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콜스, 『환대하는 삶: 도로시 데이, 평화와 애덕의 83년』
고즈넉한 중림동 약현성당 언덕 아래, 구불구불 이어진 골목길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아는 서울과는 다른 풍경을 마주하게 됩니다. 어둡고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한 평 남짓한 크기의 ‘쪽방’들이 이어져있기 때문입니다. 흔히 ‘쪽방촌’이라고도 부르는 곳이지요. 볕이 들지도 않고 다닥다닥 붙어 있는 좁은 방들엔 아직도 우리 사회의 취약계층들이 살고 있습니다.
이들에겐 단순히 물질적 빈곤뿐만 아니라 정신적, 영적 빈곤의 문제도 함께 동반한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그들을 둘러싼 환경이 더 쉽게 알코올에 의존하게 한다든지, 폭력적 성향을 보이게 한다든지, 삶에 대한 희망과 의지를 잃게 만들기도 합니다. 더욱이 내면이 부서진 상태에선 다시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힘도 바닥나 버리고 맙니다.
다행히 중림동 약현성당 아래 쪽방촌에는 그곳에 사는 분들에게 빛과 소금이 되어주는 공동체가 있습니다. ‘한사랑 가족공동체’라고 불리는 곳입니다. 프란치스코 수도회 신부님과 수사님, 그리고 봉사자들로 이루어진 이 공동체에서는 노숙인, 행려인들에게 잠잘 곳과 쉴 곳을 마련해주고, 자립이 어려워 보이는 경우엔 기초수급을 연결해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먹을 것과 살 공간을 내어주는 데 그치는 공동체는 아닙니다. 그곳을 찾는 이들이 내적으로도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신부님과 수사님들이 영적인 조력자 역할을 자처하고 있습니다.
사회의 울타리 밖에서 겪는 고독과 실의, 영적 빈곤에 허덕이는 이들에게 ‘한사랑 가족공동체’는 샘물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지속되는 물질적 빈곤 속에서도 작은 희망의 씨앗을 발견하기만 해도 기뻐할 줄 아는 마음을 배우는 곳이기도 합니다.
물론 한사랑가족공동체 안에서는 여전히 술에 취해, 혹은 부서진 마음을 가누지 못해 일어나는 소란스러움도 안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보여주는 신부님과 수도자, 그리고 봉사자의 인내와 사랑, 그리고 환대의 마음이 그곳을 방문하는 이들의 마음을 치유하고 보듬어 줍니다. 공동체 구성원들의 마음의 상처가 아물고, 각자 자신의 삶에 대한 긍정과 희망을 다시 찾을 수 있다면 얼마나 기쁜 일이겠습니까.
“가장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이라는 복음 말씀이 귀에 맴돕니다.
이번에 함께 나눌 책은 20세기 미국에서 가난한 이들과 마음이 무너진 이들과 함께 공동체를 이루고 ‘가톨릭 일꾼 운동’(Catholic Worker Movement)을 시작한 도로시 데이(Dorothy Day, 1897~1980)의 평전, 『환대하는 삶: 도로시 데이, 평화와 애덕의 83년』이라는 책입니다.
미국 출신의 도로시 데이는 20세기의 아주 유명한 가톨릭 노동 운동가이며, 많은 이들에게 가난과 노동, 연대와 환대의 의미를 일깨워 주었습니다. 지난 2015년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미국 의회 연설에서 미국의 위대한 네 명의 인물로 아브라함 링컨, 마틴 루터 킹, 토머스 머튼 그리고 도로시 데이를 꼽기도 하셨지요. 그만큼 도로시 데이가 보여준 애덕과 환대의 삶이 많은 이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다고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미국 뉴욕의 일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도로시 데이는 대학시절, 세계 1차 대전의 참상과 미국에서 지속되는 빈곤과 고통을 목격하고 사회주의자로 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사회주의 신문의 기자로 활동하기도 했고, 노동운동, 여성 참정권 운동에 참여합니다. 결국엔 위험인물 명단에까지 올라 투옥됩니다. 그녀는 감옥에서 성경을 읽게 되는데, 성경을 통해 위안을 얻고 새로운 희망을 꿈꾸기 시작했습니다. 무신론자, 혹은 불가지론자 인 데다가 자유주의적 성향을 지닌 채 사회주의 활동에 열성이었던 도로시 데이에게 말씀의 씨앗이 뿌리내린 것입니다. 이를 계기로 그녀의 ‘회심’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녀 스스로도 가톨릭 신앙으로 귀의한 것을 ‘회심’이라고 말합니다.
미국에 대공황이 닥쳤을 때 도로시 데이는 길거리에 수없이 많은 노숙인, 행려인, 사람들의 가난과 고통을 보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합니다. 특히 뉴욕이라는 화려한 도시의 빛과 그것에 가려진 어둡고 컴컴한 곳 사이에 격차를 더욱 실감합니다. 그럴수록 그녀는 성당에 나가 기도를 하고, 가톨릭 사회교리 서적을 읽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녀에겐 가톨릭교회가 가난한 사람들과 굶주린 사람들, 집 잃은 사람들의 갈증을 해소시켜줄 것처럼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점차 영적으로 진보해갔지만 동시에 교회에 대한 의문도 함께 커져갔습니다.
