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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로등 May 27. 2023

직업관에 대한 짧은 생각

양 옆에서 자녀들의 의대진학을 목표로 하는 여자들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  남부지방 사투리를 쓰는 우아한 외모의 여자들, 사투리가 안 느껴지는 평범한 옷차림의 여자들, 이곳은 대치동의 한 카페다.


한 가지 목표점이 맞다 생각하고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그것만이 답이라는 생각이 든다. 따라서 그 목표점이 좀 더 넓고 다양한 가치를 포함한다면 그 무리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들은 많아질 것이다.


나는 우리나라 최고의 의사들이  일하는 직장에서 20년 넘게 약사로 일하는 중이다.

의사와 약사는 적어도 의료기관 내에서는 업무가 분리되어 있고, 어느 한 편이 일방적으로 관리감독하는 관계는 아니다. 약사의 목표는 적절한 약물사용이다. 약사에게는 환자도 중요하지만, 약 자체도 무척 중요하다. 의사의 정확한 처방하에 정확한 약을 조제해서 정확하게 투약하는 게 의료기관에서의 의사, 약사, 간호사의 약물에 대한 역할이다. 이것을 단 한 점의 오류 없이 시행하는 것, 특히 하루 입원환자 2600명, 외래환자 1만 5천 명에 육박하는 단일기관에서 24시간 완벽히 정확하고 효율적으로 수행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99.999%의 정확성보다 0.001%의 오류가 중시되고 이 마저도 방지하기 위해  시스템을 지속적으로 개선하고 적용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다. 즉, 불가능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것이다.  이런 노력으로 아픈 사람들은 결국 우리 병원에서 좀 더 나은 치료를 받게 되는 것이다. 우리 자신이 언젠가 환자가 될 것이라서 이런 노력을 하는 것만은 아니다. 물론 선한 의도가 선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만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노력으로 다른 이들에게 도움이 되고, 때로는 인생을 새로 살 게 되는 경험이 될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내 일을 열심히 함으로써 우리 조직이 잘 된다는 생각, 그것이 직장생활의 원동력이다. 게다가 우리 조직이 잘 돼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일이 될 수 있다면 더욱 그렇다.  


20년 전에 농협과 우리 병원이 함께하는 농촌 무료진료 현장에 두 번 동행한 경험으로부터, 당장 수술이 필요한 사람들을 직접 서울의 큰 병원으로 데려와서 치료를 하는 모습을 옆에서 보면서, 내가 이 병원에서 내 일을 열심히 하면 설립자의 뜻대로 우리 사회의 불우한 이웃에게 도움이 되겠다는 깨달음이 있었기에 오늘까지 이곳에서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데! 공부를 잘한다는 이유만으로, 혹은 공부에 매진을 시켜서 의대에 가겠다고, 약대에 가겠다고... 슬픈 일이다.

상상력의 부재.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의 부재, 우리 사회 구성원으로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찰의 부재, 나를 통해서 어떤 가치가 구현될 수 있는지에 대한 고찰과 믿음의 부재, 불확실함을 능가하는 우리들에 대한 믿음의 부재.. 그게 슬프다.


무성찰의 평범성, 그 평범함은 악이 될지도 모른다.


식상한 표현이지만 우리 자신은 구슬이다. 그야말로 marvelous marvel이다. 우리의 표정, 손짓, 발짓 하나하나가 우리 각자의 것이다. 아무것으로도 대체될 수 없는 유일함이다. 그게 먼저다.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그다음 이야기다.


직업 자체가 나를 규정하는 것은 아니다. 직업은 나의 일부일 뿐이다. 다만, 직업과 내가 무엇을 주고받는지를 끊임없이 알아차려보는 것은 한 층 더 깊은 의미를 줄 것이다. 그런 관계 맺기를 생각해 본다면 단 하나의 직업만이 가치를 갖는다고 할 수 있을까? 내가 그 직업을 통해 무엇을 어떻게 하고자 하는지 고찰을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그 직업을 통해 무엇을 구현하면서 살아가는지가 중요하다.

그러므로, 인간의 각자에 대한 믿음에서 출발하여 다른 이들의 정신적, 육체적 안녕을 향하는 길에 선다면 어떤 이름표를 달고 있든지 그 의미는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죽는 시점을 스스로 결정하든 아니든, 끝까지 매 순간 최선을 다해서 자기 자신을 알아차려야 한다. 그로부터 어느 방향으로 무엇을 갈고닦으며 나아갈지를 정해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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