 능력보다 중요한 건, 법률이 현장 경찰관을 얼마나 보호하느냐다. 공무집행방해의 처벌 수위가 실질적인 사회생활에 불이익을 끼칠 만큼 강력하다면 주디 홉스가 혼자 현장에 출동해도 관계자들을 제압할 수 있다. 나라에서 보호하는, 국가적인 업무를 집행하는 느낌을 그들에게 줄 수만 있다면 말이다.


미국 경찰은 범죄자를 힘으로 제압하지 않는다. 투항하지 않을 때 거침없이 실탄을 발포할 수 있는 공권력으로 승부할 뿐.




<주토피아> 공식 스틸컷


여담이지만, 같은 팀에 키가 190cm 가까이 되는 선배님이 계신데 나란히 서서 대화하면 이런 느낌이 든다.


<주토피아> 공식 스틸컷


마주 보고 대화할 때는 이런 기분이다.


참고로, 경찰청은 채용 시 키와 몸무게 제한 기준을 2008년에 폐지하였다.

폐지 전 여경은 키 157cm에 몸무게 47kg 이상, 남경은 키 167cm에 몸무게 57kg 이상이 기준이었다.




<주토피아> 공식 스틸컷


개인적으로 영화에서 가장 많이 웃은 장면이다. 바로 공무원인 나무늘보 플래쉬. 그가 딱히 게으름을 피우는 건 아니지만, 나무늘보라는 종의 특성 때문에 기다리는 민원인 속을 새카맣게 태운다.


해외에 나가보면 우리나라 공무원의 행정 처리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를 제대로 알 수 있다고 하는데, 나는 체코에서 이걸 경험해 보았다. 우체국에서 우표를 사는데 1시간 넘게 기다렸기 때문이다.


2018년 체코의 우체국에 방문했을 때 목격한 시스템은 이랬다. 


1. 택배를 보내야 하는 고객이 보낼 물품을 포장해 오지 않았다.

2. 직원 앞에서 물건을 모두 펼쳐놓은 다음 그 자리에서 상자에 포장하기 시작했다(속도가 아주 느린 게 포인트).

3. 직원은 말없이 그 광경을 보고 있다.

4. 뒷사람들은 그 누구도 재촉하지 않고 차례를 기다린다.

5. 택배를 접수하는가 싶더니, 잠자코 보고 있던 직원이 고객에게 규격에 맞지 않는 상자라며 접수를 거부한다(그러면 보고 있을 때 말이나 좀 해주시지).

6. 피드백을 수용한 고객이 새로운 상자를 찾아 나선다.

7. 그가 상자를 찾아올 때까지 모든 업무는 정지 상태.

8. 새로운 상자를 찾아오면 다시 2번부터 반복.


우표 하나 사는데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대한민국 우체국 절대 지켜.




<주토피아> 공식 스틸컷


주토피아의 대표적인 OST는 'Try Everything'이다. 뭐든지 다 해보라는 뜻. 이는 닉 와일드의 '세상이 여우를 믿지 못할 교활한 짐승으로 본다면, 굳이 다르게 보이려고 애쓰지 말자.'는 신념과 정반대다.


비단 경찰관이라는 직업이 아니라, 그 무엇을 도전하든 냉소와 선입견이 뒤따라붙는 상황에서 주디처럼 씩씩하게 이겨낼 수 있을까. 닉처럼 현실에 순응하며 적당히 나쁘게 살아가는 게 편하지 않을까.


디즈니의 영화는 언제나 그렇듯 착한 사람이 결국 사회를 바꾸는 결말로 향해가지만,

우리의 사회는 선의나 순수한 의지가 잘 통하지 않는 복잡한 곳인데...


여러분들이라면.


Try Everything?

Ever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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