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에는 영화 <세븐 데이즈>에 대한 스포일러가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 어디까지나 영화의 만듦새에 대한 평론이 아닌, 영화에서 다루는 ‘경찰’의 모습에 대해 해학적 시각으로 써 내려간 글이니 가볍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혹시 제 변호를 맡아줄 수 있나요?
한국형 스릴러 영화의 수작으로 꼽히는 <세븐 데이즈>. 줄거리는 간단하다.
승률 100%를 자랑하는 변호사 유지연(김윤진 배우)의 딸 은영(이라혜 배우)이 납치된다. 납치범의 요구 조건은 단 하나. 현재 살인죄로 1심에서 사형 판결을 받은 정철진(최무성 배우)의 2심 변호를 맡고 무죄 판결을 이끌어내라는 것. 재판까지 남은 시간은 단 1주일, '세븐 데이즈'.
이 영화는 영화에 대한 작품성은 논외로 하고, 극 중 형사로 등장하는 김성열(박희순 배우)에 대한 설정이 너무 웃기다는 친구의 제보를 받고 보게 되었다.
미국에서도 활발히 활동 중인 김윤진 배우의 작품을 처음 접할 겸, 제보도 확인할 겸, 고르게 된 영화.
형사가 어떻게 표현되길래 그럴까. 나의 기대를 충족시킬 만한가?
웃기다
정말 황당하다
형사 김성열은 변호사 유지연의 친구로 나오는데, 그의 설정은 이렇다.
1. 사건 관계자에게 향응 접대를 받는다.
2. 사건 관계자를 무차별적으로 폭행한다.
3. 일개 형사인 그의 말 한마디에 총기로 무장한 경찰특공대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4. 친구 유지연의 부탁으로 사건 기록과 증거를 빼돌린다.
5. 경찰서에 도무지 출근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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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나라 경찰인가?
성열이 등장할 때 입고 나온 옷이다. 그는 이 옷을 입고 경찰서를 드나든다.
영화에서 '형사'를 단독적인 포지션으로 그리는 경우가 많다 보니, 간혹 나에게 형사는 일반 경찰관과 다르냐는 질문이 들어온다. '형사'란 도대체 뭘까? 아래 조직도를 참고해 보자.
이건 서울강서경찰서의 공식 홈페이지에 게시된 조직도이다. 경찰서의 규모별로 크고 작은 차이는 있지만, 큰 줄기는 비슷하니 이를 예로 들어 설명하겠다.
'형사'란 '형사과'에 소속된 경찰관을 통상적으로 부르는 말이다. 교통과에 있는 경찰관이 형사과로 발령 났다고 해서 공식적인 명칭이 형사로 바뀌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형사과 소속 경찰관이 되는 게 전부.
형사란 경찰 내부의 많고 많은 부서 중 하나일 뿐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결론이 나온다. 형사도 결국 경찰서에 출퇴근하는 직장인이라는 것.
직장인이 이런 옷을 입고 출근하는 게 가능할까? 비단 이 영화뿐만 아니라, 각종 미디어에서는 불량한 형사의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해 과장된 의상을 입히곤 하는데, 그래도 이 의상은 좀 심하지 않나. 경찰서 복도에서 서장은 고사하고 형사과장이라도 마주치지 않기를 기도해야 하는 복장이다.
공무원에겐 품위유지의무가 있음을 잊지 말자.
형사는 밖을 돌아다니는 것보다, 경찰서 내부에서 사건 관계자를 불러 조사받는 일이 더 많다. 이외에도 경찰서에는 잡다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 한가득. 내가 폭행 사건에 연루되어 조사받는데 저런 무대 의상 같은 옷을 입은 형사가 껄렁한 자세로 앉아 있다면 어떤 기분일까? 그것도 말끝마다 욕을 달아가면서.
국민의 눈에서 생각해본다면 결론은 간단하다.
의상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또 하나 짚고 싶은 부분. 이 장면에 나오는 성열의 흰색 티셔츠다.
양복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지만, 이 티셔츠는 가슴 부분에 'cowboy'라는 글자가 대문짝만하게 박혀있다. 영화 제목이 <세븐 데이즈>답게, 그는 '포 데이즈 4 days' 쯤 이 옷을 입고 나온다. 남은 '쓰리 데이즈 3 days'는 위 단락의 현란한 의상 착용.
영화가 진행되면서 언제쯤 카우보이 티셔츠를 벗을까, 물에도 뒹굴고 했으니까 쉰 내가 풀풀 날 것 같은데, 이런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향응 접대를 받는 경찰관이 옷값은 지독하게 아낀다. 옷을 사주는 관계자는 없어서 그런가?
이 영화에서 형사인 성열이 하는 일은 간단하다.
1. 각종 비리에 연루되기
2. 다른 경찰관한테 각종 기록을 찾아오라고 윽박지르면서 욕하기
3. 무차별적으로 폭행하기
4. 피해자를 구해주러 온 119구급대원 집어던지기
5. 사무실에서 종이비행기 접어서 동료 형사한테 꽂기
6. cowboy 티셔츠 고수하기
마찬가지로, 이 영화에서 경찰관이 하는 일도 희미하다.
1. 피해자한테 경찰 관용차량 키 뺏기기
2. 도주하는 피의자에게 순찰차 손괴당하기
증인을 대면하기 위해 병원에 불을 지르거나, 경찰서에서 일은 안 하고 바깥만 돌아다니며 개인행동을 하거나, 감사반 소속 경찰관이 같은 경찰관인 형사를 현행범 체포하듯 추격하는 장면, 형사가 룸살롱에서 뻔뻔스럽게 여성 도우미까지 접대받는 장면은 아무리 2007년 작품이라 해도 감안하기 힘든 부분이었다.
이 영화에서 제일 신기했던 건, 이런 만행을 저지르고 다니는 성열이 '세븐 데이즈'가 지난 이후에도 파면되지 않고 경찰직을 유지한다는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