이후 그녀는 그녀의 영적인 협조자가 될 피터 모린(Peter Maurin, 1877~1949)을 만나 가난한 이들을 위해 어떠한 활동을 할 수 있을지, 그리고 그들에게 어떤 영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지 고민합니다. 피터 모린은 성직자가 되지는 않았어도, 가난한 사람들의 자녀를 가르치는 ‘라살의 세례자 요한 형제회’ 회원으로서 명예로운 평신도 수도자였습니다. 그런 그가 도로시 데이에게 영적이고 지성적인 스승이자 동반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피터 모린은 도로시 데이에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로 인해 도로시 데이는 좀 더 확고한 신앙 안에서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하고 또 함께 했습니다.
그들은 먼저 『가톨릭 일꾼』이라는 신문을 창간합니다. 『가톨릭 일꾼』은 당시 사회에서 비참한 상태로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와 힘든 현실에서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사상을 따라 살 수 있을지에 대한 글들이 기고되었습니다. 가톨릭 신앙을 바탕으로 하여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노동과 삶의 의미를 사람들에게 알리기 시작했던 것이지요.
이후엔 ‘환대의 집’이라는 장소를 열어 그곳에서 가난한 이들에게 먹고, 쉴 곳을 제공합니다. 도로시 데이는 그곳에 찾아오는 이들의 말에 경청하고 그들의 아픔을 공감하며 그리스도교적 애덕을 보여줍니다. 그곳은 흔히 말하는 노숙인, 행려인, 술주정꾼이라고 불리던 이들을 ‘환대’하는 공동체였습니다. 이후 ‘환대의 집’은 여러 곳으로 퍼져 나가 다른 지역에도 많이 생겨날 수 있었습니다.
『환대하는 삶』의 저자 로버트 콜스(Robert Coles)는 심리정신과 의사인데 환대의 집 봉사자로서 도로시 데이를 만납니다. 이후 30년 가까이 그녀와 활동을 함께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그녀와의 대화들을 녹음하고 기록합니다. 그녀가 어떠한 열정과 애정으로 가난한 이들을 대하고, 그녀에게 가톨릭 신앙이 어떠한 의미인지에 대해 엮어낸 책이 바로 이번에 함께 다룰 책인 『환대하는 삶』입니다.
책 서문에는 저자가 도로시 데이를 만나는 첫날의 장면이 묘사되는데 무척 인상적입니다. 저자는 좀 더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싶어 봉사를 하려는 마음으로 도로시 데이를 찾아갑니다. 그때 도로시 데이는 술에 꽤 취해 보이는 듯한 여성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저자는 옆에 서서 대화를 듣고 있는데 술에 취한 여자는 도로시 데이에게 꽤나 터무니없는 말을 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이윽고 도로시 데이는 옆에 서 있는 저자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합니다.
도로시 데이는 여인에게 잠시 대화를 중단해도 되겠는지 물었다. 그러고는 내게 다가와 물었다.
“우리 중 누구와 이야기를 나누려고 기다리고 있나요?”
‘우리 중 누구’라는 도로시 데이의 이 세 마디는 내 안에 켜켜이 쌓인 자만심, 평생 누려 온 부르주아 특권 속으로 파고들어와, 오만함이라는 완고한 뼈대를 부러뜨려 버렸다. … ‘우리 중 누구’라는 세 마디로 도로시 데이는 내게 가톨릭 일꾼 운동이 어떤 것인지, 그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에둘러 전해주었다. 16p
도로시 데이의 질문이 아주 지극히 정상적이고 일상적인 질문임에도 저자와 우리에게 충격을 주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더 깊은 곳에 자리한 차별, 자만심, 오만함을 마주한 부끄러움이 아닐까 싶습니다. 도로시 데이의 질문은 약자는 약자에 자리에 있고, 강자는 강자에 자리에 있어야 비로소 편안해지는 마음을 꿰뚫습니다. 안이해져 버린 까닭일까요. 이미 내겐 차별과 낙인의 시선으로 인간을 바라보는 훈련이 완전히 끝나버린 것이 아닐까 슬프기도 합니다. 인간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힘이 얼마나 강렬하며, 그것은 인간 그 자체에 대한 애정으로부터 가능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또한 도로시 데이는 언제나 깨어 있으려 노력했습니다. 그녀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교회를 다님으로써 우리가 잠이 들어 버리지 않을까 우려스럽습니다. 우리가 한 일, 즉 미사 참석이라는 선행을 너무 자랑스러워한 나머지, 우리가 영위하고 있는 삶을 누리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는 잊어버립니다. 156p
언젠가부터 한국 가톨릭교회의 모습을 평가할 때 ‘교회의 중산층화’라는 말이 붙기 시작했습니다. 다양한 종교사회학적 연구와 평가가 있겠지만 이 문제의 본질은 가난과 멀어진 교회의 모습에 있을 것입니다. 교회의 규모는 커지고 건물은 점차 고급스러워졌지만 그만큼 신앙이 함께 성장했는지,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가까이하셨던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 지금 교회도 함께 하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됩니다. 소외된 이들에게 귀를 기울이지 않는 신앙이 뭔가 어설프게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지난 2014년 방한하여 다음과 같은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어떤 교회와 공동체들은 그 자체가 중산층이 돼 그에 속한 일부의 가난한 이들은 심지어 수치감을 느낄 정도가 됩니다. 그런 교회는 더 이상 가난한 이를 위한 가난한 교회가 아닌 중산층 교회입니다. 악마로 하여금 여러분이 부유한 이들을 위한 부유한 교회, 잘 나가는 이들의 교회가 되게 만들도록 허용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나와 내 가족만이 행복한 신앙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에게 눈길을 돌릴 수 있는 넉넉함이 담긴 신앙.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전해준 애덕과 사랑의 의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도로시 데이는 사람들에게 먹을 것과 쉴 곳을 제공하는 한 편, 그들에게 도덕적이고 영적으로도 의지할 곳을 내어주려 노력했습니다. 가난한 이들이 노동을 할 수 있는 자립의 기초를 마련해주려고도 애썼고요. 하지만 그녀는 항상 경계하던 것이 있었습니다. 남에게 내어주는 삶에 만족하는 ‘교만’에 대해서 말입니다.
