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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영화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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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mille Nov 17. 2024

영화<오아시스>비평

짧았던 두 사람만의 화양연화

오아시스가 만들어 내는 환상
출처: 왓챠피디아

개인적으로 이창동 감독을 굉장히 좋아한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플롯. 정석적인 플롯에서 벗어나지 않지만 탄탄하다.

기본기가 아주 탄탄한 감독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이 영화는 다르다.


영화의 내용은 단순하다. 교도소에서 갓 출소한 철부지 종두가 뇌병변 장애인 공주와 사랑에 빠지는 내용.

종국엔 종두가 강간범으로 오해받고 다시 교도소로 들어가고 끝난다.

이 영화엔 플롯이 없다. 하지만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강렬하다.

마치 화양연화 같다. 그리고 영화 화양연화처럼 두 사람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한다.


극 중 공주는 나뭇가지 그림자를 두려워한다.

그 그림자가 가리고 있는 그림의 이름은 오아시스다.

사막의 오아시스 하면 떠오르는 현상이 있다. 바로 신기루다.

공주는 오아시스를 가리고 있는 그림자, 즉, 신기루를 두려워하며 이는 극 중 공주의 상황과 연결된다.

공주네 가족은 공주를 위해 마련된 아파트로 이사하며 공주를 두고 간다.

간간이 찾아가는 등 완전 공주를 버리진 않았지만 그래도 공주가 느낄 외로움은 고려하지 않은 선택이다.

공주는 홀로 버려지는 것에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종두가 나타난다.


종두와 공주는 사랑에 빠진다. 도움 없이 외출할 수 없는 공주를 데리고 외출하기도 하며,

가족들에게 인사를 시켜주고

함께 노래방을 간다.

종두는 공주를 장애인이 아닌 평범한 한 여자로서 사랑해 준다.

그러나 두 사람의 사랑은 세상의 이해를 받지 못한다.


종두의 가족은 종두가 공주를 만나는 걸 이해하지 못한다.

공주의 가족도 마찬가지다. 종두를 만나기 껄끄러워한다.

그도 그럴 것이 종두는 2년 전 뺑소니 사고로 그들의 형제를 죽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모순적이다. 세상 사람들은 종두와 공주를 이해하지 못하며 배척한다.

심지어 극 후반 합의하에 맺은 성관계 역시 종두를 일방적인 강간범으로 취급하여 수감시킨다.

그러나 종두와 공주의 가족은 어떤가?

뺑소니를 낸 건 종두가 아닌 종두의 형이었다.

종두는 형의 죄를 뒤집어쓰고 대신 감옥에 다녀왔지만 종두의 형은 종두를 혼내기 바쁘다.


공주의 가족은 공주 명의로 된 아파트에 산다.

그 아파트는 장애인을 위한 복지의 일환으로 지급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공주가 필요할 때만 잠시 집으로 공주를 데려온다.

그들이 필요할 때를 제외하고, 공주는 홀로 차가운 세상에 홀로 버려진 채 살아간다.


세상이 버린 두 사람은 서로 사랑에 빠진다.

다른 연인처럼 함께 데이트를 즐기고

비록 문전박대를 당하긴 했지만 식당에도 간다.

종두 가족 잔치에 문전박대를 당한 날 두 사람은 함께 잠자리를 갖지만

두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는 세상의 편견에 결국 종두는 강간범이란 누명을 쓴다.

이렇게 두 사람의 화양연화는 끝이 난다.

세상에서 버려진 두 사람의 사랑 역시 오아시스의 신기루 같았던 것이다.


결말부에 종두는 경찰서를 탈출해 공주의 집으로 향한다.

그러나 목적은 공주를 만나는 게 아니었다.

종두는 공주가 무서워하는 나뭇가지 그림자를 없애주기 위해 손수 가지를 친다.

과업을 마친 종두는 다시 땅바닥으로 떨어져 순순히 감옥으로 들어간다.


이 영화는 플롯이 없다. 종두와 공주가 만나고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를 그릴뿐이다.

그럼에도 아름답다.

(극 초반부 종두가 공주를 강간하려다 미수에 그친 일은 논란이 될 법하다.)

화양연화라는 말이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다.

화양연화는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라는 뜻이다.

종두는 공주를 만남으로, 공주는 종두를 만남으로 그렇게 인생의 한 페이지를 화양연화로 장식했다.


자신을 위해 빨래를 해주고 머리를 감겨주던 종두가 떠나고, 공주는 스스로 집을 청소하기 시작한다.

남의 도움 없이 생활할 수 없던 공주가 스스로 무언가를 하게 된 것이다.

신기루와 라디오의 공허한 목소리만 들리던 집을 스스로 청소하는 장면은 많은 생각을 남기게 만든다.

종두는 떠났지만, 공주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그리고 다시 돌아올 종두를 기다리기 시작한다.

먼지 쌓인 방을 청소하며 살아갈 의지를 다진다.

공주에게 종두는 삶의 의미가 되었다.

그리고 종두에게도 공주는 삶의 의미가 되었다.


오아시스의 신기루 같았던 두 사람의 화양연화는 막을 내렸지만

언젠가 찾아올 재회의 순간을 위해 공주는 삶을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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