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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말구 Sep 04. 2020

[서평] 한 개인과 한 국가 사이에 얽힌 운명

살만 루슈디, 『한밤의 아이들』

  중고등학교 시절, 국사나 근현대사 과목을 공부하며 연표를 외우고, 여러 사건의 발생과 그 의미를 외웠던 기억들이 있으실 것입니다. 그걸 하나하나 암기하는 것이 참 고역으로 느껴지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면서 정확한 의미를 모른 채 그저 암기하고 넘어가는 것들도 있기 마련이었고요. 또한 굵직굵직한 사건을 토대로 배우니, 역사적으로 중요 인물들에 대해서만 내용이 집중되기도 합니다. 중고등학교에서 역사공부를 하며 실제 그 역사를 살았던 백성과 민중의 현실을 마주하기란 한계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럴 때 도움이 되는 것은 당시 그 시대를 그리고 있는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개인적인 체험으로는 중고등학생 시절 읽었던 조정래 선생의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과 같은 소설이 떠오릅니다. 저는 이 기나긴 소설을 읽으며 한국 근현대사를 말 그대로 체화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이 기억납니다. 지금 제가 지닌 한국 근현대사에 관한 역사관을 정립하는 밑거름이 되기도 했고요.

  이뿐이겠습니까. 역사를 바탕으로 한 소설들이 교과서에 나온 내용보다 훨씬 실감 나게 다가오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역사적 사건과 소설의 극적인 장치들이 어우러져 그 시대와 그 시대를 살던 많은 사람들의 삶이 입체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일 것입니다.

  특히 근대에 이르러서는 시대상을 반영하는 걸작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주 짧게, 훑어봐도 한둘이 아닙니다. 러시아의 톨스토이, 토스토예프스키, 중국의 루쉰, 다이허우잉, 영국의 찰스 디킨스, 조지 오웰, 미국의 헤밍웨이, 피츠제럴드, 독일의 귄터 그라스, 콜롬비아의 가브리엘 마르케스 등등 수없이 많은 내로라하는 작가들은 각 나라의 당시 시대상과 유산을 토대로 소설을 만들었지요. 각 나라의 다양한 소설을 통해 우리는 그 나라들의 당시 시대상과 사람들의 지녔던 의식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중 오늘 함께 나눌 책은 인도의 독립과 그 이후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살만 루슈디의 『한밤의 아이들』입니다.


  1947년 8월 15일 인도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합니다. 『한밤의 아이들』 저자 살만 루슈디는 독립 두 달 전인 1947년 6월에 인도 봄베이의 한 무슬림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변호사인 아버지와 교사인 어머니 밑에서 유복한 생활을 했던 루슈디는 영국으로 건너가 대학생활을 합니다. 그는 역사학을 전공했습니다. 그가 영국에서 수학할 무렵 루슈디의 가족은 파키스탄으로 이주했습니다. 당시 힌두교와 무슬림 사이에 있던 긴장은 두 나라를 갈라놓았고, 무슬림은 파키스탄으로, 힌두교는 인도에 남았습니다. 그 이후로도 오늘날까지 인도, 파키스탄 사이에는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잘 아실 것입니다.  

  루슈디는 당시 인도-파키스탄 전쟁이라는 참상을 목격하고 충격을 받습니다. 그는 영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돌아와 파키스탄에 자리를 잡습니다. 그러나 파키스탄에서의 생활에 어려움과 환멸을 느껴 다시 영국으로 돌아갑니다. 이때부터 그는 작품 활동을 시작합니다. 그는 1975년 첫 장편 『그리머스』를 출간했으나 큰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의 두 번째 작품인 『한밤의 아이들』은 1981년에 출간되는데, 이 작품은 당시 각종 문학상을 휩쓸어버립니다. 이때 그는 『한밤의 아이들』로 ‘부커’상을 받고, 1993년엔 ‘부커 오브 부커스’상을 받습니다. 2008년엔 부커상 40주년을 기념한 ‘베스트 오브 더 부커’상을 받습니다.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부커상을 세 번이나 수상한 작품은 『한밤의 아이들』뿐입니다.


