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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말구 Aug 26. 2020

[서평] 한일 양국의 평화를 위한 실마리

이영채, 한홍구, 『한일 우익 근대사 완전정복』

  2019년 7월, 일본은 자국 수출관리 규정을 개정했습니다.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공정의 재료인 불화수소, 포토레지스트, 애칭가스, 이 3대 품목을 한국에 수출하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일종의 무역 분쟁의 선전포고였지요. 일본은 수출 금지 이유에 대해 제품들에 대한 안전 보장 때문이라고 표명했습니다. 하지만 일본의 주장을 곧이곧대로 듣기엔 석연찮은 부분들이 많았습니다. 

  지난 2018년 한국 대법원은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따라 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주식회사)에게 자산 강제 환수를 결정했습니다. 일본은 즉각 배상 판결에 반발했습니다.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받아들이면 일제 강점기 강제징용을 인정하는 꼴이니까요. 한편으론 한반도 정세도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남한과 북한의 정상이 서로 만나고 미국의 입장도 호의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엔 마땅히 일본이 낄 자리가 없었습니다. 동아시아 맹주로 자부하던 일본은 자신들이 고립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2019년 6월 30일,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오사카 G20 정상회의를 마치고 곧바로 판문점으로 가서 김정은을 만납니다. 그러자 바로 그다음 달, 2019년 7월에 일본은 한국에 대해 수출 규제를 단행했습니다.

  당시 한국의 언론은 크게 두 갈래로 나눠졌습니다. 하나는 일본이 수출규제를 단행해서 우리나라 산업기간이 다 무너질 것이라는 부정적인 견해와 다른 하나는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한국은 스스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아예 이번 기회에 일본에 대한 소재 의존도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말입니다. 

  1년이 지난 지금. 한국 반도체 공정의 소재인 3대 품목은 국산화되었습니다. 오히려 본래 그것을 만들던 일본의 기업들이 어려움에 처했다는 소식도 언론을 통해 전해집니다. 한국 반도체 산업이 약하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준 꼴이 된 것이지요. 뿐만 아니라 일본 상품 불매운동이 불붙어 국내 일본 상품들의 매출은 현격히 떨어졌습니다. 물론 이로 인해 한일 간 국민들 사이에 서로에 대한 적대감도 늘어났습니다. 정치, 경제 영역에서의 분쟁은 양 국가 국민들에게도 상당히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했습니다.

  한국과 일본 사이엔 오랜 역사 안에서 깊게 파인 감정의 골이 쉽게 매워지지가 않습니다. 식민지배에 대한 제대로 된 사과조차 한 번도 없는 꼴이니 대화를 시작하기조차 어렵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가까운 나라 일본과 원하던, 원치 않든 간에 여러 가지 교류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오랜 역사 안에서 그래 왔고, 미래에도 그럴 수밖에 없으리라 생각됩니다. 지리적 요건 상 인적교류, 문화교류는 말할 것도 없고 동북아 정세 안에서 한국과 일본은 마주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국 간에 여태껏 얽혀왔던 실타래를 조금씩이나마 풀어나가야 한다는 사실은 크게 부정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 함께 나눌 책은 한국과 일본 양국의 갈등이 날로 심해져만 가는 이때에 우리가 어떤 생각과 마음으로 일본을 대할 것인지 안내해 주는 『한일 우익 근대사 완전정복』이라는 책입니다. 


  저자 이영채 교수는 일본 게이센여학원대 국제사회학과 교수입니다. 저자는 책의 머리말에서 자신이 일본에 가서 공부하게 된 계기를 이야기합니다. 한국에서 학생운동을 하며 사회의식을 키웠고, 대학 졸업 후 넓은 세계로 나가 공부할 결심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처음엔 독일에 가서 사회학 공부를 하려 했지만, 곧바로 유럽 사회에 가기보단 일본에 잠시 체류하면서 공부 계획을 세우려고 했습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일본에서 박사과정까지 마치고 일본 대학에서 국제사회학을 가르치는 교수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영채 교수는 현재 일본 내의 주요 미디어의 논객으로 참여하며 극우나 혐한의 논리에 대응하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아시아태평양자료 센터(PARC), 야스쿠니 반대 동아시아 촛불행동 등과 같은 일본 시민단체에서 중추적 역할을 맡고 있기도 합니다. 한국과 일본 양국의 평화를 위한 시민운동과 시민사회 교류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한홍구 교수 맺음말로 끝납니다. 그는 현재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이며 한국 시민운동계의 유명인사이지요. 이 책에서 한홍구 교수의 글의 분량은 많지 않지만 함께 공동저자로 명시되어 있습니다. 거의 모든 글은 이영채 교수의 글로 채워져 있습니다. 

