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도무지 풀리지 않는 난제와 마주하게 될 때가 있다. 그중에서 아직까지 내 머릿속에 맴도는 의문이 하나 있다. “왜 신은 선한 사람을 먼저 데려가는가?”라는 질문이다. 나는 가끔 평생을 자신의 이익보다 타인을 위해 헌신하며 산 사람들은 너무나도 일찍 우리 곁을 떠나는데, 왜 세상을 어지럽히고 타인에게 고통을 주는 이들은 야속할 만큼 건강하게 오래 살까?라는 생각한 적이 있다. 그래서 나는 이 부조리한 이별의 순서 앞에서 무력감을 느끼고, 신의 공평함에 대해 깊은 의문을 품게 된다.
고려대학교 앞에서 주머니 가벼운 학생들을 위해 단돈 천 원짜리 버거를 팔아온 ‘영철버거’의 이영철 사장님이 향년 57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단순히 햄버거를 파는 상인이 아니었다. 배고픈 청춘들의 끼니를 챙기는 아버지였고, 자신의 수익을 털어 장학금을 내놓는 진정한 스승이었다. 그런데 왜 신은 이토록 따뜻한 심장을 가진 이를, 아직 세상에 더 많은 온기가 필요한 이 시점에 거두어 가신 것일까? 나에게도 이와 비슷한 상실의 기억이 있다. 가족 중 더없이 선하고 맑았던 분을 너무나 이른 나이에 떠나보내야 했던 기억이다. 그때마다 나는 남겨진 자의 슬픔에 갇혀 하늘을 원망하곤 했다.
어쩌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신(神)의 눈에는 견디기 힘든 ‘고행의 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인간의 관점에서 죽음은 상실이고 끝이지만, 신의 관점에서 죽음은 귀환이자 휴식일 수 있다. 신은 이 척박하고 경쟁이 치열한 세상, 선한 마음만으로는 상처받기 쉬운 어찌보면 ‘지옥’ 같은 현실에서,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가 더 이상 고생하지 않기를 바랐던 것은 아닐까. “이제 충분하다. 너는 할 만큼 했다. 더 이상 아프지 말고 내 곁으로 와서 참된 안식을 누려라!”
이렇게 생각하면, 선한 사람들의 이른 죽음은 벌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반대로 악인들이 이 땅에 오래 머무는 이유는, 그들에게는 아직 이곳에서 치러야 할 죗값이 남아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욕심이 만든 감옥에서 고통을 겪으며 깨달음을 얻으라는 신이 내린 집행유예 기간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나 스스로를 이해시키기 위해 만들어낸 서툰 해석이다. 하지만 나는 이 서툰 해석이 가끔 진실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래야만 평생을 베풀다 가신 이영철 사장님의 삶이, 그리고 내 곁을 떠난 그리운 가족의 마지막이 ‘고통’이 아닌 ‘평안과 안식’'으로 기억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