내 기분을 나아지게 할 목적으로 혹은 나 자신의 소박한 꿈을 추구할 목적으로 내가 이곳에서 길 잃은 이 영혼들을 먹이는 일에 탐닉하고 있다면, 나는 가장 나쁜 죄악인 교만이라는 죄를 다시 한번 짓는 셈입니다. 187p
덕 있는 사람이 되려는 마음으로 시작했다가 결국에는 독선적인 사람이 될 수도 있어요. 진지하게 자선 활동을 행하는 실천가가 되다 보면, 주님이 자신에게 특별한 축복을 내리셨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자신이 한 일을 굉장히 뿌듯해하며 춤을 추고 다니지요. 교만이라는 죄를 짓는 겁니다. 220p
저는 ‘봉사’라는 말을 떠올릴 때면, ‘봉사’가 타인을 위한 것으로 여기기 십상이지만 사실은 본인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무언가 선행을 하면서 채우는 만족감이 꽤 클 뿐만 아니라. 타인에게 무언가 내어줄 수 있는 넓은 마음을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자체가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봉사를 하며, 남을 위하며 결국 나의 만족감을 채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도로시 데이도 교만과 독선적인 태도에 대해 늘 염려했습니다. 나아가 자선행위의 악마의 측면이 있다고도 할 정도로요. 그녀는 언제나 ‘행세하는 태도’에 조심했습니다. 타인을 도구로 여길 수 있는 위험한 교만이 자선 안에도 담겨 있을 수 있습니다. 살아있는 애덕이란 그저 상대를 있는 그대로 보고, 눈을 마주치고, 감정을 나눌 수 있는 가난한 마음에서 비롯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게 됩니다.
도로시 데이는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면서도 수없이 많은 사회 운동을 하면서 사회적, 정치적인 영역에 넘나들었지만 그녀의 중심엔 영성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성경과 함께 아빌라의 성 데레사, 리지외의 성 데레사, 십자가의 성 요한,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시에나의 성 카타리나와 같은 성인들의 영성에 매달렸습니다. 이렇게 영성에 매달렸던 그녀의 힘이 사회운동으로만 치우치거나, 영적으로만 치우치는 불균형에 놓이지 않게 했습니다. 또한 자신이 사랑하는 가톨릭교회 안에서 언제나 머물고자 했고요. 저자는 그런 도로시 데이의 모습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합니다.
도로시 데이에게 위대한 투쟁이란 그녀 자신이 갖고 있는 두 측면을 연결시키는 것, 즉 본능적인 측면과 영적인 측면을 통합해 내는 것, 무심결에 저지르는 탐욕과 부주의를 피할 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완전히 벗어난 지적, 종교적 생활 역시 피하는 것이었다. 275p
도로시 데이는 급진적인 사회주의 운동을 하면서 젊은 시절을 보냈습니다. 빈민과 가난을 구제할 실천적인 사회경제적 방법론에 관심을 쏟았습니다. 이후 여기에 그녀의 신앙이 덧입혀지면서 구체적인 애덕이 빛나기 시작합니다. 저 멀리 동떨어진 채 관념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 안에서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는 삶을 택할 수 있던 힘이었겠지요.
도로시 데이의 삶을 통해 신앙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됩니다. 고독과 실의에 빠져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손을 내민다는 것은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 그리고 그 용기는 따뜻한 마음과 깨어있는 신앙에서 비롯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마음이 부서진 이들에게 가까이 계시고 넋이 짓밟힌 이들을 구원해 주신다.”(시편 34,19)라는 성경의 말씀처럼 우리도 하느님의 모습을 닮아 거룩해지길 희망해 봅니다. 자기 자신을 내어줄 때 비로소 내가 충만해지는 역설을 도로시 데이의 삶에서 찾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말씀드린 한사랑가족공동체의 간략한 소개와 후원 계좌를 남깁니다. 관심있으신 분들의 후원도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