  이영채 교수는 책을 시작하며 다음과 같은 문제를 제기합니다. 


  “정치적으로 어떤 한 국가나 사회가 고립되어 있을 때 이를 풀어줄 수 있는 것이 소프트파워, 즉 문화교류입니다. 그러한 것들이 경제와도 연결되고, 그러면서 정치 영역의 교류도 활성화된다고 할 수 있지요. 그런데 국제정치 이론으로 봤을 때 한일관계는 경제교류가 지금까지 지속되었고 문화적으로 더 밀접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 영역은 오히려 악화되어가는, 이상한 비대칭 현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34쪽


  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을 기점으로 하여 한일 양국에 다양한 문화교류가 있었던 것을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일본의 많은 대중문화가 한국에 들어오기도 했고, 한국의 대중문화 역시 한류라는 이름으로 일본에 많이 건너갔습니다. 자연스레 여행은 물론이거니와 다양한 시민사회 교류도 생겨났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왜곡 문제, 독도문제와 같은 것들이 붉어질 때마다 양국 국민들의 부정반응은 높게 나옵니다.(책 35쪽 도표에 설명되어 있습니다.) 많은 문화적, 경제적 교류가 있음에도 역사나 정치 분야에서는 서로에게 적대적인 것입니다. 저자는 이러한 시민교류가 있음에도 정치적으로는 계속 적대감이 높아져갔는지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며 한일 양국 간에 이해와 평화를 위한 방법을 모색합니다. 


  이 책은 총 세 부(部)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부에서는 일본이 지닌 근대 역사인식의 문제점, 곧 전쟁의 미화라든지, 역사를 왜곡한 부분이 어떠한 것들인지를 설명합니다. 그러면서 야스쿠니 신사를 둘러싼 많은 문제점들을 지적합니다. 2부에서는 일본 근현대사의 중요 인물들, 그중에서도 전범이라든지 군국주의자들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동시에 일제 강점기 한국의 친일파들과 그 세력이 어떻게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지, 과연 친일이란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합니다. 3부에서는 한일관계를 풀어나갈 물꼬로서 시민사회의 교류를 주목합니다. 과거사 해결을 위해 양국 시민사회의 움직임과 교류가 큰 힘을 발휘할 것이라고 말입니다.  

  저자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2012년에 정권을 잡은 아베 정권에서 일본 사회의 전체적인 보수화가 되고 시민운동도 경직되었다고 진단합니다. 군국주의자, 극우보수세력을 중심으로 한 ‘일본회의’라는 정치조직의 구성원이 일본 정계를 다수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일본 역사 교과서 안에서는 위안부나 강제징용에 대한 내용이 빠졌고, 헌법은 아니지만 다른 법 개정을 통해 일본 자위대의 해외 파병이라든지,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가능해졌습니다. 저자는 계속해서 정치적으로 한일 갈등이 지속될 것이란 전망을 다음과 같은 말로 내놓습니다. 


  “특히 한국과 북한, 그리고 미국과 북한의 화해 움직임이 활발해짐에 따라 일본이 한반도의 새로운 변화 속에서 굉장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습니다. 일본의 극우보수세력이 그간 북한 위협론과 한반도 위기론을 주장하면서 일본 내의 자신들의 정치 기반을 유지해왔기 때문입니다. 중국이 대두되면서 일본과 중국의 긴장과 대립은 피할 수 없는 정치 시나리오가 될 듯합니다. 일본의 극우보수세력은 중국의 영향력이 한반도의 평화 프로세스의 영향을 미쳐서 한국이 중국의 영향권에 들어가지 않을까 긴장하고 있습니다.” 48~49쪽. 


  저자는 일본 극우세력이 한반도의 평화 정착을 반기지 않을 것이라 보고 있습니다. 정권의 유지 때문일 수도 있고, 여러 면에서 한참 뒤떨어진다고 생각하던 한국이 자신들의 턱밑에 쫓아오는 불안감 때문일 수도 있겠습니다. 게다가 중국은 자신들이 이제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며 엄청난 경제 성장률을 보이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침략했던 조선이 아니고 청일전쟁에서 대패한 중국이 아닌 것입니다. 이러한 국제 정세 안에서 일본 극우세력이 자신들의 정치적 생명과 과거 군국주의의 영광을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는 게 저자의 평입니다.

