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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로등 Dec 22. 2021

바라보기

일상의 마음 챙김 연습

  찾아온 무기력증은 쉽게 어져나가지 않는다.


직장생활에서 목표를 세우고, 그곳을 향해서 돌진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되는대로 또는 주어진대로 열심히 반응을 하다 보면 어떤 지점에든지 가 있곤 했다. 다행히도 꼬리에 꼬리를 물고 마음을 들여서 해볼 만한 일들이 있어왔고, 그 일을 향한 노력 또는 성과를 알아봐 주는 상사도 있었다. 같이 의견을 나누고 때로는 목소리 높이기도 하지만 결국은 서로가 힘이 되는 동료와 후배들도 있었다. 이것들이 내가 이 직장에 다니는 이유였다.


그런데, 그런 생활을 기대하며 돌아온 직장에서의 생활은 예전과 사뭇 달랐다. 복직 후에 어렴풋한 좌절감이 느껴지기 시작하더니 휴직 전의 궤도로 오르지 못하고 계속 미끄러져 헛도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일 년 반을 지냈는데, 아직도 나는 뻗어나가는 넝쿨 같은 팀에서 생장점이 되기는커녕, 어쩐지 줄어든 기억력으로 근근이 넝쿨에 붙어 있는 시들어가는 잎사귀 같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우리 팀은 직종의 특성상 승진이 없다. 다만, 그 비슷하게 여겨지는 게 팀 내에 두 개 밖에 없는 공식 직책 중의 하나를 맡는 것이다. 계산기를 두드려본다면 아무런 이득도 없는 자리다. 다만, 부르디외의 사회적 자본 측면에서는 그동안 갖지 못했던 것을 가질 수 있는 환경에 놓인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당한 시기에 그런 자리에 앉혀지지 않음은 일종의 인정 욕구에 심각한 손상을 입히기도 한다.


아마 그런 일들이 무기력을 끌고 온 것 같다. 내가 무엇을 원했었는지를  오히려 그 일이 일어나지 않음으로써 알게 된 것이다.


지난주에 시작했던 매일 블로그 쓰기 모임에 참여하는 것도, 루틴들로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것도 모두 내가 나 자신을 인정하려고 벌인 일들이었나 보다. 그래서 그 일들은 가느다란 실에 꿴 구슬들처럼 아주 작은 흔들림에도 알알이 떨어져 나가 버리곤 했다.


그런데 내가 세운 목표를 달성하지 않으면 마치 패배자라도 된 듯 스트레스를 자가발전하듯 만들어내며, 이 무기력을 벗어나야 한다거나 힘을 내야 한다는 등의 압력을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알다시피, 이런 생각들로는 아무것도 좋아지지 않는다. 무조건적인 긍정은 부정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나를 누군가 겉에서 본다면 아무 일도 없는 듯이 지내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할 것이다. 어쩌면, 시야를 넓혀서 본다면 정말로 소소한 일들인 것이다. 생명이 왔다 갔다 하는 일도 아니다. 내 본질이 달라지는 일도 아니고... 단지, 내가 내 안에 어떤 욕구를 불러일으키고 그것을 향해 달려가다 말다 하며, 부정적인 감정을 뽑아내어 그 안에 머무르고 있을 뿐이다. 우주에서 이 점 같은 나를 본다면 내가 겪는 모든 일들은 그야말로 안 일어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나를 바라보는 연습을 한 번 해 본다.


어떤 생각이 떠오르면 바로 몸을 움직이거나 다른 생각을 떠올려 반응하기 전에 그 떠오른 생각을 알아차려보면 나는 관찰자의 입장이 된다. 여기서 생각을 떠올린 '나'와 관찰하는 '나'가 각각 누구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 둘이 다른 존재처럼 느껴진다는 것을 해 보면 알 것이다.


배가 고프면 바로 먹어야겠다는 생각과 뭘 먹을지 음식들을 떠올리기 시작한다. 일단은 멈춰서, 배가 고플 때 그 느낌을 느껴본다. 어디에서 어떤 느낌이 드는 건지. 윗배가 조여드는 느낌이 드는 건지, 가슴 중간 어디에서 쥐어짜는 느낌이 드는 건지. 그러고 나면 이미 그 느낌은 사라지고 먹어야겠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요즘 우리 사무실에서는 한때 나를 정말 힘들게 했던 향기가 난다. 나도 잘 뿌리고 다니던 향수인데, 첫째를 임신했을 무렵부터 그 향기를 맡으면 구토가 난다. 그리고 그 기억은 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이어져 있었나 보다. 누군가 그 향이 들어간 핸드크림을 모니터 앞에 두고 수시로 바른다. 구역질이 날 것 같다. 그것 좀 쓰지 말라고도 말하고 싶다. 나는 그 냄새가 너무 힘드니 쓰지 말아 달라고 정중하게(!) 말해볼까 생각도 한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 내가 그 향기를 힘들어함을 알아차려봤다. 그 향을 맡을 때 속이 꿈틀거린다. 욕지기가 나지는 않지만, 곧바로 머리에서 뭔가 조여 오는듯한 느낌이 든다. 코도 조여 오는 것 같다. 일단 숨을 참아본다. 그리고 그 향기에서 되도록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간다. 아무 일 없다는 듯 일하는 다른 사람들의 표정이 오히려 위안이 된다. 이렇게 한다고 해서 아직 그 향기로부터 자유로워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가 이 향기에 대한 내 몸의 반응을 알아차리지 못했더라면, 나는 진작에 그 사람을 미워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싫어하는 향수를 뿌린다는 아주 개인적인 이유로 말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나는 내 마음을 알아차리려고 하는 중이다. 이번 주에 총 다섯 개의 할 일이 있었는데, 두 개가 남은 상태이다. 오늘 밤에 남아서 일을 한다면 끝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쩐지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도 든다. 눈을 감고 일에 대해 떠올려 본다. 혀뿌리가 마비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심호흡을 해 본다. 일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어지고, 단지 내가 남았다는 느낌이 든다.


자, 이제 다시 일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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