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에는 영화 <미스터 소크라테스>에 대한 스포일러가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 어디까지나 영화의 만듦새에 대한 평론이 아닌, 영화에서 다루는 ‘경찰’의 모습에 대해 해학적 시각으로 써 내려간 글이니 가볍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꼽으면 너도 형사 해, 이 새끼야!
영화의 줄거리는 다소 황당하다.
조직폭력배로 인간 이하의 생활을 유지하던 구동혁(김래원 배우)은 같은 조직원에게 납치된다. 납치된 그가 도착한 곳은 어느 폐교. 고등학교에서 퇴학 된 이후 공부라곤 해본 적 없는 동혁에게, 스스로 학생 주임임을 자처하는 범표(강신일 배우)가 미션이 준다. 2004년 경찰공무원 순경 공개채용 시험에 합격하라는 것.
왓챠 어플에서 이 영화를 검색하면 '한번 보면 빠져나올 수 없는 콘텐츠 상위 5%'라는 수식어가 달린 걸 볼 수 있다.
빠져나올 수 없다는 영화, 제가 한 번 보겠습니다.
영화 초반, 박 형사(윤서현 배우)가 유흥업소 직원인 동혁의 뺨을 이유 없이 수차례 내려치는 장면이 나온다. 업소에서 행패를 부리던 손님에게 거침없이 주먹을 날리던 동혁은 정작 형사의 폭행 앞에서 무력하기만 하다. 여기서 나오는 대사.
꼽으면 너도 형사 해, 이 새끼야!
그 말을 들은 동혁이 작게 중얼거린다.
형사 아무나 하나
사람 때리려고 형사 생활을 하는 것만 같은 박 형사의 일정은 영화의 줄거리만큼이나 황당하다.
다짜고짜 누군가의 집에 쳐들어가서 사람을 폭행하고 살기를 뿜어내며 총을 겨눈다. 아무리 2005년 영화라 해도 말이 되지 않는 설정. 심지어 극 중 박 형사의 계급은 경장이다.
유독 영화나 드라마에서 행패를 부리는 경찰관의 계급이 '경장'으로 나오는데 이유가 정말 궁금하다. 순경 다음일 뿐인, 경찰 계급이 총 11개니까 사실상 10급 공무원이라고 할 수 있는 경장 계급에게 왜 그렇게 막대한 힘을 부여하는 걸까?
미디어에서 표현되는 경찰관이 경찰대 출신일 경우 지나치게 계급이 높고, 일반 순경 출신일 경우 지나치게 계급이 낮다.
평범한 조폭/형사물에 그칠 수 있는 이 영화가 괜찮은 오락 영화로 자리 잡은 이유는, 주연인 김래원 배우의 역량인 것 같다.
영화를 보면서 제일 많이 한 생각, "이 사람은 도대체 몇 살이야?"
말단 순경으로 보였다가, 형사 반장인 신 반장(이종혁 배우)와 동년배로 보였다가, 어쩔 땐 신 반장보다 훨씬 많아 보였다가, 좀처럼 가늠할 수 없는 신상 정보. 그로 인해 캐릭터가 뻔한 틀에서부터 벗어나는 느낌.
김래원 배우는 81년생이니 2005년 이 영화가 개봉했을 당시엔 24세. 순경에 적합한 나이, 오히려 군필 조건이 붙은 남경에겐 이른 나이지만 형사과장과 맞먹는 분위기를 풍긴다.
역시나 젊은 시절의 이종혁 배우도 볼 수 있는데, <아빠! 어디가?>에 출연했을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꽃미남인 모습에 거듭 충격받음.
아주 날것 그대로인 박성웅 배우의 모습도 볼 수 있답니다. 영화 <신세계> 속 이중구와는 아주 다른, 하이톤의 야비한 목소리까지 장착!
법은 완벽한데 법을 집행하는 놈들이 문제지
영화 제목에 '소크라테스'가 들어가서 그런지는 몰라도,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는 꽤 철학적이다.
정말 법보다 주먹이 빠른가?
소시민들이 법의 힘을 빌리기에, 법은 너무 멀지 않은가?
공익 목적을 위해서라면 사람을 죽여도 되는가?
그리고,
악법도 법이다?
위 논제는 대학교에서 철학을 배울 때도, 경찰공무원 면접을 준비할 때도 단골로 등장한다.
순자가 주장한 성악설은 '인간은 악하다'에서 끝나지 않는다. 순자는 인간이란 존재가 타고나기를 악하다고 보았고, 그렇기 때문에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악한 씨앗을 끝없는 교육으로 마침내 선하게 바꿀 수 있다는 믿음. 그것이 순자가 주장한 성악설의 핵심이다.
악법도 법이라고 주장하는 이 영화는 형법과 형사소송법상 절차를 무시하고 독직폭행과 협박, 살인, 갑질을 일삼지만, 현실과는 많이 다르다. 적어도 경찰관이 이러지는 않는다. 이럴 수도 없고!
영화에서 묘사되는 악인의 모습은 꽤나 비슷할지도. 특히 종종 등장하는 주취자는 정말 현장에서 캐스팅한 것처럼 생생한 연기를 보여준다.
실제 경찰 생활을 해보니 목소리 큰 놈이, 힘센 놈이 법처럼 느껴질 때가 많지만, 법은 멀고 주먹은 너무나도 가깝지만... 아아, 정말이지 이런 소리가 저절로 나온다.
형사 아무나 하나.
이 영화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동혁의 맷집이다.
경찰관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어쩌면 '맷집'이 아닐까?
갑질 마왕 민원인에게 맞서 비굴해지지 않을 맷집.
공권력이 짓밟힌 현장에서 뒷걸음치지 않을 맷집.
황당한 민원이 들어오고, 상급 부서에서 민원만 유야무야 넘기기 위해 더욱 황당한 지시를 해도 굴하지 않을 맷집.
내부적으로나 외부적으로나, 당해낼 재간이 없는 그의 맷집이 참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