  다른 문제는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국내의 친일파 청산의 문제입니다.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다시피 해방 후 미군정 시기, 초기 대한민국 정부와 같이 혼란스러운 시대에 친일파는 제대로 청산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여러 고위 직책에 등용되기도 했지요. 당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를 통해 처벌받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고요. 그렇기 때문에 해방된 지 75년이나 지난 지금에도 친일파 문제는 아직 우리 곁에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저자는 책을 통해 국내의 친일파 문제에 대해 언급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친일파 정리는 그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서 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지금을 정리하면 친일파는 자연스럽게 정리될 것입니다. 중요한 건 현실입니다. 오늘 친일 문제의 싸움터는 1920년대, 30년대, 40년대의 역사연구가 아닙니다. 친일파를 누가 이어받았는가? 그들이 어떻게 활동하고 있는가? 그 힘을 깨버리는 게 친일을 정리하는 것입니다. … 중요한 것은 누가 그 세력을 이어받아 같은 행태를 벌이고 있는지를 따지는 것입니다.” 142쪽. 


  저자의 견해에 동감하게 됩니다. 물론 옛 친일파들을 알아내고 과오를 명확히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과오를 제대로 알고 다시는 반복하지 않을 수 있으니까요. 그렇다고 죽은 그들을 불러내 처벌할 수도 없습니다. 문제는 ‘현재’입니다. 여전히 일본에 대한 사대주의를 가진 이들 일수도 있겠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물려받은 막대한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이들일 수도 있겠습니다. 과격한 태도로 과거의 식민 지배를 일방적으로 미화하거나 찬양하는 이들도 현재까지 이어지는 친일파의 속성일 것입니다. 과거만을 붙잡고 오늘의 친일문제를 제대로 보지 못하면 국내에서 친일파 청산이 이뤄지지 않을 것이란 저자의 견해에 주목하게 됩니다. 

  저자는 이런 냉혹하고도 어려운 현실 안에서 한일 양국은 평화체제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지정학적인 이유는 물론이거니와 양국 간에는 영향을 주고받지 않을 수 없는 관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일본과의 관계가 파탄 났을 때는 동북아의 평화를 기대하기도 어렵습니다. 이러한 현실에서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한일 양국 시민사회의 교류입니다. 시민사회의 교류는 정치세력과는 다르게 좀 더 쉽게 서로에게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저자는 양국 시민 교류의 필요성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 한일 시민사회는 기로에 놓여 있습니다. 이해와 협력보다 갈등과 혐오를 조장하는 세력이 횡행하는 상황에서 시민사회는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할까요? 만약 갈등과 증오와 대립을 멈추지 않는다면, 한국과 일본의 시민사회가 교류를 포기해버린다면, 제2의 한국전쟁 같은 비극이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누군가는 섣부른 예측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역사를 돌이켜 보면 한국과 일본의 관계에 따라 동아시아의 평화가 좌우되고는 했습니다. 결코 낙관적으로 예측할 일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물론 다른 길도 있습니다. 한일 시민사회가 진정한 교류를 해낸다면, 갈등과 혐오를 조장하는 세력을 뛰어넘어 진정한 평화의 길로 들어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서로의 과거와 현재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한일관계에서 시민사회가 해낼 수 있는 역할을 명확하게 인식해야 합니다.” 265쪽. 


  정치세력 간의 갈등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버려 두기엔 그 위험이 너무 크다는 것입니다. 정치적으로 복잡하고 갈등의 요소가 산재해 있다면, 시민사회 교류를 통해 평화, 공존, 생명, 정의와 같은 보편윤리를 향한 연대를 맺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저자의 주장입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평화가 위협받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렇기에 저자는 시민사회의 연대를 강조하며 책을 마무리합니다. 그리고 구체적인 방안이나 내용에 대해서도 언급하는데, 그 내용들은 책을 통해 접해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현재 한일 가톨릭에서 보여주고 있는 연대를 소개하며 글을 마치고자 합니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와 ‘일본 천주교 정의와평화협의회’는 2020년 7월 2일 발족한 ‘한일 화해와 평화 플랫폼’이란 시민사회 연대에 참여했습니다. ‘한일 화해와 평화 플랫폼’의 공동대표에는 일본의 미츠노부 이치로 주교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양국 천주교는 청산되지 않은 한일 간의 역사문제, 한반도 평화, 일본 헌법 개정의 문제,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평화, 한일 양국의 올바른 역사교육 등을 둘러싼 갈등을 해소하고 평화로 나아가기 위해 연대를 맺었습니다. 종교계와 시민사회가 함께 힘을 합쳐 평화의 길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한 자세한 기사는 http://www.catholic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904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한일 양국 간에는 아직 풀리지 못한 많은 문제들이 산재해 있습니다. 그렇다고 일방적인 무력으로 해결될 수도 없는 것들이고, 서로 아무런 관련 없이 살아갈 수 있는 노릇도 아닙니다. 그럴수록 역사를 바로 알고, 역사 안에서 발생한 문제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날까지 어떤 문제를 야기시키고 있는지 명확히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함께 나눈 책 『한일 우익 근대사 완전정복』은 한일 양국 간 평화를 위해서,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인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이정표를 제시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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