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건 신부의 편지 모음, 『이 빈들에 당신의 영광이』
프란치스코 교황의 권고『복음의 기쁨』에선 '영적 세속성'이란 단어가 등장합니다. 당시 이 단어를 처음 접한 저로서는 생소하게 느껴졌습니다. 교황은 '영적 세속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영적 세속성은 신앙심의 외양 뒤에, 심지어 교회에 대한 사랑의 겉모습 뒤에 숨어서, 주님의 영광이 아니라 인간적인 영광과 개인의 안녕을 추구하는 것입니다."(『복음의 기쁨』, 93항)
좀 더 편한 말로 하면 '양의 탈을 쓴 늑대'라고도 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 당신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 하셨던 말씀도 떠오릅니다.
"자기들끼리 영광을 주고받으면서 한 분이신 하느님에게서 받는 영광은 추구하지 않으니, 너희가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느냐"(요한 5,44)
겉모습은 번지르르하게 성당을 오가지만 마음속에 신앙이 뿌리내리지 못한 마음을 돌이켜보게 됩니다.
타성에 젖은 신앙생활, 자신의 의로움을 드러내기 위해 애쓰는 신앙생활에 강한 경종을 울리는 단어가 있습니다. '순교'입니다. 보통 삶을 버리고 오로지 신앙을 위해 쓰라린 고통과 비참한 죽음으로 자신을 내던진 삶입니다.
한국의 첫 번째 사제인 김대건 신부님(1821~1846)의 편지에는 우리의 유약해진 마음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힘이 있습니다. 믿음과 삶, 죽음과 고통, 그리고 인간이란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되묻게 합니다. 일견 미련해 보일 수 있는 한 인간의 모습에서 숭고함을 느낄 때, 마음이 일렁입니다.
한 여름의 더위, 눈 덮인 들판, 언 강을 건너고, 작은 배 위에서 맞는 풍랑, 주린 배, 주위 사람들의 질시, 모욕, 육체의 병고. 조선에 신앙을 뿌리 내고자 했던 20대 청년의 사투를 생각하면 몸서리 쳐집니다.
김대건 신부님은 은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당신이 겪으시는 어려가지 어려움을 고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로서는 우리의 편의를 위해서가 아니고 다만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이것을 계획하는 만큼 조선에 들어갈 가능성이 있기만 하다면 무슨 위험인들 마다하겠습니까." 67p
김대건 신부님은 마카오에서 신학공부를 마치고 잠시 조선에 돌아왔습니다. 사제들을 조선에 입국시키기 위한 길을 개척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때 남긴 편지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저는 추위와 굶주림, 피로와 근심에 짓눌려 기진맥진한 채 남의 눈에 띄지 않으려고 거름더미 옆에 쓰러져 있었습니다. 인간의 도움을 전혀 기대할 수 없고, 오로지 하느님의 도우심만을 고대하면서 먼동이 틀 때까지 녹초가 되어 있었습니다." 129p
우리 각자가 지고 가는 삶의 무게(교회용어로 하자면 십자가의 무게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가 참으로 무겁습니다. 가능한 이 짐을 내려놓고 편하게 살고 싶은 것이 우리의 본성이지요. 하지만 도무지 질 수 없어 보이는 짐 조차도 자신의 어깨 위에 일부러 얹어놓는 사람을 봅니다. 여기서 우리는 감동과 부끄러움, 경의와 자신의 나약함을 느낍니다.
신앙 안에서도, 일상의 삶 안에서도 내적인 굳건함을 다지고 싶을 때 김대건 신부님의 편지를 다시금 펴봅니다. 가장 비참하고 가혹한 상황에서 숭고함을 피워내는 삶을 바라보며 용기를 가져봅니다.
"교우들 보아라. 우리 벗아, 생각하고 생각할지어다. ... 세상 온갖 일이 주님의 명령이 아닌 것이 없고, 주님의 상벌이 아닌 것이 없다. 고로 이런 군난도 역시 천주의 허락하신 바니 너희 감수 인내하여 주님을 위하고 오직 주께 슬피 빌어 빨리 평안함을 주시기를 기다리라.
내 죽는 것이 너희 육정과 영혼 대사에 어찌 거리낌이 없으랴. 그러나 천주 오래지 아니하여 너희에게 내게 비겨 더 착실한 목자를 상 주실 것이니 부디 설워 말고 큰 사랑을 이뤄 한몸같이 주를 섬기다가 사후에 한 가지로 영원히 천주 대전에서 만나 길이 누리기를 천만 천만 바란다. 잘 있거라." 201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