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로등 Dec 20. 2021

격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

지난 몇 달간 주말에는 평일에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하기 위해 출근을 했었다.

10월 한 달은 하루도 쉰 날이 없을 정도로 나가서 일했고, 다음 달 월급 명세서에서  연장근무수당 금액을 확인하고는 놀랄 정도였다.


그런데, 그 좋은 날들을 가족과 함께 보내지 못한다는 게 너무 아쉬웠고, 11월에 어느 정도 일이 마무리되자 주말 중 하루는 쉬기 시작했다.


이제 연말이 되어 마지막 스퍼트를 해야 하는데, 이런저런 일이 겹쳐서 더 그런지 몸도 마음도 힘들어져 자포자기의 상태가 쉽게 찾아왔다. 지난 일주일간 매일 브런치에 글을 올리면서 나름 긴장했었는데, 토요일 새벽에 평일에 못한 루틴을 보충하고  출근해서 일하고 온 다음부터는 완전히 풀어졌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책상에 앉지도 않았다. 책상을 쳐다보기도 싫었다.


말리카 우프키르의 <도둑맞은 인생>이라는 책을 한 권 읽은 것 말고는 루틴 중에 한 일이 아무것도 없다.


월요일인 오늘도 연차휴가라서 집에 있었다. 

회사는 비용절감의 일환인지 강제로 연차를 쓰게 하고 있다. 덕분에 생뚱맞은 날 내가 예전에 계획서에 제출했던  연차를 쓰기 위해 이렇게 쉬곤 한다.


아이들이 학교에 간 후에 대청소가 아닌 소청 소를 하고 점심 약속을 위해 외출 준비를 하고 집을 나가려는 순간 전화가 왔다. 약속 상대가 오늘 갑자기 동료 확진으로 코로나 검사받으러 가야 한다고 말이다.


방으로 돌아와 거울 앞에 앉아 명상을 했다. 그동안 풀리지 않았던 이런저런 불편한 감정들 느끼며 한참을 하고 눈을 뜨니 '괜찮아질 거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눈앞이 조금 밝아지는 것처럼 보이며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래 괜찮아질 거야. 잘못된 것은 없어.


가벼운 마음으로 점심을 먹고 달라이 라마의 <마음을 바꾸면 인생이 바뀐다>를 읽었다. 그의 말은 포용하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아무도 탓하지도 않는다. 내가 내 마음을 어떻게 먹을지만 얘기한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아들과 근처 카페에 가서 맛난 조각 케이크를 사 와서 먹는다. 날도 따뜻해서 봄이 온 것 같다. 


방과 후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둘째가 오늘 배워온 마술 세 가지를 시연해준다. 우리는 진지하게 원리를 파헤치고 웃고 떠들다가 갑자기 홈트를 시작했다. 조금씩이지만 함께 몸을 움직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지난 일주일간 자가격리로 두문불출했던 아이들이 수영장에 갔다. 코로나로 조마조마한 마음이지만, 이제 코로나 검사는 으레 받는 것이려니 하는 아이들의 대견함을 믿고 일상생활을 하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책상에서 일어난 지 약 48시간 만에 드디어 다시 책상에 앉는다.

브런치에 글을 쓰고, 가계부도 정리해본다.

아이들이 돌아오기 30분 전까지 필사도 할 것이다.


격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던 시간들이 조용히 지나간다.


작가의 이전글 Yoga Village의 추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