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에는 영화 <마파도>에 대한 스포일러가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 어디까지나 영화의 만듦새에 대한 평론이 아닌, 영화에서 다루는 ‘경찰’의 모습에 대해 해학적 시각으로 써 내려간 글이니 가볍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세상 재미로만 살 거면 벌써 죽었다
나충수(이문식 배우)는 유흥업소 사장에게 단속 정보를 팔아넘긴 대가로 뇌물을 받으며 생활하는 부패 형사다. 그는, 다방을 운영하는 신 사장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다방 접객원으로 일하던 장미(서영희 배우)가 1등에 당첨된 로또 종이를 가지고 잠적했다는 것. 당첨금은 무려 160억! 장미가 훔쳐 달아난 로또 종이를 되찾아 주면 30억을 주겠다는 거래였다.
그렇게 나충수와, 신 사장의 부하인 조폭 엄재철(이정진 배우)이 함께 장미에 대한 단서를 찾던 중, 우연히 장미의 고향이 '마파도'라는 걸 알게 되고 낚시꾼으로 위장하여 마파도에 잠입한다.
두 사람은 장미와 160억을 찾을 수 있을까?
육지에서, 충수는 부패 형사였다. 도박장이나 유흥업소를 수금하듯 돌아다니고, 단속 정보를 미리 넘겨준 대가로 두둑한 현금을 챙긴다.
그는 과연 '형사'일까?
지난 <세븐 데이즈> 리뷰 때도 사용했던 서울강서경찰서 조직도다.
이 조직도에서 '형사과'에 소속된 팀원을 보통 '형사'라 통칭한다.
하지만 <마파도> 속 충수는 도박장과 유흥업소를 단속하고 있으니, 이는 '생활안전과' 소속 '생활질서계' 업무다. 도박, 유흥업소, 성매매 등을 '풍속영업'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풍속 단속' 업무를 행하는 곳은 생활질서계다.
보통의 경찰관은 생활질서계 소속 직원에게 형사라고 부르지 않는다.
영화 속 형사들의 업무분장은 언제나, 너무 넓다.
형사 사이에는 '만사형통'이라는 말이 있다.
사전적 의미가 아니라, '모든 업무는 형사를 통한다'는 자조 섞인 말이다.
'키보드로 사람을 때리면 사이버 업무'라고 자조하는 사이버수사대원의 푸념과 일맥상통한다.
실종 업무도, 데이트폭력도, 하여튼 뭔가 사람이 필요한 업무는 일단 형사과에 배정하고 보는 게 경찰청의 유구한 업무 분장 방식.
경찰 2900명 현장으로…범죄예방·대응 중심 조직 재편 ::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 (newsis.com)
2023년 9월 18일.
윤희근 경찰청장은 대규모 경찰청 인력 개편을 단행하면서 '형사기동대'라는 순찰팀을 만들겠다고 공표했다.
만사형통.
어쨌든 치안 수요가 늘어나니까 이런 건 형사가 해야지.
담당 행정기관이 있지만 어쨌거나 질서 유지에 포함되니까 경찰이 해야지.
아, 주민들이 불안하다니까 경찰청이 참여해야지.
아무튼 모든 업무는 경찰이 하고, 모든 경찰관을 무한 책임 형사로 만들어 놓고서
그에 대한 업무 현장의 현실이나 아우성, 절규는 희미해진 업무분장처럼 갈 곳이 없다.
세상 재미로만 살 거였으면 진즉 죽었다지만
직장 다니는 재미도 어느 정도는 있어야 할 텐데...
2005년에 개봉한 만큼, 이 영화는 촌스러운 구석이 많다. 시간이 지나서 그랬다기보다는 주인공 5명이 모두 '할매'로 표방되니까 일부러 촌스럽게 만들었을 거다.
그럼에도, 한 사람이 늙었다고 그 속에 지닌 이야기가 녹슬지는 않는 것처럼, 영화 곳곳에 인생사를 논하는 대사는 관객의 허를 찔렀다. 어떤 장면에서는 쟁기로, 다른 장면에서는 낫으로, 쿡. 쿡.
인생사 별거냐? 고무신 밑창에 붙은 껌 같은 것이여. 찐득찐득허니
부패 형사(형사과 소속은 아니지만) 충수도, 160억을 좇아 온 모든 이들의 인생사도 결국, 딱히 빛은 못 보고 찐득하기만 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