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athos Oct 04. 2024

선생님의 수업을 본다는 것은?

두 달 동안 선생님들의 수업공개가 있었습니다. 저는 출장 등의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선생님들의 수업을 참관하였습니다. 평소 교과 전문가인 선생님들의 수업을 50분 내내 참관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하지만 학교장으로서 교육계획에 의거 공식적으로 교실에 들어가 선생님과 학생들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저 또한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달음을 얻은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수업을 참관하는 동료 선생님은 참관록을 작성하여 수업평가회에 참가합니다. 저는 참관록 대신 모든 수업공개가 끝난 오늘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교장입니다.


드디어 본교 선생님들의 수업공개가 모두 끝났습니다. 공개수업하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마 동료와 교감, 교장에게 50분의 수업을 공개한다는 것에 많은 불편함을 느끼셨을 겁니다. 교사와 학생만의 공간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준다는 사실은 쉽지 않습니다. 특히 교장보다 교직 선배인 선생님들은 더욱 불편하셨을 겁니다.


의사와 변호사는 항상 자신이 하는 일을 주변에 공개하는데 왜 교사는 공개하지 않느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의사는 공개적으로 수술을 하고, 변호사도 법정에서 공개적으로 변호를 하는데 왜 교사는 교실 수업을 공개하지 않느냐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주장입니다. 의사와 변호사가 환자와 법정의 참관인들에게 공개하듯이 교사 또한 교실에서 학생들에게 가르침의 행위를 항상 공개하고 있습니다. 또한 많은 학교가 주기적으로 동료교사와 학부모에게 수업을 공개하고 있습니다.

당연하지만 교사의 가르치는 행위는 의사, 변호사와 다릅니다. 의사와 변호사는 환자와 의뢰인의 관계에서 업무가 이루어지는 반면, 수업은 한 명의 교사가 많게는 35명 적게는 25명의 다수의 학생과 교육이 이루어지는 행위입니다. 교사의 가르침은 단지 지식만 전달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지적 수준을 넘어 학생 한 명 한 명의 정서와 감정을 살펴야 하는 고도로 숙달된 행위, 교과서 내용뿐만 아니라 교사의 경험과 사례, 감정을 함께 전달해야 하는 행위입니다.


선생님,

어찌 모든 수업을 피 토하는 심정과 열정으로 임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학교장으로서 수업 시간 학생에게 삼인교육'을 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삼인(三人) 교육은 인성(人性) 교육, 인생(人生) 교육, 인간(人間) 교육을 말합니다. 아무리 공부를 잘하여 좋은 대학에 가더라도 인성이 좋지 않으면 사회에서 인정받기 힘듭니다. 반면 공부를 못한 학생이더라도 인성이 훌륭하면 결국 주변에서 인정받아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각 교과 특성에 맞는 인성교육을 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인생교육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선생님이 살아온 삶의 궤적에서 나오는 인생의 지혜를 아이들에게 가르쳐주십시오. 아이들은 교과서 내용보다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잠깐잠깐 들려주는 인생에 대한 이야기가 더욱 기억에 남습니다. 저 또한 고등학교 시절 수업시간에 해주었던 선생님의 인생 이야기에 감동받아 지금 이 자리까지 왔습니다.

인간교육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과학기술이 고도로 발달된 인공지능과 제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우리 학생들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인간의 존엄성과 인간다움에 대한 교육이 절실합니다. 자기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학생, 타인의 삶과 공동체의 발전에 관심 갖는 학생, 인간과 생태계의 공존을 위해 실천하는 학생이 되도록 가르쳐주십시오.  


가을입니다.

온종일 각기 다른 색과 빛을 내는 아이들을 만나는 수업이 결코 쉽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힘든 수업과 행정업무로 여유롭게 커피 한 잔 마실 틈이 없지만

창밖을 보며 짧게 스쳐 지나갈 이 가을의 충만함을 충분히 만끽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

매거진의 이전글 아름다운 퇴임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