  『한밤의 아이들』은 1915년부터 1978년까지, 인도의 독립 이전과 독립, 그리고 이후 독재정권이 무너질 때까지의 인도 현대사를 배경으로 합니다. 주인공 살람 시나이의 가족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던 날인 1947년 8월 15일. 이날 태어난 천명의 아이들이 있습니다. 그중 1947년 8월 15일 자정 정각에 태어난 살림 시나이는 특별한 능력을 갖습니다. 신생 독립국 인도와 함께할 운명을 타고나기도 했고요. 그리고 독립하는 날 자정 12시부터 새벽 1시 사이에 천명의 아이들이 탄생합니다. 그들은 모두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자정에 가까이 태어난 아이일수록 더 비범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중 가장 특별한 능력을 지닌 주인공 살림 시나이가 성장하면서 겪는 많은 일들이 인도의 역사적 사건들과 얽혀 일어납니다. 아이가 성장할 때 성장통을 겪듯 주인공 살림 시나이도, 새로 독립한 인도도 많은 혼란스러움과 어려움 속에서도 성장해 나갑니다.

인도의 정치적 지도자였던 자와할랄 네루와 마하트마 간디

  소설 『한밤의 아이들』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특징은 ‘마술적 리얼리즘’, 혹은 ‘마술적 사실주의’라는 독특한 기법입니다. 소설이 현실과 실제를 토대로 전개가 되지만 온갖 기이한 일들, 은유와 상징이 가득한 표현들이 사용됩니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인과관계가 적용되지 않습니다. ‘마술적 리얼리티’의 대표작으로는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천년 동안의 고독』, 귄터 그라스의 『양철북』같은 작품이 있지요. 사실 이러한 마술적 사실주의 기법의 소설을 읽는다는 건 마냥 쉽지만은 않습니다. 작품 곳곳에 녹아있는 은유와 상징을 포착해가며 읽을 필요가 있기 때문에 적지 않은 집중력을 요합니다. 하지만 이를 통해 작품이 더 빛나고, 작가의 놀라운 표현력, 상상력, 다채로운 묘사를 만끽할 수 있습니다. ‘마술적 리얼리즘’을 글쓰기의 마지막 관문이라 말하는 것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마술적 리얼리즘은 『해리포터』나 『반지의 제왕』 같은 환상문학, 판타지 문학과는 구별됩니다.


  소설 『한밤의 아이들』에서는 신생 독립국의 인도의 불안정함, 내부의 갈등, 여러 어려움 같은 것들이 주인공 살림 시나이의 개인적 삶과 맞물려 일어납니다. 독립일 자정에 태어난 살림 시나이가 독립국 인도와 운명의 궤도를 함께한다는 것이 이 소설의 특징이지요. 살림 시나이는 서른이 넘어 과거를 회상하고, 그것을 기록하며 이야기를 전개해 나갑니다. 소설의 시작은 살림 시나이가 태어나기 전, 영국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전 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살림 시나이는 자신의 조상에 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자신이 성장하면서 겪은 인도 독립의 과정, 이후 여러 갈등에 대해 서술해 나갑니다. 살림 시나이는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설명하며 다음과 같은 말을 자주 합니다.


  “한 사람의 인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계를 통째로 삼켜야만 한다.”


  그리고는 이 의미를 다음과 같이 정리합니다.


  “나는 나보다 앞서 일어났던 모든 일, 내가 겪고 보고 행한 모든 일, 그리고 내가 당한 모든 일의 총합이다. 나는 이 세상에 존재함으로써 나에게 영향을 주거나 나의 영향을 받은 모든 사람이고 사건이다. 나는 내가 태어났기 때문에 일어난 모든 일이며 내가 죽은 뒤에도 나 때문에 일어날 모든 일이다. … 나를 이해하려면 세계를 통째로 삼켜야 한다.” 2권 302~303쪽.


  각 개인의 삶은 세계와, 사회와 연결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됩니다. 우리는 가끔 착각할 때가 있습니다. 개인과 세계(혹은 사회)를 떼어놓고 생각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모든 것이 내 개인의 영역에서 자신이 선택한 것이고, 자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 삶이 결정된다고 생각할 때가 그렇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어떠한 방식이든 간에 세계와 사회와 관계를 맺습니다. 내가 누구로부터 태어났고, 어떠한 문화 안에서 성장했고, 어떤 인물과 영향을 주고받았는지 등, 사회적 맥락과 자신이 처한 상황, 자신이 받은 유산에 따라 개인의 삶은 세계와 관계 맺을 수밖에 없습니다.

