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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로등 Jan 05. 2023

불사조가 따로 있다고 생각했다.

배워야 할 것을 보여주는 삶에 대하여...

불사조라 하기에는 너무 과한 느낌이 있지만, 2020년도 3월에 인도에서 코로나를 겪고 온 우리 가족이 2022년이 끝나가도록 아무도 코로나에 걸리지 않았다는 것은 마구마구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지는 일이었다.

어쩌면 단지 나와 우리 가족들 자신들이 바이러스 노출을 최소화하는 개인위생을 실천해온 것에 대한 칭찬을 하고 싶거나, 받고 싶었던 것일 수도 있다.


2022년 12월을 시작하면서 매주 주말마다 당직 외에 추가로 시간 외 근무를 하며 보고해오던 몇 달간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월말이자 연말에는 좀 쉬어보겠다고 마음먹었다. 우리 회사는 연차의 일정 비율을 쓰도록 의무화하고 있어, 해당 비율을 맞추기 위해서라도 이틀은 쉬는 것으로 예정을 해놓았던 것이다.


연말이라 쉬는 상대 회사들도 많았지만, 그렇지 않은 회사들도 많아서 여전히 새로운 연구가 시작되고 준비되고 있었다. 새로운 임상연구용 약이 도착하면 나의 일이 바로 시작되어야 하는데, 하필 휴가 기간 중에 약을 쓰겠다는 분이 있어서 급하게 처리를 해두었다. 그런 일들만 정리되면 나의 연말은 그런대로 쉴만할 것이라고 상상(!)했다.


지난 8월 이사 온 이 집에는 윗집 벽의 틈을 타고 내려왔다는 빗물 누수가 모여 안방 천장에 물 주머니를 만들어놨고, 여름을 지내는 동안 곰팡이는 일파만파 자국을 남기며 말라가고 있었다. 몇 번의 항의 끝에 드디어 공사 일자가 잡혔고, 황금 같은 나의 연말 연휴가 그날이었다.


또 나는 상상했다. 그 휘어지고 더럽고 퀴퀴한 천장만 없어지면 우리는 새로운 공기를 마시며 드디어 쾌적하고 편안하게 지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연휴

첫날에는 천장 석고보드를 교체하고 몰딩까지 깔끔하게 기존의 몰딩으로 반듯하게 펴 놓으셨다. 두 분이 오셔서 반나절 일하시니 뚝딱 끝났다.  둘째 날에는 도배를 하러 오셨는데, 오시자마자 방이 너무 춥다는 것이다. 흠.. 우리는 원래 그렇게 산다. 게다가 방에서 빼놓은 짐들이 난방 분배기 앞을 막고 있어서 어떻게 조치해 드릴 수도 없었다. 그 방의 도배를 하루 종일 하시더니 오후 늦게 일이 마무리 됐다.

어쨌든 다시 새로운 방으로 들어온 것 같다.


연휴기간 동안 그렇게 안방은 공사를 하고, 나머지 가족들은 각자 자기 할 일들을 했다. 나는 주로 아이들 학원을 데려다주고 데려 오는 일, 삼시 세끼 밥을 차리고 치우는 일을 반복했다. 한 해를 정리하기 위해서 다이어리를 모두 살펴보고 싶었지만, 집이 너무 추워서 어느 한 구석 따뜻하게 머무를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역시 의지는 환경이 충족된 다음에 생겨나는 것이다. 


주말 이후

남편이 계속 몸이 안 좋다고 하더니 결국 코로나 검사에서 양성이 나왔다. 나머지 가족들은 자가진단 키트상 음성이었지만, 곧 하루에 한 명씩 연달아 양성이 되며 이번 주 내내 네 명 모두 재택치료 대상이 되어 집에 갇혀 지내고 있다. 결국  여유롭게 한 해를 정리하고 새로운 계획을 만들어보는 시간들이 아니라 생활의 연장선이자 어찌 보면 평소보다 더 육체적으로 힘든 날들로 채워진 날들이 되어 버렸다. 


그동안 정말로 코로나 바이러스가 우리 생활의 바운더리에 들어오지 않았었던 것일까?

한 명이 뚫리니 나머지 세 명이 우르르 걸려버리다니. 


처음에는 몸살감기 같다 생각했지만, 4일째인 오늘은 드디어 냄새가 사라졌다. 음식을 준비하는 입장에서 한 감각이 없어지는 것은, 내가 만들어내는 생산품에 대한 품질을 확인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맛과 질감만 남은 음식은 나머지 요소인 '풍미'를 보장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내일은 또 어떤 증상이 찾아올지 궁금해진다. 점점 가슴이 무지근해지는 느낌이 더 진행되려는지? 


잘 된 일도 없고, 잘 안된 일도 없다. 

잘 되기도 했고, 잘 안되기도 했다. 


이제까지 철벽 방어 덕분에 안 걸리는 줄 알았는데, 우리를 무너뜨릴 만큼 강한 바이러스가 근처에 오지 않았던 것뿐이었음을 알게 되었고, 5일씩 갑자기 격리에 들어가는 동료들의 빈자리를 감당하느라 나름 힘들었던 날들만 있는 줄 알았는데, 나도 결국 동료들에게 빚을 지게 되었다. 


우리 가족이 한꺼번에 걸리니 엄마 아빠와 오래 있어서 좋다는 둘째는, 몸이 피곤해도 낮잠을 자면 이 좋은 시간이 줄어들어 아깝다고 말한다. 


가끔 창문밖의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며, 바깥세상과의 거리감을 온몸으로 느껴본다.


불사조는 없었고,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내게 필요함을 알려주기 위해 일어나는 일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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