  잘난 사람이건 못난 사람이건 온전히 자기 자신만의 개인 능력만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자신을 둘러싼 세계가 어떤 세계였고, 현재 어떤 세계인지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는 자기 자신을 규정할 수가 없습니다. 오로지 개인만의 선택이 모든 것의 결과가 된다는 생각은 자신을 고립시키는 위험한 행동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세계를 알고, 사회를 알고서 자신을 알아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카슈미르를 둘러싼  인도와 파키스탄의 갈등

  이처럼 소설에서는 살림 시나이를 둘러싼 세계가 나옵니다. 독립 전후의 인도는 어수선한 사회분위기였습니다. 서구문화가 인도 사회에 흘러 들어오는 격변기, 무슬림과 힌두교 사이의 갈등, 자본주의, 공산주의와 같은 이념의 갈등, 힌두교 내부의 계급 간의 갈등, 남성과 여성의 지위와 역할 등에 대한 인식 변화, 인도와 파키스탄 사이의 내전으로 인한 폭력과 갈등, 사회 지도자들 사이의 권력을 둘러싼 갈등, 사회 지도자의 독재와 폭정 등이 있습니다.

  이와 같은 인도 독립 전, 후를 둘러싼 많은 일들과 함께 주인공 살림 시나이는 성장해나갑니다. 그런 와중에 그는 자신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너무 늦어버릴 때까지 끊임없이 나의 ‘존재 이유’에 대한 의문에 시달릴 운명이었다.” 1권 353쪽.


  살림 시나이는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 이유’를 묻습니다. 자신의 삶의 목적과 이유, 그리고 의미에 대해서 말입니다. 불안정하고, 불안한 사회일수록 삶의 목적과 의미에 대해 더 깊이 성찰하게 되는 것일까요?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사회가 안정되었건 불안정하든, 개인의 삶이 안정되었건 불안정하든 자신의 존재 목적과 의미에 대해 스스로 묻습니다. 이 질문은 사유하는 인간에게는 누구나 던져지는 질문이지만 그렇다고 쉬이 나올 수 있는 답은 아닙니다. 주인공 살림 시나이 역시 소설을 끝낼 때까지 이 질문을 던집니다. 그럼에도 답이 나오진 않습니다. 주인공 역시 그저 역사와 개인의 운명이 함께 열차에 올라탄 채 흘러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그저 주어진 상황 안에서 자기 자신에 대해서, 자신을 둘러싼 역사에 대해서 기록하는 데 몰두합니다.


  살만 루슈디의 『한밤의 아이들』을 읽으면 역사 안에 던져진 인간 존재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인간은 개인의 삶을 둘러싼 수없이 많은 사건들에 의해 휘말리고, 휩쓸리면서도 또 그에 대항하여 승리하려고도 하죠. 여기서 제가 포착한 가장 의미 있는 부분은 주인공 살림 시나이가 자신의 자아를 놓치지 않으려 하는 부분입니다. 역사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고, 때론 역사에 휩쓸려 자아를 잃었다가도 그 의미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되돌아봅니다.

  앞서 역사와 세계 의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인간 개인에 대해 말씀드렸지만, 동시에 그러한 세계 안에서 자기 자신을 찾는 과정이야말로 개인을 존재하게끔 해준다는 걸 기억하게 됩니다. 그저 역사와 사건에 휩쓸리는 것이 아니라, 그 소용돌이 안에서 자기 자신을 지키고 성장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를 이 소설을 통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나눈 『한밤의 아이들』은 문학동네에서 출판되고, 김진준이 번역한 책입니다. 작가 살만 루슈디의 세밀하고 다채로운 표현과 묘사가 번역을 통해 잘 전달되는 느낌을 받습니다. 또한 한 문장이 2,3페이지에 이르는 경우들이 있는데 주술 관계나 연결이 매끄럽고, 어색하지 않게 느껴집니다. 번역 또한 이 책의 백미 중 하나입니다.

  역사 안에서 한 개인의 의미, 존재의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살만 루슈디의 『한밤의 아이들』입니다. 뿐만 아니라 다소 생소할 수 있는 인도 근현대사를 알아가며 우리나라 근현대사와 닮은 점을 발견하는 것도 하나의 재미입니다. 거대한 역사의 톱니바퀴 안에서 한 개인의 삶의 의미는 무엇인지, 각 개인 간에 관계는 어떠한 의미인지, 개인과 역사(사회)는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 되돌아보게 해주는 책, 살만 루슈디의 『한밤의 아이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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